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식욕, 소리 없는 전쟁

by 제법 Jan 15. 2025

10시 32분.

사무실은 적막하다. 타닥타닥 키보드 소리만이 울려 퍼지는 고요하고 바쁜 아침이다.

책상 위 가장 큰 모니터에는 어제 마무리하지 못한 보고서가 띄워져 있고 보조 모니터에는 설계 프로그램이 돌아가고 있다. 

어제 밤늦게 햄버거를 먹고 싶었는데 어찌어찌 미수에 그쳤던 나는 묘하게 각도가 틀려진 세 번째 화면에 기어코 맛집 검색창을 띄웠다. 육아휴직 들어가는 선배의 모니터를 주시하고 있다가 타이밍 좋게 가져왔는데 역시 쓰임이 긴요하다. 

'연남동 맛집'

타성에 절어빠진 검색어를 한번 넣어본다. 사실 지금 참신하고 적절한 키워드를 생각해 낼 여력이 없다. 나의 뇌는 장시간의 당 부족에 시달려 기아상태이고 집중력을 발휘해 생산적인 일을 해내기엔 무리라고 판단. 당장은 업무를 멈추고 눈으로 허구의 영양분이라도 공급하는 긴급 조치를 취하는 중이다. 익숙한 메뉴들과 아는 맛들을 보여주면 좀 낫지 않을까? 기계적으로 이것저것 클릭해 보지만 역시 역부족이다. 차선책으로 1리터짜리 스탠리텀블러에 물을 가득 담아 들이켜봐도 공기를 마시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나는 탕비실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문을 살짝 열어 간식칸을 탐색해 본다. 새콤달콤 딸기맛. 초코바와 머핀들 사이에서 그나마 상큼하고 작은 녀석으로 하나 집어 자리에 앉았다. 

'한 시간 후면 점심시간인데 그냥 기다릴까? 그럼 그렇게 한 시간을 집중 못하고 날리게 될 텐데.'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갈등한다. 이 모든 게 벼락치기로 마감을 지키는 습관 때문이다. 기한이 임박해서야 집중해서 일해 버릇하다 보니 오늘 같이 일정이 여유로운 날이면 허기가 사고를 잠식해 버린다.

게다가 대한민국은 요즘 혈당스파이크의 저주가 깃들어 있다. 다들 탄수화물부터 먹으면 큰일이 걸리는 것처럼 굴기에 공복에 다른 것도 아닌 새콤달콤을 먹는 것은 영 꺼림칙하다. 그 와중에 포장지에 그려진 딸기와 눈을 마주쳤다. 유쾌한 웃음에 묘하게 기분이 상한다. 

인생은 선택의 집합이고 갈등의 연속이라지. 인생은 언제나 먹느냐 먹지 않는냐의 기로에서 식욕과의 전쟁 중이다.




 

이전 09화 코끼리도 풀만 먹는답니다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