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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나먼 여정 Oct 14. 2023

관계자 외 출입금지

아들이 여자친구가 생겼다.

 8살 첫째 아들이 여자친구가 생겼다. 무려 결혼을 약속한 사이라고 하니 아주 진지한 관계이다. 그리고 오늘은 그 여자친구가 우리집에 오는 날이다. 나는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대청소를 시작했다. 시부모님이 아닌 시할머님이 오신다고 한들 하지 않았을 일이다.  그리고 혹시 노는 데 끼어들어 방해를 할까봐 동생들을 각각 시댁과 친정으로 미리 보내버렸다. 그 사이에 남편은 근처 꽃집에서 연분홍색 장미 한 송이를 포장해 왔다.


 드디어 약속 시간이 되어 여자 친구가 집에 왔다. 남편은 아들에게 꽃을 쥐어주며 준비한 말을 하라고 허리춤을 쿡쿡 찔렀다.

“우리 집에 와 줘서 고마워.”

 우리의 기대와 다르게 아이는 눈도 마주치지 못한 채 로봇마냥 외운 대사를 말하며 꽃을 내밀었다. 아무렇게나 내민 탓에 꽃다발 비닐에 여자애 눈이 찔릴 뻔 했다. 여자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하얗게 질려서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은 표정이었다. 자기 집이지만 어색해 하는 아이와 왜 인지 모르게 겁에 질린 여자아이를 보며 둘이 잘 놀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시끄러운 동생들이라도 보내지 말 걸. 어떻게든 분위기를 풀어야겠다는 생각에 보드게임을 꺼냈다. 나의 주도하에 두 판 정도 하고 나자 아이들은 그만하겠다고 했다. 다른 보드게임을 보여주려는 순간 거실에 둔 핸드폰이 울렸다. 얼른 나가 핸드폰 통화를 마치고 다시 방 문을 열려는데 소곤거리는 소리와 작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때맞춰 안사돈(여자친구의 엄마)이 보낸 메시지가 왔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해요. 우리 아이가 부끄러움이 많아 쭈뼛거려도 이해해 주세요.'


 나는 그제야 조용히 뒤돌아 거실로 나왔다. 당사자가 아닌 이들이 끼어들어 이래라 저래라 한 게 문제였다. 아이들의 소곤대는 목소리는 점점 커지더니 곧 자기들이 정한 놀이를 하기 시작했다. 전쟁 놀이인지 소꿉놀이인지 남자아이와 여자아이의 놀이 그 언저리 어딘가를 왔다갔다하며 아이들은 꽤 오랫동안 잘 놀았다. 마침내 저녁이 되어서야 매우 아쉬워 하며 헤어졌다. 정리를 하기 위해 방에 들어가 보니 어느 새 알아서 정리까지 마친 후였다.

      

 누가 뭐래도 오늘 만남의 당사자는 아이들이었다. 나나 남편 모두 관계자가 아니었기에 한 발작 뒤로 물러나 있어야만 했다. 그런데 우리가 나서서 꽃이니 게임이니 끼어든 탓에 정작 당사자들의 위치가 애매해졌다. 아마 불편하고 긴장되었을 것이다. 오히려 아이들만 두었을 때 비로소 즐겁고 재미있는 시간이 되었다. 심지어 기대하지 않았던 정리정돈까지 할 정도로 아이들은 성장해 있었다. 


 언젠가 어른이 된 아이가 정말 결혼할 여자를 데려오면 나는 어떻게 할까? 등교 전 가방에 준비물은 잘 챙겼는지 꼭 아이의 가방을 열어보고, 학교 끝나면 집으로 바로 오는지 노파심에 매번 전화를 거는 내 입장에선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는 미래였다. 그 때가 오면 내가 오늘 방문을 닫고 나온 것처럼 너희들끼리 알아서 잘 살아라 하고 간섭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아이를 내 아이가 아닌 한 사람의 남편으로 여겨 아이의 독립을 인정할 수 있을까. 혹시 이러다 남들이 말하는 진상 시어머니가 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마저 들었다. 


 나는 아이에게 언제까지 관계자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봤다. 성인이 되는 스무살이든 자기 밥벌이를 하는 취직 후 든 명확한 선을 긋는 건 아무래도 힘들다. 단지 관심이 간섭이 되지 않고, 믿음이 방임이 되는 선에서 아이와의 적당한 간격을 유지해야 했다. 마치 너무 가까워도, 너무 멀어져도 안 되는 난로처럼 아이의 옆에서 따뜻한 시선과 마음으로 지켜봐 주는 것이 내 몫이었다.

 

 아이와 함께 한 지난 날들이 떠오른다. 세상에 막 나오자마자 있는 힘껏 울고 빠는 아이가 신기하고 대견했다. 이 작고 연약한 존재에겐 나밖에 없다는 사명감에 매일 밤을 지새우며 모유수유를 하고 자장가를 불러주었다. 아이가 아플 땐 대신 내가 아프겠다며 간절히 기도하고 첫 뒤집기를 하던 순간, 세상을 뒤집어 놓은 것처럼 흥분하였다. 아이가 내딘 첫 걸음마, 아이와 함께 한 첫 여행. 아이가 커 가는 그 모든 순간들마다 나는 늘 아이 옆에 있었다. 그런데 그런 아이에게 어느 새 내가 간섭하면 안 될 부분이 조금씩 생기고 있다. 


 육아의 목표는 자녀의 독립이라던가. 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가 자신의 꿈을 펼치며 사는 것이 내 육아의 목표임을 가끔씩 나는 잊고 마는 것 같다. 그저 별 탈없이 내 옆에 있기를 바라며 나도 모르게 평생 아이와 함께 할 것처럼 여기고 있었다. 이 아이에겐 이 아이 몫의 삶이 놓여 있으며 나는 잠시동안 손을 잡고 걸어갈 뿐 임을 잊지 말아야 했는데도 그랬다. 그래서 앞으로 언젠가 관계자 외 출입금지 지역을 만나게 되면 아이를 홀로 들여보내고 나는 그 곳에 서서 내내 아이를 응원해 주기로 다짐했다. 언젠가 힘에 부친 아이가 돌아봤을 때 힘이 나도록 말이다. 그렇게 다짐하고 나니 아이가 아무리 커도 엄마가 할 일이 있다는 것에 나는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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