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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뿌리샘 Nov 04. 2024

달이 보낸 원기옥

달무리 지던 날, 아이가 사라졌다

어느 평범한 퇴근길이었다. 저녁에 있을 일정을 확인하며 나서려는 찰나, 핸드폰이 울렸다. 얼마 전에도 웃으며 만났던 친구의 부친상을 알리는 전화였다. 허겁지겁 장례식장에 가 보니 며칠 새 퀭해진 얼굴이 하나 보였다.  

“보영아.”

그저 이름만 불렀을 뿐인데 친구의 눈엔 어느 새 눈물이 그렁그렁 했다.  

“그 때가 마지막 인 줄 몰랐어. 다시 볼 날이 있을 줄 알았어.”

앞 뒤 문장, 주어와 목적어가 무엇인지 되묻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쉼 없이 어깨를 들썩이는 그녀를 안아주며 고독사한 고인의 명복을 비는 것 뿐이었다.    

벌개진 눈으로 장례식장을 나오는데 무심코 올려다 본 하늘의 달무리에 시선이 갔다. 제대로 보이지 않아 희뿌연 달과 그 앞의 검은 구름들이 마치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우리네 인생 같았다.

‘사는 게 덧없네.’ 

그 순간, 내 생각이 우습다는 듯 순식간에 구름이 모두 걷혔다. 그리곤 깜짝 놀랄 정도로 크고 환한 달이 제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 생소한 모습에 넋을 잃고 바라보다 며칠 내내 뉴스에 나왔던 ‘슈퍼문’임을 깨달았다. 흔하지 않은 모습의 달을 잠시 올려다보는 동안 문득 의구심 하나가 들었다. 그동안 내 삶은 달을 쫓았던 것일까, 달무리를 쫓았던 것일까 하는 의문이.       


갑작스런 조문으로 조금 늦긴했지만 미리 약속된 일정이 있어 그곳으로 향했다. 평소 친하게 지내는 동네 엄마들과의 저녁 모임이었다. 특히 약속 장소가 a언니 집인 까닭에 나보다 아들이 기다려 왔다. 사회성이 약해 늘 친구가 없다며 울상인 아이지만 그래도 그 언니의 아들과는 몇 년 째 친하게 지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참을 놀던 아이들이 편의점에 가겠다고 나섰다. 나갈 때부터 티격태격하더니 몇 분 뒤, 울상이 된 얼굴로 돌아왔다.

“동글아, 왜 그래?”

“엄마, 걔가 나만 버리고 갔어.”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었다. 친구는 종종 아이를 두고 가버렸고 그 때마다 아이는 속상해 했다. 옆에 있던 엄마들이 아이에게 신경 쓰지 말라고 한 마디씩 해 주었지만 오늘따라 어지간히 마음이 상했는지 기분 나쁜 티가 역력했다.

 오래지 않아 아이의 친구가 돌아왔다. 나를 제외한 다른 엄마들의 열렬한 환호와 박수를 받으며. 그 아이가 한 봉지 가득 사온 아이스크림 때문이었다. 떠들썩한 파티 분위기 속에서 오로지 나만 내 아이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내 입으로 왜 우리 아들은 두고 갔냐고 물어보는 건 산통을 깨는 소리 같았다. 혹시 날 예민한 엄마라고 생각할 지도 몰랐다. 결국 아무 말 못하는 내 뒤에 서 있던 아이는 아이스크림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더니 현관문 닫는 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방금 동글이 나간 거 아냐?”

“집에 가나보죠, 뭐. 아휴, 속이 너무 좁아서 문제에요.”

아무렇지 않은 척 웃으며 대답했지만 확인차 남편에게 전화를 하고 난 후,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이가 집에 가지 않았다. 정말 사라져 버린 것이다.      


거리에는 이미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오늘따라 더 캄캄한 것만 같은 골목과 놀이터, 학교 운동장까지 아이의 이름을 불렀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같이 술을 마시던 다른 엄마 몇몇도 나와서 함께 찾아 다녔지만 아이는 어디에도 없었다. 

대체 나는 왜 아이를 혼자 보냈을까. 속상한 아이를 제대로 달래주지도 못했을까. 다른 엄마들 눈치를 살피느라 아이의 마음을 무시했던 내가 밉고 한심했다. 술 마시느라 아이를 방치하던 엄마들 이야기가 남 얘기가 아니었다. 정신없는 마음과 별개로 다리는 쉴 틈 없이 아이를 찾아 걷고 뛰는데 누군가 부른 경찰이 왔다. 그리고 동시에 남편의 전화가 왔다. 

“여보, 경찰 왔으니까 조금 있다 전화할게.”

할 말만 하고 종료버튼을 누르려는 데 남편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글이 찾았어. 어머니 집에 있었어.”

“뭐? 어머니 댁에?”

차로 10분 넘게 걸리는 거리를 아홉 살 아이가 이 밤에 어떻게 혼자 갔다는 걸까. 그 궁금증은 어머니 댁에 도착하고 나서야 풀렸다. 주말 저녁, 손자가 보고 싶던 시어머니가 아이에게 전화를 했고, 마침 친구 때문에 기분이 울적했던 아이는 할머니에게 데리러 오라고 했다. 그리고 도착했다는 할머니의 연락을 받자 훌쩍 친구네 집을 나가버린 것이다.     


 온 몸의 진이 빠져버린 밤, 손 하나 까딱할 힘도 없는데 희한하게 잠이 오지 않았다. 대신 오늘 저녁의 일이 마치 끝나지 않은 영화처럼 계속 머릿속에서 재생되었다. 처음에는 나와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 주지 않은 엄마들에게 포커스가 갔다. 다음에는 얄미운 아이 친구에게, 그 다음엔 연락 한 통 주지 않은 시어머니와 모두 내 탓이라는 남편에게. 그리고 마침내 남들 눈치를 보며 아이를 지키지 못한 내 차례가 돌아왔다. 


스스로를 향해 날 선 비난과 자괴감을 느끼려는 찰나, 지금 내 모습이야 말로 달무리를 쫓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희뿌연 구름에 갇혀 제대로 보지 못한 탓에 여기저기 부딪히며 상처를 내고 있었다. 내 삶에 있어 중요한 건 동네 엄마들도, 아이의 친구도 아니었다. 그들은 일부러 나를 상처내거나 내 삶을 힘들게 하기 위한 존재가 아닌, 그냥 그 자리, 그 시간에 있었을 뿐이었다. 중요한 건 아이와 나, 둘 사이의 믿음과 애정이었다. 아이가 속상해 하는 건 속이 좁은 게 아니라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 힘든 순간 엄마에게 받을 것이라 기대되는 애정을 쫓아야 했다.        


한 장씩 뜯어내는 달력처럼 그동안 내 앞을 막았던 구름 하나를 걷어낸다. 매일 흘러가는 일상이 또 다시 중요한 것을 가리지 않도록,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 습관이 나를 또 흐리게 만들지 않도록 오늘 내가 본 달을 떠올리며 계속해서 걷어낼 것이다. 

어쩌면 조금 어두워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럴수록 달이 더 환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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