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결연하게 임했던 건강검진이 없었다. 코로나 이후 줄곧 살찐 상태였긴 한데 2년 전에 비해 확실히 소화가 되지 않는 것이 느껴졌다. 나이 들면 원래 그렇다는 4학년 선배님들이 있겠지만 30년 넘게 쌓여온 빅데이터, 직감은 다소 불안했다.
건강검진이 다가오자 과식과 야식, 아이스크림과 배달음식의 주마등이 수시로 지나갔다. 이번만 무탈하게 나온다면 새 삶을 살겠노라 절로 기도가 나왔다. 4년 전 대장내시경 때는 지성인으로서의 존엄을 잃고 그저 먹고 싸는 존재로 전락함에 허망한 마음이었는데 이번에는 그마저 달게 감수했다. 결과만 잘 나온다면야.
한 달이 지난 지금. 반전은 없었다. 나는 본가에서 일주일 간의 요양을 끝내고 서울로 향하는 기차 안이다.
대장 용종 두 개를 제거하고 담낭 용종을 추적하고 있는 나는, 어찌 된 일인지 대장 용종과 담낭 용종을 모두 지녔던 때보다 더욱 소화 능력이 떨어졌다. 어제도 저녁에 먹은 삼겹살이 밤새 뱃속에서 나팔을 불며 소란스레 축제를 벌였다. 아마 2시쯤 먹은 떡볶이도 초대되지 않았을까. 이런 추세라면 외력에 의한 강제 다이어트가 가능하지 않을까 싶은데 어깨춤을 춰야 하나 혼란스럽다.
“엄마, 나 아무래도 소화가 안 돼서 설에는 못 내려올 것 같아”
나는 원래 엄한 곳에 화풀이하는 사람은 아닌데 이번엔 그렇게 됐다. 이여사는 수고스럽지만 명절에 음식하고 먹이는 걸 좋아한다. 그렇기에 나 하나 전 못 먹는다고 그 기쁨을 포기할 순 없으리라. 먹지도 못하는 맛있는 음식들을 눈앞에 두고 행복할 자신이 없어 다소 이르게 노귀성을 선언했다. 허리가 끊어지게 전을 부치며 내 기쁨은 아니라고 되뇌던 과거의 헛헛한 마음까지 담아 말했는데, 늘 그렇듯 나의 어리광은 티가 나지 않는다.
“알겠다”
짧고 담담한 대답이 돌아왔다. 빈말이라도 딸을 위해 전은 생략할 터이니 내려오란 말을 기대했는데... 설명하기 어려우나 나는 역시 엄마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는 내가 없는 명절의 섭섭함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느라 내 진의는 눈치채지 못했다. 투정은 본디 직설적이어야 상대방에게 닿는데 떼쓰는 것처럼 보이기 싫어 체면을 차리면 이렇게 겉도는 말만 나누다 끝이 난다.
위로 올라 갈수록 눈발이 강해졌다. 달리는 기차 안에서 철길 위에 쌓이는 눈을 보고 있자니 이래도 되나 싶지만 왜인지 입가에 웃음이 돌았다.
에라 모르겠다. 용종도 있고 괜한 유난을 부려 엄마를 서운하게 하는 철딱서니 인생이지만 오랜만에 나만을 위한 휴가라니. 설 명절에 뭘 하고 놀까 희번덕 눈알을 굴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