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의 8할은 식단이라고 하지만 운동 없는 감량은 요요로 끝나기 십상이다. 그리고 나는 이것을 꾸준히 증명해 왔다. 게다가 이제 30대이므로 피부 탄력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나이 먹는 것도 서러운데.. 뭔가를 먹기만 했는데 이렇게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하다니! 세상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 같다. 바람 꺼진 풍선처럼 흐물거리지 않으려면 굶기만 해서는 안되고 운동! 운동을 해야 한다.
운동하는 직장인은 크게 헬스, 필라테스, 수영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으며, 우리는 낮시간의 대부분을 회사에 저당 잡혀 있기 때문에 아침과 저녁에 시간을 내야 한다.
새벽 6시 초급반 수영. 나는 자부하는 아침형 인간이다. 게다가 공복에 유산소라니 이것은 피타고라스의 정리처럼 기초적인 다이어트 공식이 아닌가. 버스를 타야 될 만큼 결코 가깝지 않은 거리였지만 나는 열정적으로 출석하였다. 그런데 서너 달이 지나도 저울은 크게 움직이지 않았다. 체감상 5킬로는 빠졌어야 했다. 분명 몸이 가벼워진 것 같았고 얼굴이 갸름해졌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러나 실상 단 몇백 그램 빠졌고 그 마저도 아침에 화장실만 못 가도 도루묵이 되었다. 이건 배신이었다.
처음 수영을 시작하면 25미터만 가도 얼마나 숨이 차는지 모른다. 먹은 것이 없어 속에서 단내가 올라올 것만 같은데 옆사람을 배려할 여유가 없다. 밥도 못 먹고 왜 돈 주고 이런 강행군을 해야 하는가 진심으로 언짢아질 때 즈음, 다 같이 세상 힘없는 "파이팅"을 외치며 수업이 끝난다. 그렇게 터덜터덜 집에 오면 일단 간단하게 뭐라도 입에 넣어야 하는데 출근 준비 하기도 빠듯한 시간이기에 단백질 음료나 삶은 계란을 먹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출근하면 일단 컴퓨터를 켜자마자 공짜로 야근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삶의 무게가 어깨와 눈꺼풀을 짓누른다. 어영부영 오전시간은 집중을 못하고 날리게 되는 날이 허다한 가운데 "제법 과장, 요새 넋이 빠져 있는 것 같네" 라며 팀장님의 관심 직원이 될 수 있는 특전이 주어진다. 그리고 치명적 이게도, 퇴근하면 식욕이 폭발한다. 그러면 나는 한창 커리어에 매진해야 할 30대의 우선순위가 전도되어 표류하는 인생을 더 이상은 두고 볼 수 없어서 부득이 아침 운동을 빠지기 시작한다.
저녁 필라테스. 일단 시간이 너무 애매하다. 7시? 8시? 정기적으로 시간을 정해두기엔 나도 만날 사람이 있고 퇴근길에 들려야 할 마트가 있다. 그래서 요즘은 수업을 예약제로 하는데 5월까지 30회가 남았으니 반드시 오늘 운동하러 가지 않아도 된다. 점심까지는 운동 갈 기분이었으나 마감에 후달리고 전화에 시달린 나 자신이 가여워 오늘 하루는 빼주고 싶다. 굴곡 없는 낮 시간을 보낸 날은 마침 한파주의보다. 주의하지 않고 나갔다가 유행하는 독감이라도 걸리면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안 그래도 나라가 어수선한데 나라도 안전한 이불 안에서 주의를 다하는 선량한 시민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엘리베이터에서 얼마 전 디스크 수술을 하신 부장님을 마주쳤다.
"제법씨, 우리 정년은 코어 근육에 달린 거야. 운동 열심히 해"
'정년. 60살까지 죽도록 보고서만 쓰는 정년은 안 바라는데요'
그 순간 생뚱맞게 심사가 꼬여 정년이야기가 달갑지 않았다. 우리 모두 해피 조기 은퇴를 꿈꾸며 입사하지 않는가? 억지스럽지만 저녁 필라테스를 가기 싫은 이유가 0.5 정도 늘어 오늘도 저녁 운동은 거르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아무래도 새벽 수영이 잘 맞다는 생각이 들지만 업무 효율이 너무 떨어지기에 당분간은 어려울 것 같다.
그렇다면 이제 점심시간 헬스만 남은 건가. 운동은 몸으로 하는 건데 고민만 깊어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