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목격해온 작가가 결국 발견한 삶의 문장
드라마 <지옥에서 온 판사>가 높은 시청률로 종영했다. 지옥에서 온 악마가 판사의 몸을 빌려 현실의 죄인들을 처단한다는 설정이 흥미로워 관심을 가졌지만, 잔혹한 장면이 반복되어 끝내 보지 못했다. 피가 튀고, 칼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장면들은 누군가에겐 사이다였을지 몰라도, 내게는 리모컨을 꺼버리는 순간이었다.
그런 장면들이 어쩌면 너무나도 사실적이라 더 불편했는지도 모른다. 세트장을 실제 현장처럼 꾸미고, 배우를 마치 시신처럼 분장했을 미술팀을 생각했다. 그들은 아마 실제 사건 현장의 사진을 참고했을 것이다. 꿈자리가 사납지는 않을까. 얼굴도 모르는 스태프들이 괜히 걱정되었다.
나는 10년 동안 살인사건 분석 기사를 썼다. 단순 보도가 아니라, A4용지 10장에 달하는 심층분석 기사였다. 취재는 형사와 과학수사관 인터뷰로 이뤄졌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협조를 받기도 했다. 매 사건마다 감당해야 할 자료는 사과 한 상자 분량. 핵심 정보를 추려 정리하는 일도 내 몫이었다.
수사자료에는 수백 장의 현장사진이 포함되어 있었다.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 내부용 기사였기에 제한 없이 자료를 받을 수 있었고, 확인한 자료는 외부에 유출 되지 않도록 자체 폐기했다. 시신이 발견된 장소의 외부부터 내부 구석구석, 시신의 전체 모습과 신체 일부를 클로즈업한 사진까지 모두 담겨 있었고 그중 약 20여 장을 기사에 함께 실었다.
기사에 사진이 들어가긴 했지만, 현장 모습을 텍스트로도 묘사해야 했기에 사진을 꼼꼼히 살펴봐야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본 동료와 수사관들은 종종 물었다.
“그 사진들 보는 거, 괜찮아요?”
나는 무심히 “일이니까요.”라고 대답했지만, 사실은 괜찮지 않았다. 자연사한 시신조차 보기 힘든데, 살인사건은 대부분 참혹한 모습으로 끝을 맞은 상태였다. 특히 사후 경과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눈꺼풀을 뒤집어 동공을 클로즈업한 사진은 끝끝내 보기 어려웠다. 의도치 않게 눈이 마주치기도 했고, 그럴 땐 서늘한 기운이 등을 타고 내려왔다.
칼에 깊이 찔려 상처가 벌어지고, 도끼에 맞아 머리뼈가 으스러지고, 부패로 얼굴이 검푸르게 변하고, 구더기로 형태를 잃어가는 모습들.
나는 다음에는 조금 더 익숙해지기를 바라며 애써 고개를 들고 사진을 바라봤다. 그리고 깨달았다. 영화나 드라마 속 잔인한 장면들이, 실제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 드라마 속 한 장면
어느 날은 일상 속 평온한 저녁을 보내다가, 어느 날은 피로 얼룩진 풍경을 마주해야 했다. 화들짝 놀라 깨어난 밤, 눈을 감으면 피에 젖은 시트와 눈을 치켜뜬 시신, 시뻘건 칼자국이 신기루처럼 떠올랐다. 그런 날은 그냥 잠을 포기했다. 창밖의 어둠이 헤드라이트 빛에 흔들리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유령처럼 집 안을 서성였다. 내 밤이, 과연 안전한지 확인이라도 하듯이.
그렇게 괜찮음과 안 괜찮음을 반복하며 취재한 사건은 약 100여 건. 공부 삼아 들여다본 자료까지 합하면 아마 우리나라에서 주목받은 대부분의 사건 현장을 다 봤을 것이다. 한 생의 죽음을 애써 정리하면, 다음 죽음이 밀려왔다. 끝없이 돌아가는 컨베이어벨트 앞에 선 것 같았다. 사건마다 다 다른 이야기였지만, 그 중심엔 어김없이 ‘인간’이라는 어둠이 있었다.
사람이 사람을 죽일 수 있게 되는 그 분노, 자신조차 놓아버리는 경멸, 기어코 지옥을 향해 나아가는 광기. 그런 마음들이 사진보다 더 나를 멈춰 세웠다. 그리고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한 생명. 그들이 숨을 거두기 전 마지막으로 떠올린 생각, 그들의 눈동자에 남은 마지막 풍경. 이런 것에 이런 것에 골몰하다 보면, 가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밤과 아침이 맞닿아 있듯, 선과 악도 그렇게 뚜렷하게 갈리는 게 아니라고.
그것들은 일상 속에, 엉겨 붙은 채 함께 살아 숨 쉰다고.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 자꾸 물었다. 마음이란 무엇일까. 사랑은? 관계란?
비극의 잔해 속에서 골몰하다 보면 결국 아주 단순한 진실에 다다랐다.
‘무사히 지나가는 이 보통의 하루가 가장 소중하다.’
그 하루는 지난 모든 날의 노력과 성실이 쌓여 만들어진 기적 같은 선물이라는 걸. 지금 이 숨결이, 평안이, 스치는 바람이… 살아있기에 가능한 것이라는 걸. 그것을 깨달을 때마다, 나는 죽음에서 도망치듯 산 사람들을 찾았다. 그리고 소망했다. 오늘 하루를 그들과 꼭 안고 가고 싶다고. 조용히 흐르고, 소소하게 빛나는 하루면 충분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