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dondo Library& Redondo Beach
미국은 언제나 내게 고단함의 상징이었다. 유학 시절, 모든 게 낯설고 버겁던 그때를 생각하면 마음이 여전히 무거워진다. 그래서였을까. 이민을 결심하고도 내내 망설였다. “이게 맞는 선택일까? 가족에게 좋은 미래를 줄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다. 캘리포니아의 레돈도 비치. 10년 전, 나는 이곳에서 홀로 서 있었다. 학업의 고단함과 외로움에 지칠 때면 태평양 앞에 나가 파도를 바라보았다. 물결에 내 그리움과 눈물을 흘려보내며 겨우 마음의 짐을 덜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내 옆에는 아이가 있었다. 다시 찾은 레돈도 비치의 첫 발걸음은 도서관이었다. 1895년에 작은 모임으로 시작된 이 도서관은 이제 커다란 문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앤드류 카네기의 후원으로 세워진 신고전주의 건물은 여전히 고풍스러웠고, 도서관 내부의 높은 천장과 조용한 분위기는 마치 시간을 초월한 듯했다. 아이와 함께 책을 읽으며 도서관 한 켠에 잠시 머물렀다.
그리곤 우리는 바다로 향했다. 태평양은 10년 전 그 모습 그대로였다. 잔잔히 밀려오는 파도, 햇살에 반짝이는 물결. 하지만 달라진 점도 있었다. 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신발을 벗어던지고 모래사장을 달렸다. 갈매기를 쫓으며 까르르 웃는 그 모습은 바다를 처음 본 아이의 설렘으로 가득했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내가 눈물과 고독을 흘려보내던 이 바다는 아이에게는 웃음과 행복을 담아가는 곳이 되었음을. 나의 과거와 아이의 현재가 교차하는 이 풍경 속에서, 그동안 나를 괴롭히던 불안과 걱정은 모두 사라졌다. 과거의 무게를 내려놓으니, 이민이라는 선택이 두려움이 아닌 새로운 기회로 다가왔다.
레돈도 비치에서 아이와 함께하는 지금,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미국으로 오길 잘했다고. 이곳은 나와 가족에게 더 좋은 미래를 보여줄 수 있는 곳이라는 걸. 10년 전의 나는 이곳에서 외로움 속에 서 있었지만, 이제는 아이와 함께 새로운 희망을 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