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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가 경영학자 Mar 10. 2023

가난과 궁핍 사이

어느 가난한 유학생 이야기 2/6

Globe Trotting Series no.28 Laguna Beach, California/Galleries


2021/6/30


제가 박사과정으로 미국 유학길에 오른 것은 1982년입니다. 가난한, 불안정한, 약소국, 후진국, 독재 등 모든 좋지 않은 꼬리표가 대한민국에 붙어있던 때였습니다. 정부에서 잠시 경영학 분야 국비장학금 유학제도를 만들었는데 제가 타이밍 좋게 지원자격이 되었고 채점 실수가 있었는지 덜컥 합격을 했습니다. 그래서 꿈에서도 생각할 수 없었던 미국 유학길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학교는 UCLA, 물론 LA에 있는 학교입니다. 그런데 LA라고 해서 다 같은 LA가 아닙니다. UCLA의 입지는 LA에서 가장 고급 동네 중의 하나이며 미국의 부가 무언가를 제대로 보여주는 곳입니다. 그 동네 웨스트우드도 그렇지만 세계적 부촌인 비벌리힐즈나 벨에어, 말리부 등도 지척거리에 있습니다.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가정 출신인 제가 못 본 것, 못 볼 것을 본 것입니다. 그때 까지는 부족하고 초라하다는 것과 가난하다는 것을 연결해서 생각하지 않았는데 비로소 내가 얼마나 가난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장학금은 3년 동안 지급하는 것이었는데 학업은 진척이 없고 큰 딸이 태어난 3년째 접어들면서부터 경제적 걱정이 피부를 파고들기 시작했습니다.


불안감 때문인지 능력부족 때문인지, 아마 후자이겠지만 논문 자격시험에서 떨어지고 나서는 모든 것이 어두워졌습니다. 캄캄한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을 걸어가는 느낌이었습니다. 집사람이 베이비시터에 공예품 만드는 일을 하고 저는 교포자녀 과외를 뛰면서 사실 그다지 궁핍하지는 않았는데도 가난이 피부 깊이 느껴졌습니다. 가난이란 그런 건가 봐요.


이후에는 상황이 확 트이는 일이 있었는데 이 부분은 나중을 위해서 남겨 두겠습니다. 무난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학위를 받고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하면 그때 힘들었던 경험이 무엇보다 소중하게 생각됩니다. 마냥 무난하기만 했더라면 유학 갈 필요조차 없었을 것 같습니다. 이래서 젊어 고생은 사서 한다는 말이 있나 봅니다.


인종 문제가 들어가지 않으면 미국 소설이 아닙니다. 인종적 배경이 없으면 캐릭터 설정이 안 되기 때문이죠. 오늘 소개하는 소설은 백인과 구분이 안 되는 흑인과 아주 흑인스러운 흑인 쌍둥이 자매의 인생 역정을 그렸습니다. 제목에 나오는 반쪽이 백인으로 신분을 속여서 명문가에 결혼해서 사라져 버린 겁니다. 왜 이 소설을 들고 나왔나 하면 소설의 주요 부분이 80년대 LA라는 점입니다. 같은 시기에 제가 가난하다는 것을 일깨워 준 그 부자 동네에 사라졌던 반쪽이 자신의 출신을 속이며 불안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동네와 거리 이름과 풍경 등 돌아가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리운 제 젊은 날의 소중한 추억에 잠겨 읽은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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