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 to the Dog’
“엄마, 잠깐만 나 편지 써야 해 “
“응? 무슨 소리야? 지금 도서관에 가야 하는데 “
“알아, 그레이시한테 편지 쓰려고”
“그레이시?”
“응”
“어.. 그럼 지금은 시간이 없으니깐 편지랑 연필 챙겨서 자동차에서 쓸까?
“응 알았어”
그렇게 엘리는 자동차에 올라타자마자 창문에 분홍색 편지지를 대고는 삐뚤 비뚤 글씨를 적기 시작한다.
from Eliie to Gracie
Gracie, you are so cute
그레이시는 엘리가 매월 화요일 저녁마다 도서관에서 만나는 특별한 친구이다. 사실 ’ 그레이시‘는 사람이 아니다. 브라운 색의 보글거리는 털이 매력적인 ‘푸들 강아지이다.
몇 해 전 EBS 다큐멘터리에서 방연 된 ’ 강아지에게 책 읽어주는 아이들‘이라는 프로그램을 보았다. 평소 책을 읽지 않는 초등학생들 대상으로 3개월 간 강아지와 교류하면서 책을 읽어주는 프로젝트으로 한국에서는 생소하지만 해외에서는 보편화된 아이들이 강아지에게 책을 읽어주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도준‘이라는 한 아이는 책과는 완전히 담을 쌓고 사는 아이였다. 매주 강아지에게 15분 동안 책을 읽어줘야 했는데 처음 도준이가 고른 책들은 글밥이 적은 그림책이었다. 그러다 보니 여러 권의 책을 읽고 또 읽어야 했다. 도준이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앉아있기 힘들어하는 모습이 여력 했다. 그러나 도준이는 자신의 허벅지에 말랑한 발을 올리는 사랑스러운 강아지의 등을 쓰다듬으며 기나긴 15분의 시간을 버텨나간다. 그렇게 3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러 도준이는 어느새 스스로 책을 골라 읽고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변화된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프로젝트가 마무리되면서 아이들과 도준이는 강아지와 마지막 작별 인사하며 어찌나 서럽게 우는지 나도 눈물이 날 정도였다.
지난해 11월, 나는 부에나팍 도서관의 프로그램 켈린터를 유심히 보다가 한 프로그램 이름에 어리둥절했다.
‘Read to the Dog’
강아지에게 책을 읽는다니.. 이게 무슨 소리지? 생소한 프로그램 이름에 호기심이 생겨 캘린더에 빨간 동그라미를 쳤다. 그리고 빨간 동그라미가 그려진 화요일 저녁, 저녁이라 이미 밖은 컴컴했지만 엘리와 저녁을 부지런히 먹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어린이 룸 뒤편 방 양쪽 끝에 푸들 강아지 ‘그레이시’와 골든레크리버 ‘롸켓’이 카펫 위에 깔린 작은 블렝킷 위에 앉아 자신을 보고 뛰어들어오는 아이들을 향해 꼬리를 흔들며 반갑게 맞이한다.
엘리는 종이에 자신의 이름과 자신이 책을 읽어줄 강아지의 이름을 적는다. 테이블 위에는 사서가 고른 강아지 책들이 바스켓이 담겨 있다. 그 당시 엘리는 kinder에 입학해 이제 막 영어를 읽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강아지 옆에 앉아 더듬더듬 책을 읽다가 모르는 단어가 있으면 아주머니가 슬쩍 알려주면서 엘리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나는 그날 겁 많은 엘리가 자신보다 덩치가 두 배인 그레이시와 롸켓 옆에 앉아 책을 읽으며 강아지를 쓰다듬는 그 오묘한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그 이후로도 우리는 ‘Read to the Dog’ 프로그램에 일 년간 매달 빠짐없이 참석하였다. 일 년간 쑥쑥 자란 엘리의 키만큼 그녀의 영어 실력도 놀랍도록 성장했다.
강아지에게 책을 읽는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들이 얻는 긍정적인 영향은 다양하다. 책을 읽는 것에 대한 동기여부를 받고, 자신감이 향상된다. 강아지는 아이들이 더듬거려도 엉망징창 책을 읽어도 아이에게 질책하지 않고 묵묵히 귀 기울여준다. 매번 책 읽을 때마다 잔소리하는 나는 절대로 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강아지를 만지고 교감하면서 아이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게 되고 긍정적인 감정을 느낀다. 이러한 교감을 통해 강아지와 특별한 우정을 만들어가는 상상력을 마음껏 펼치기도 한다. 그중 가장 큰 장점은 아이에게 ’ 책 읽기 즐거움‘을 증대시켜 준다는 것이다.
책 읽기는 엘리에게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강아지 친구와 소통하고 교감하는 강렬한 놀이가 되었다. 일 년 간 강아지에게 책을 읽는 프로그램을 참석하면서 변화된 엘리의 모습은 실로 놀랍고 신기하다. 아이들은 이토록 순수하고 진실되며 작은 움직임에도 엄청난 변화를 보인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배운다.
말은 통하지 않아도 눈빛만으로도 통하는 아이와 강아지의 우정..
앞으로도 너와 그레이시의
특별한 우정을 응원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