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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나먼 여정 Oct 14. 2023

문을 미시오

아이 걱정에 잠 못드는 엄마가 있다면

도립미술관 전시회를 관람하던 중이었다. 신영상의 <양지> 앞에 선 순간 커다란 그림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너는 나를 이해하겠니? 하고. 아닌 게 아니라 어두운 선으로 가득 차 있는데 제목이 왜 ‘양지’인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가만히 바라보다 몇 발작 뒤로 물러서 보았다. 그러자 문 하나가 두둥실 떠올랐다. 하얗고 얇은 창호지가 앞뒤로 붙여져 있을 것만 같은 문살이었다.

 

무엇을 그렸는지는 알아차렸으나 여전히 이게 왜 ‘양지’인지 답을 찾을 수가 없어 작품을 마저 바라보았을 뿐이었다. 전우치가 성큼 걸어 들어갔다던 그림족자처럼 나는 어느새 어둡고 좁은 방으로 들어와 있었다. 밖의 환한 볕마저 어두운 문살의 그림자와 그 사이 작은 빛으로 쪼개져 들어오는 곳이었다. 그 곳에서 유령처럼 희미했던 어느 날의 나를 만났다. 하얗고 창백한 얼굴에 웃음도, 울음도 잃은 채 그녀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곳에 머무는 중이었다. 지금의 나에겐 너무도 낯선 그녀가 언제부터 방 안에 있었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어째서 그 곳에 있는지 그 까닭은 알고 있었다.

 

그녀가 처음부터 그 곳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남들처럼 적당히 행복하고 보통의 일상을 즐기며 지내던 참이었다. 그러던 중 결혼을 했으니 으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던 '이것'을 시작하였을 뿐이었다. 세상에 새로운 생명을 내놓아 하나의 인격으로 성장시키는 것을 사람들은 ‘육아’라는 말로 간단히 압축했다. 그리고 그 껍데기에 가볍고 친근한 몇 가지 이미지를 붙였다. 엄마, 아기, 모성애, 귀여운, 힘들지만 보람찬. 그녀 또한 사람들이 붙여놓은 그런 이미지를 그대로 믿었다. 그 안엔 겉처럼 좋은 것들만 가득할 것이었다.

 

지독한 착각이었다. 육아는 그녀 인생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었고 그녀를 좌절케 하는 일이었다. 그녀의 아이는 눈맞춤이 약했다. 모르는 사람은 물론이고 엄마, 아빠의 눈도 좀처럼 바라보질 않았다. 말은 하였지만 본인의 관심사를 제외하곤 묻는 말엔 제대로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을 힘들어 하였으며 가끔씩 듣도 보도 못한 말을 하였다.

 

그녀는 그런 아이를 늘 불안한 눈으로 바라봤다. 육아의 즐거움 따위야 진작에 잊어버렸다. 하지만 이런 고민을 말로 내뱉는 순간 아이는 다른 이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받을 것 같아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다. 대신 지나가는 모든 아이와 모든 엄마가 부러웠다. 축구를 하는 아이가 있으면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뛰어노는 모습이 부러웠고, 재잘재잘 말하는 아이가 있으면 평범한 일상을 아이와 주고받는 엄마가 부러웠다. 이 세상 모든 아이가 자신의 아이보다 나아보였고 그녀 자신은 이 세상 엄마 중 가장 불행한 엄마였다.

 

결국 불안함을 놓지 못한 그녀는 아이의 손을 잡고 상담센터와 소아정신과를 전전하였다. 때로는 유명한 교수에게 진료를 받기 위해 다른 지역에 가기도 해 봤지만 어떠한 진단명이나 구체적인 해결방안도 찾질 못했다. 그 와중에 그녀는 진심으로 바라게 되었다. 그냥 이 세상에서 내가 조용히 사라졌으면. 그러면 그녀 자신을 괴롭히는 모든 것들이 끝날 것만 같았다. 그렇게 그녀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 안에서 가만히 머물다보면 언젠가는 그녀의 바람대로 모든 게 사라져 있을 것만 같았다.

 

사실 그녀를 진심으로 힘들게 했던 건 아이 자체가 아니었다. 그녀 자신이 만들어 내는 아이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 아이를 제대로 사랑해 주지 못했다는 후회가 스스로를 무너뜨리고 있었다는 걸 한참 후에야 깨달았다. 하지만 이미 많은 것들이 엉망진창이었고 그녀 스스로 방문을 열고 나갈 자신이 없었다. 세 아이가 밖에서 엄마를 불렀지만 여전히 선택할 수 없었다. 문을 열어도 될까. 저 밖으로 나가도 될까.

 

우연히 접하게 된 ‘약점이 없는 사람은 없다. ADHD정도는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는 어느 소아정신과 의사의 글을 막 다 읽은 참이었다. 그 글의 끝에는 온점만한 작은 글씨로 ‘미시오.’라고 써져 있었다. 사실 '당기시오'라고 쓰여져 있어도 크게 상관없었다. 다만 예전엔 보이지 않던 글자가 그녀 눈에 띄이기 시작한 것이 중요했다.

 

그 후로 그녀는 계속해서 그 글자를 찾아냈다. 씩씩하게 뛰어 노는 아이의 뒷모습에서, 동생에게 내미는 아이의 손에서 ‘미시오’를 보았다. 아이의 친구가 제일 좋아하는 친구로 아이를 꼽을 때, 동네 할머니가 들려준 아이의 의젓함에서, 선생님이 '우리 반의 평화주의자' 라 부르는 아이의 모습에서도 '미시오'를 보았다. 아이는 자신의 방식으로 성장을 계속 하고 있었다. 단지 그게 그녀가 마땅히 이래야 한다고 생각하던 틀과 다른 모습이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크고 작은 '미시오.' 를 찾고나서야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침내 그녀가 문을 열고 나갔을 때 그녀는 따스한 볕 아래 있었다. 양지였다. 양지의 공기는 따스했고 땅은 푸르렀으며 새가 노래했다. 햇볕은 언제나 모든 곳에 공평하게 머물고 있었다. 그녀가 홀로 어두운 방에 머물던 순간에도 밖은 언제나 이렇게 따뜻했을 터였다. 오랜 시간 닫혀 있던 방에도 열린 문 사이로 볕이 들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서둘러 아이들에게 달려갔다. 아이들은 엄마를 보고 환호했다. 그녀는 아이들의 조막만한 손을 잡고 양지 곳곳을 누볐다. 아이들은 어느 새 많이 자라 있었다. 아이들이 웃었고 그녀도 웃었다. 나는 그녀의 행복한 얼굴을 확인한 것을 마지막으로 뒤돌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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