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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뮤 Apr 18. 2024

서울을 떠나고 얻게 된 것

뜻밖의 깨달음

저녁 10시 반, 불을 끄고 누웠다. 어느새 아이들의 새근새근 코 고는 소리가 들리고 내 입에서는 나지막한 한숨이 나온다.

이렇게 살기에는 내가 너무 젊다.

너어무 멀쩡하다


암에 걸린 주제에 스스로를 멀쩡한 몸이라고 한다. 48살인데 스스로를 너무 젊다고 한다. 그렇다. 나는 ‘이렇게’ 살기에는 내가 너무 젊고 건강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할머니처럼 살고 있다. 운동삼아 뒷산에 다녀오면, 나물을 무쳐 밥을 먹고, 동네 산책길에서는 뒷짐을 지고 화초를 들여다본다. 아니다, 요즘 할머니도 이렇게 조용하게 살지는 않을 거다. 문화센터며, 사교모임이며, 얼마나 활발하게들 사시는가.


할머니라기보다는 수도자의 삶에 가까울까. 사람과 향락을 멀리하는 수도자의 삶. 그런데 결정적으로 딱히 수양하는 게 없다. 예배 영상과 성경책을 들여다보기는 하지만 온종일 말씀을 생각하지는 못한다. 스스로 수양하며 살고 있다 하면 벌을 받을 것 같다.


산동네, 인프라가 없는 곳이라 어떤 활동을 하려면 마음먹고 나가야 한다. 운동을 다닐까, 무엇을 배워볼까 검색을 해보다가도 오가는 거리를 생각하면 핸드폰을 내려놓게 된다. 걸어서 왕복 한 시간은 감수해야 한다. 버스는 40분마다 한 번씩 온다.


운전을 하면 훨씬 나을터인데, 부끄럽게도 이 나이까지 운전을 못한다. 면허증은 있다. 그것도 1종, 2종 골고루. 트럭도 운전할 수 있는 대형면허 소지자이다. 그런데 왜 운전을 못하는지는 다음에 이야기하기로 하고 지금은 기동력 제로이다. 그런 인간에게 산밑 생활은 섬생활과 가깝게 되었다.


지인들한테 섣불리 이 산골로 놀러 오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내 친구들은 대부분 서울과 인천에 사는데  대중교통으로 오려면 족히 왕복 3~4시간을 잡아야 한다. 차로 오면 좀 빠르긴 할 텐데, 이쪽으로 오는 고속도로가 때로는 꽤 막히는 곳이라 그런 불편을 감수하라고 하기가 싫다.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되고를 반복하니 결국은 종일 혼자 지내는 삶이다. 남편이 해외에 있어 더욱 그렇다. 같이 있을 때도 그다지 대화가 많은 부부는 아니었는데 이렇게 되고 보니 그 짧은 대화마저 나에게 에너지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이렇게 입 다물고 살기도 처음이다.


남편도 없고 친구도 없는데 꽤 바쁘다. 주부로서 아이 둘을 건사하며 살림하는 것도 빠듯한데 거기에 독서와 글쓰기, 내 건강을 위한 등산과 근력운동, 건강 먹거리 챙기기 등을 더하니, 루틴을 반복하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훌쩍 가버리곤 한다.  




혼자 분주히 지내다가도 문득 도심이 그립다. 서울에 살 때는 광화문이나 부암동, 상수동 등에 버스를 타고 다녀오고는 했다. 그저 좀 걷다 올 뿐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발이 묶인 지금은 그저 산 언저리를 배회할 뿐이다. 걸음마다 고독이 따라붙는다.


휘황찬란하고 숨 쉴 틈 없이 돌아가는 도시의 생활도 외로움이 그림자처럼 함께 하지만, 여기서 푸른 산과 너른 들판을 오가는 삶도 나름의 외로움이 있었다. 여기서는 어쩐지 무언가를 견디고 있는 듯하다. 고요히 견디는 삶이랄까.


나무그늘 아래서 홀로 늙어가고 있는 것 같다. 외로움의 모양도 장소마다 다르다는 것을 요즘 깨닫고 있는 중이다. 서울을 떠나니 얻게 된 것이 또 다른 외로움이라니. 나는 다시 새로운 외로움에 단련되어야 하는 모양이다.




동네에서 20여분을 걸어내려가면 터널 하나가 나온다. 나는 이 동네의 백미가 거대한 돌산도 아니고, 구름처럼 퍼져 있는 꽃나무도 아니고, 반듯하고 멋지게 지은 집도 아니고, 바로 이 낡디 낡은 터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여기를 통과하면 보통의 상가건물과 다가구 주택과 아파트단지가 있는, 살면서 익숙히 보아온 그런 동네를 만나게 된다. 내가 사는 산동네를 이루는 단어들이 고즈넉, 어떤 신비함이라면 이 터널 밖 동네를 대표할 단어는 ‘펑범함’ 일 터. 터널을 사이에 두고 두 동네의 공기는 질감마저 다르다.


원색으로 도색된 간판과 매대에 물건들을 쌓아놓은 마트, 여러 메뉴들을 창문에 붙여놓은 식당, 그리고 무심한 표정으로 오가는 사람들. 그런 풍경 속에 난 드디어 마음의 평안을 찾는다. 어째서 푸른 산이 아니라 소음과 먼지 속에 평안을 찾는가, 의문이 안 들 수가 없지만, 어쨌든 나를 이루는 것은 아직 그런 것들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신혼여행지로 하와이를 갔었다. 그때 신혼부부들을 인솔했던 가이드 아저씨는 25살 때 하와이에 공부하러 왔다가 눌러살게 된 이후 한국에 25년 간 가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분은 여행지 엽서처럼 아름다운 와이키키 해변을 앞에 두고 이런 말을 했었다.


“사람들은 이 천혜의 환경에서 사니 얼마나 좋겠냐며 부러워하지만 나는 더러운 인천 바다를 보며 회 한 접시 놓고 소주 한잔 하는 게 꿈이라오."

이 말을 할 때의 아저씨는 스산한 얼굴이었다. 나는 요즘 종종 그 아저씨의 얼굴을 떠올린다. 지인들은 자연 속에 사니 좋겠다고 하지만, 나는 집에 있으면서도 이제 그만 집으로 가야 할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히고 만다.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 나의 집이 있을 것만 같다.



 

터널을 걷다가 종종 뒤를 돌아본다. 터널 밖 세계가 내가 안 보는 사이 사라질까 해서이다. 너무 오랜 세월 다른 세계에 살면 현실에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는 경고를 들은 어느 동화 속의 주인공처럼, 그렇게 나는 한동안 터널을 가운데 두고 두 마을을 오가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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