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을 읽으며 나를 잊은 순간, 나는 나를 찾았다.
‘그는 수도와 멀리 떨어진 북부에 살았다. 그 곳은 일 년 중 겨울이 길었으며 척박하고 외로운 땅이었다. 추운 날씨와 넉넉하지 않은 물자 탓에 주민도 많지 않았다. 그는 그 곳에 얼마 있지 않은 영주민들을 보살피며 마치 수행을 하듯 살아가고 있던 중이었다. 다른 이들에게 쉽게 마음을 주지 않던 그에게 우연찮게 한 여자가 나타났다. 햇살처럼 따뜻한 마음과 밝은 미소를 갖고 있는 그 여자가 나타나서는...’
더 이상 읽지 않아도 뒷 내용은 이미 알고 있다. 그동안 수없이 읽은 웹소설 경력으로 인해 이젠 제목만으로도 주요 등장인물과 줄거리를 추측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결재까지 하면서 웹 소설을 읽고 있는 것일까. 그 남자-‘북부대공’과 여주인공이 아이를 몇 명 낳는지, 아들인지 딸인지, 혹시 쌍둥이인지까지 확인해야 마음이 놓여서 그런걸까? 아니, 내가 스스로에게 진짜 묻고 싶은 건 그게 아니다. 할 일이 산더민데, 왜 한가로이 웹 소설을 읽으며 밤을 지새우냐는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십여년 전에도 그랬다. 웹 소설의 원조격인 ‘엽기적인 그녀’가 인터넷 게시판에 연재되던 시절, 초등학생이던 나는 1화부터 마지막화까지 몽땅 읽었고 ‘귀여니’가 포문을 연 인소(인터넷 소설) 시대를 지나 다양한 아이돌들의 ‘팬픽’마저 놓치지 않았다. 그 모든 작품들을 보느라 수시로 밤을 지새울 때마다 엄마는 혀를 찼다. 그리고 지금, 내가 나를 보며 혀를 찬다. 지금 나이가 몇인데 밤을 새며 웹 소설을 읽냐, 출근은 누가 하냐 욕하면서.
그래도 계속 보게 되는 것은 8할이 극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 북부대공 때문이었다. 한없이 냉정하고 차갑지만 자신의 여자에게는 활화산 같은 그 남자는 현대물에선 거칠 것 없는 대표님이자 이사님이었고, 때로는 왕의 숨겨진 아들이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한 번 여자주인공에게 마음을 열고 나면 무너진 댐처럼 손 댈 수 없이 쏟아져 나오는 그 애정공세에 있었다. 그가 어울리지 않게 선물과 꽃, 직설적인 애정표현들을 그녀에게 쏟아내고 클리셰 범벅인 상황덕에 로맨틱한 분위기가 형성될 때면 괜히 몸도, 마음도 간질간질했다. 그의 구애가 직접적이고 구질구질 해질수록 좋았다. ‘네가 어떤 모습이든지 너를 사랑한다’는 걸 그가 온 몸과 마음으로 말할 때마다 다른 이들에게 애정과 사랑을 받기 위해, 그럴 듯한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애쓰는 현실속의 내게 누군가 보내는 위로 같았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는 나를 잊었다. 내일 아침 6시에 일어나 출근해야 하는 나, 업무와 사람들에게 치이는 나, 집안 살림을 해야 하는 나, 아이들을 보살펴야 하는 나. 이 모든 ‘나’들을 잊은 대신 누군가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바라보았다. 가끔은 마치 내가 그 여주인공이 된 것처럼 행복해 하기도 하고, 원치 않는 이별을 하게 될 땐 같이 울기도 했다. 결국 해피엔딩을 맞이하며 끝을 보고 나면 여전히 몇 분간 나 자신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멍해졌다. 그리고 그런 순간들이 나를 계속해서 웹 소설을 읽게 만들었다.
독일의 심리학자가 쓴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이 왜 중요한가>에서는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기에 우리는 온갖 것과 자신을 동일시한다’는 구절이 나온다. 여지껏 살아왔던 삼십여년 동안 나는 딸이었으며, 아내였고, 엄마였으며 직장인이었다. 내가 맡은 역할로 나를 정의하며 나의 정체성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건 내가 ‘하는 일’이지 ‘나’는 아니다. 진짜 나는 ‘순간’에 있었고, 의식을 의식할 때 있다.
그런 의미에서 웹 소설을 읽으며 나를 잊어버린 순간은 잠시 나라고 착각했던 것들을 모두 놓아버릴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 안에서 나는 자유였고 가벼웠으며 몰입했다. 그 순간의 기분은 문신처럼 무의식에 새겨져 마음이 힘들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땐 반사적으로 웹소설을 읽어 왔던 것이다.
이러한 나의 취미를 단순히 현실도피라고 말하고 싶진 않다. ‘북부대공’을 만나고 다시 현실로 돌아왔을 때 내게 남아있는 건 현생과의 괴리감이나 좌절감이 아닌, 몽글몽글하고 따뜻해진 마음이었으므로. 이 세계 어딘가에서 나의 행복을 빌어주고 무조건적으로 나를 사랑해 주는 이가 있다고 생각하면 현실 속의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 오늘도 살아간다. 온 우주가 나에게 향한 무한한 사랑과 애정을 보내고 있다 믿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