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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뮤 May 17. 2024

산으로 이사 왔는데 공사장이 뷰라니


산밑으로 이사 오면 새소리에 눈을 뜰 줄 알았다.


창문을 활짝 열고 신선한 산공기를 깊숙이 마시며 하루를 시작하겠지. 웬걸, 새소리가 아니라 덤프트럭 다니는 소리에 아침이구나 싶다. 오전에 공사가 제일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까닭에 먼지가 들어올까 환기도 할 수가 없다. 집 바로 앞이 공사장인 까닭이다. 덤프트럭, 포클레인 등 각종 중장비들이 베란다 앞을 아슬아슬하게 스치 듯 지나간다.


지난밤에는 저녁 11시에 트럭이 드나들었는데 우리 집이 1층인지라 안방으로 차량 헤드라이트의 눈부신 빛이 그대로 쏘아졌다. 번쩍번쩍, 마치 길바닥에 누워있는 기분이었다. 이쯤이면 중얼거리지 않을 수 없다.

"서울에서도 이렇게 지내지는 않았는데..."


집을 구할 때 거실 바로 앞에 공사장이 있는 건 알고 있었다. 아랫동네에 지하철이 들어서는데 필요한 시멘트 등을 만든 공사장이었다고 한다. 부동산에서는 지하철역이 완성돼서 바로 철수할 예정이고, 원래 용도인 배밭으로 원상 복귀된다고 했다.


이사 온 시점이 2월 중순이고 철수작업을 3월 말까지 한다니 한 달 정도만 참으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5월 중순인 지금까지 철수 중이다. 큰 시설도 없었는데 철수하는데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지 전문가가 아니니 알 수가 없다. 몇 번 공사장에 가서 물어봐도 곧 끝날 거라는 대답뿐, 덤프트럭이 하루에도 몇 번씩 뭔가를 가득 싣고 나가는데 별다른 변화는 없어 보인다. 창 밖의 어수선함이 집 안까지 들어오는 것 같아 낮에도 블라인드를 내린다.




산밑까지 왔는데 좋은 공기 마시려면  되도록 우리 집에서 멀리 가야 하는 아이러니. 더 환장할 것은 우리 집 앞이 동네 흡연장이 되었다는 것이다. 동네 사람들도 이곳 공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관심이 있기에 하루에도 몇 명씩 공사장을 지켜보다 가고는 한다. 그러면 남자들은 담배를 꼭 한 대씩 피우곤 한다. 공사장 직원분들도 쉴 때마다 한 대피씩. 근처에 회사 하나가 있는데 부러 여기까지 와서 한 대피씩.


그냥 지나가던 사람들도 공사장 앞에서 갑자기 발길을 멈추고 담배를 꺼낸다. 공사장 먼지에 담배 냄새까지 더해 더더욱 창문을 열기가 힘들다. 베란다가 있어도 빨래 널기 찝찝하니 서울 아파트에서 살 때처럼 실내에 빨래를 널게 된다. 햇볕에 빨래를 바짝 말리는 기쁨은 여기 와서도 맛보기 힘들구나 싶다.


-> 거실에서 찍은 사진. 그야말로 코앞이 공사장이다.


소음도 만만치 않다. 땅 고르는 작업을 할 때면 그 소리에  말소리도 안 들릴 정도이다. 이사오기 전에도 주변에서 공사작업이 있을 때가 여러 번 있었지만 이렇게 코앞인 적은 없었다. 그래도 끝이 있는 시간이기에 곤두서려는 마음을 다스릴 수 있었다.  공사장만 철수하면, 거실창문에 산이 가득한 뷰를 갖게 된다. 조금만 참아보자.


그런데 얼마 전 새로운 소식을 듣게 되었다. 집이 들어선다는 것이다. 원상 복귀되는 배 밭 앞으로, 그러니까 우리 집 거실 바로 앞이 되겠다. 4층짜리 집이 들어설 거라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그러면 얘기가 달라진다. 산밑까지 올라온 것은 공기 때문도 있지만 산을 보며 살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 동네에 집을 알아볼 때 고민했던 부분은 두 가지였다. 동네 아래쪽으로 집을 얻어서 인프라가 갖춰진 아랫동네와 가깝게 지내느냐 아니면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불편을 감수하고 최대한 산 가까이 사느냐였다.


고민 끝에 늘 산을 보며 지내는 생활을 선택했다. 당시 산 바로 밑에 딱 하나 나온 집이 지금 이곳이었고, 우리가 가진 짐의 규모에 비해 집이 작았지만 감수하고 얻기로 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먼 것도, 신랑이 출근하며 탈 지하철 역이 먼 것도 감수하기로 했다.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그런데, 집이 들어선다니. 창밖이 남의 집이 될 거면 아이들 학교, 학원, 남편 회사를 생각해서 이렇게 위까지 올라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러 문제로 골치가 아프던 차에 이 사실까지 알게 되니, 참 뜻대로 되는 게 없구나 싶어 한동안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어쩌랴. 상황이 바뀌지 않으면 내 생각을 바꾸는 게 결국 나한테 좋은 일이다.


좋은 점을 생각해 본다. 그래도 산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산이 가까워서 등산하러 갈 때 갈등 없이 나갈 수 있다. 산이 멀었으면 가기 싫은 마음과 싸우는 시간이 길어졌을 것이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아름다운 집에 좋은 이웃이 오면 좋겠다. 공사장 철수하고 새집 공사가 시작되기까지 며칠은 허허벌판일 테니 그때 거실에서 산을 실컷 봐둬야겠다. 산에 시선을 두며 커피를 호로록 마시는 로망, 한 번은 해볼 시간 정도는 되겠지.  아, 그러고 보니 또 공사가 시작되겠구나.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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