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나는 학원을 거의 다니지 않았다. 분명 스스로 그것이 자랑스러웠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고등학교 3년이 한 번의 수능으로 종 치는 경험, 풀이는 맞아도 결과값이 틀리면 0점 처리하던 전자기학 교수님의 대쪽 같은 세계관이 나를 변화시켰다. 지금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더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이 당연한 결과론적 인간으로 진화하였다. 가치관이 급변하던 그즈음 처음으로 다이어트 한의원을 찾았다. 어떻게 빼느냐 보다는 역시 몇 킬로가 빠졌는지가 중요한 것이었다.
건너 건너 지인의 추천을 받아 오로지 다이어트 한약을 짓기 위해 대전으로 내려갔다. 대전 엑스포 이후 실로 오랜만이었다. 한의원 건물은 생각보다 새것이었고 진료실엔 4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젊은 한의사1이 앉아 있었다. 진맥이란 것을 했었나? 눈을 맞추며 그가 말했다.
"양기가 부족합니다"
아니다. 정확히
"음기가 강하고 양기가 많이 부족합니다"
였다. 진지하고도 단호한 진단이었다. (당시 음양의 조화에 견문이 짧았던 나는 남녀 비율 9:1을 자랑하는 공대 동아리 방에서 이 말을 떠벌림으로써 또 하나의 흑역사를 추가하게 된다)
한의사 선생님은 몇 가지 질문을 하더니 약은 하루 두 번 먹으라는 짧은 처방을 내렸다.
며칠뒤 택배가 도착했다. 파우치 개수를 세다 말고 문득 돼지라고 놀림받던 동네친구 A가 떠올랐다. A는 태생부터 몸이 약했다. 체중 미달에 신생아 때부터 병원에 자주 들락거렸던 A를 안타깝게 여긴 조부모는 녹용 들어간 한약 자주 지어주셨다. A는 점점 건강해졌고 브레이크 없는 식욕으로 소아비만에 이르렀다. 이에 큰 충격을 받은 우리 엄마는 양방만을 신뢰하게 되었으며 덕분에 나는 감초 냄새조차 맡은 적 없이 자랐다. 나는 탁월하게 식욕을 살리기도 하니 죽일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역설적인 신뢰가 생겼다.
이제야 먹어본 한약의 맛은 그야말로 보약 같아서 이틀은 거부감 없이 먹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특별한 증상이 없었고 다만 목이 말랐다. 날이 갈수록 목이 건조해지면서 점점 갈증이 심해졌는데 짠 걸 먹어서 물을 당기는 것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기관지에 군불을 지피고 있나 싶을 정도로 입술이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오! 지방이 타는 건가'
1차원적인 유추력이었다.
그리고 곧 새로운 자아를 발견하게 되었다. 보통은 시니컬하거나 오버스러운 편이었는데 약 먹은 지 사흘이 되는 날부터 인자한 내가 등장한다. 썩은 듯 하지만 자애로운 미소, 텅 빈 눈빛. 온몸의 기운이 모두 흡혈된 듯 생기를 잃었고 목소리 마저 입에서 맴돌다 마는 것 같았다.
결정적으로 약을 끊게 된 것은 불면 때문이었다.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미친 듯이 쿵쾅대고 잠이 오지 않았다. 평소 베개에 머리만 대면 기절하던 나였기에 비로소 뭔가 잘못된 것을 감지하였다. 그렇게 일주일을 못 가 한약 다이어트는 끝이 났고 감량은커녕 생명의 위협만 느끼고 후퇴하였다. 남들은 약 먹고 잘만 빼던데 원통해하며 남은 한약을 싱크대에 흘려보낼 수밖에 없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명절마다 한약 이벤트 문자가 온다. 한의원은 대전에서도 시내에서 꽤 거리가 먼 곳이었는데 결과적으로 무익한 열정이었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한약을 먹었던 지인은 7킬로를 감량하여 요요 없이 유지하였기에 한의원을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저 비만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예민하고도 비만한 사람의 푸념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