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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나먼 여정 Oct 14. 2023

사물이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당신의 생각보다 훨씬 더 가까이에서 당신을 지켜보는 존재에 대하여

내가 여섯 살 즈음, 가족과 함께 외출하는 차 안에서 이제 막 말을 배우기 시작한 남동생이 말했다.

“개새끼”

그러자 다정한 누나였던 나는 친절하고 차분하게 동생에게 설명했다.

“동현아, 개새끼는 아빠가 운전하다가 화가 날 때 하는 말이야.”     

대다수의 아빠들처럼 우리 아빠 또한 운전할 때 종종 욕을 썼던 모양이다. 그러지 말라고 엄마가 수 차례 말했을 땐 듣는 척도 안 하더니 이 일이 있고서야 아빠는 한동안 조용히 운전했다고 한다. 물론 얼마 안 가긴 했지만.      


그로부터 30년이 지나, 나에겐 세 명의 아이가 있다. 그리고 그 사실은 여섯개의 눈과 여섯개의 귀가 호시탐탐 나와 남편을 지켜보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얼마 전, 남편과 사소한 일로 언성을 높일 때였다.

“엄마랑 아빠, 지금 싸우는 거야?”

막내가 우리를 쳐다보며 물었다. 그제서야 우리는 황급히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아니야. 서로의 생각을 교환하는 중이야.”     


 아이를 낳고 키우며 제일 무서운 순간은 방학도, 수족구나 구내염의 유행도 아닌 부모의 모습이 아이의 말이나 행동을 통해 나올 때 아닐까.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라고 하더니 정말로 그랬다. ‘밤말은 쥐가 듣고 낮말은 새가 듣는다’고 하였지만 아이들이 그보다 더 빨랐다. 조용히 속삭이는 작은 이야기도 다 듣고 있었고, 보이지 않게 뒤에서 하는 행동도 다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보고 들은 부모의 말과 행동에 대해 좋고 나쁨의 판단 없이 그저 따라하였다. 그러니 아이에게서 대체 어떤 말과 어떤 행동이 나올까 나는 늘 긴장이 된다.

      

 요즘 글쓰기에 온 신경을 집중하다보니 집안일 또한 최소한의 것만 하며 살고 있다. 난장판인 집안에서의 어느 날이었다. 식사를 하려고 거실에 커다란 상 하나를 펴니 여덟 살 첫째와 다섯 살 쌍둥이들 모두 책과 연필을 가져왔다. 그리곤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한참을 집중해서 일기를 쓰고 수학 학습지를 풀었으며 그림책을 읽었다. 시킨 적도, 가르친 적도 없는데 아이들 스스로 그렇게 하였다. 감사하게도 아이들은 청소를 하지 않는 엄마의 모습보다 매일 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읽고 쓰는 엄마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교육학 용어 중 잠재적 교육과정이라는 것이 있다. 학교 교육에서 의도하거나 계획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학교에 다니며 은연중에 습득하게 되는 것들을 일컫는다. 이러한 것들은 오히려 계획된 교육과정보다 반복적이고 장기간에 걸쳐 이뤄지기 때문에 학습의 효과가 오래 지속된다. 어쩌면 가정에서 아이들이 보고 듣는 부모의 말과 행동 또한 이와 맥락이 같지 않을까. 아이들에게 하는 말과 행동뿐 만 아니라 본인이 습관적으로 하는 사소한 말과 행동일지언정 옆에서 지켜보며 자라온 아이의 삶에 스며들어 밖으로 새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니 아마 아이 또한 부모의 말과 행동 그대로 따라하며 살아갈 터였다.      


 그러니 내뱉는 호흡 하나, 들이마시는 숨 하나 조심스럽게 쉬어야 하는 게 육아이며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선 나부터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스스로 당부한다. 그래서 누군가에겐 우습게 들릴지 몰라도 나는 초등학교 1학년 교과서에 나올 법한 사소한 일들을 열심히 실천 중이다. 누구든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고 작은 쓰레기 하나 버리지 않고 꼭 가져온다. 분리수거도 철저히 하고, 양치할 때 물도 꼭 컵에 받아서 쓴다. 그리고 무엇보다 꿈을 이루기 위해 매일의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며 나의 꿈에 대해 아이들에게 들려준다.  

   

 이 모든 것은 내가 원하는 삶의 방향으로 가는 동시에 내 등 뒤에서 나의 행동, 말, 눈빛 하나 놓치지 않고 있을 아이들을 위한 것이다. 그러니 지치거나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도 나는 멈출 수 없다. 언젠가 아이가 엄마도 해냈으니 자신도 할 수 있으리라 믿게끔 하려면 말이다. 낳기만 했다고 부모냐는 말을 종종 듣는다. 나에겐 아이가 원하는 건 무엇이든 사 줄 수 있는 재력도, 아이의 성적을 바꿔줄 만한 사교육에 대한 정보도 없다. 다만 부모이기에 아이보다 앞서 모범을 보일 만한 어른이 되고자 한다. 그것이 내가 부모로서 아이에게 해줘야 하는 역할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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