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에 걸린 이후로 연말에 대한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예전엔 이루지 못한 일들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나무라곤 했다.
‘좀 더 부지런했어야지.’
이제는 병에 걸린 몸으로, 기대할 수 있는 것조차 제한적이니 자연스레 자책할 힘이 사라졌다.
‘이 몸으로 이렇게나 했어?’
조금만 이루어도, 아니 제자리걸음만 해도 남도 나도 대견하다. 웃프지만, 면죄부를 손에 쥔 것 같아 괜찮다.
연말이면 한 해의 평안들을 나열해본다. 별 탈 없이 보냈기에 가능했던 일들을 쭉 적어 내려가면, 의외로 많은 일을 했다고 스스로 대견해진다. 보통의 일상 속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다는 게 감사함으로 다가온다. 새해에도, 그저 올해만큼만 무탈하게 지내길 기도하며. 정말 기본적인 소원. 그런데 그런 소원마저 사치처럼 느껴지는 일이 있었다.
2024년 12월 29일,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로 179명이 사망했다는 소식은 지난여름 여수공항에서 기상 악화로 두 시간 넘게 대기하며 느꼈던 극도의 공포를 떠올리게 했다. 대형 참사란 게 바로 내 옆에서 일어날 것만 같았던 그 순간, 너무 무서워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어버리는 것만 같았다. 불시착한 제주 여객기가 활주로를 질주할 때,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은 얼마나 무서웠을까. 특히 여객기 안에 있었다는 세 살 난 아이를 생각하자, 그 작은 공포가 전해져와 눈시울이 붉어졌다. 엄청난 성공과 부를 바라는 게 아니다. 그저 평범한 하루를 바라는 게 이토록 사치로 느껴지는 세상은 도대체 어디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걸까.
여객기 사고가 있기 오일 전인 12월 24일, 그날 나는 CT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몇 분이 몇 시간 같이 흐르고 간절히 듣고 싶은 그말. '이번에도 괜찮습니다.' 짧은 말 한마디에 긴장감이 눈 녹듯 사라졌다. 면회실에서 나오자마자 결과를 기다리고 있을 가족들에게 얼른 메시지를 보냈다.
“나 이번에도 깨끗하대.”
가족들은 기쁨의 이모티콘을 보내며 축하해 주었다.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며.
그렇다. 아만자에게 가장 좋은 성탄 선물은 '이상 없음'이라는 검사 결과일 것이다. 미소를 머금고 가볍게 걸으며 복도를 지나가다, 대기실 한쪽에서 세 명의 여인들이 눈에 띄었다. 자매처럼 보이는, 50대 가량의 여인들. 그녀들은 울고 있었다.
한 명은 손수건에 얼굴을 묻고, 한 명은 의자에 엎드리고, 또 다른 한 명은 벽에 기대어 울고 있었다. 그들은 소리 죽여 울었지만, 어깨는 격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 장면을 지나칠 때, 내 미소는 서서히 사라졌고, 발걸음은 점점 느려졌다. 문득 내 앞에 펼쳐진 병원의 풍경이 들어왔다. 지친 몸을 의자에 늘어뜨린 사람, 헐렁한 환자복을 입은 소아암 환자, 대기번호표를 손에 꼭 쥔 보호자 가족. 1년 365일, 같은 풍경이 이어지는 이곳. 병원에 들어서면, 늘 시간의 흐름이 멈춘 듯하고, 과거의 고통이 다시 나를 감싸는 듯하다.
울고 있는 여인들 앞을 지나가며, 나는 숨을 죽였다. 조금 전, 집으로 돌아가 크리스마스를 맞이하겠다는 기쁨은 바람처럼 사라졌다. 나의 무탈함이 미안해지고, 그저 또 다시 허락된 3개월의 시간이 나를 겸손하게 만든다.
석 달에 한 번씩, 무서운 예감이 틀리기를 바라며 사는 삶은 확실히 버겁다. 매일을 당연하게 여기며 사는 사람들의 삶이 부러워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 사고를 보며, 또 만날 수 있다는 믿음이 사치인 세상 속에 사는 건 우리 모두가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남국인 의사는 <우리 사이엔 오해가 있다>에서 이렇게 썼다. "우리는 대체로 패배하고, 가끔 승리했다고 생각하겠지만 다시 패배로 돌아올 것입니다. 그래서 삶은 눈물 나는 일입니다."
삶은 눈물 나는 일이다. 그럼에도 눈물을 훔치며, 새해를 맞이하고, 밥을 먹고, 일을 해야 한다. 믿음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계속 나아가야 한다. 비록 큰 기쁨이 없을지라도, 이 반복되는 하루가 기적이고, 무사히 지나가는 그날들 속에서 우리의 모든 것이 지속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되새긴다.
커버사진-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