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lle Jean KIng Main Library
새로운 도서관, 낯선 경험
올해 초, 새해를 맞아 아이와 함께 동네 도서관이 아닌 조금 특별한 도서관을 방문하고 싶었다. 미국에서 새로운 도서관을 찾아가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구글에 ‘도서관’을 검색하면 가까운 동네부터 다른 지역까지 다양한 도서관 리스트가 쭉 나온다. 나는 지도와 이미지를 참고해 마음에 드는 도서관을 골라 종이에 적고, 그곳을 직접 찾아가며 아이와 소소한 여행을 즐기면 됐다.
이번에도 역시 구글에서 검색을 시작했다. 그렇게 발견한 곳은 캘리포니아 롱비치에 위치한 현대적인 공공 도서관, **빌리 진 킹 메인 도서관(Billie Jean King Main Library)**이었다. 구글에서 본 이미지는 크고 모던한 건물로, 한눈에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 도서관은 전설적인 테니스 선수 빌리 진 킹의 이름을 따서 2019년 9월에 문을 열었다고 한다. 약 93,500평방피트의 면적을 자랑하며, 1,000명 이상의 방문객을 수용할 수 있는 다양한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는 설명도 있었다. 도서관 바로 뒤에는 아이와 잠시 놀다 갈 수 있는 작은 공원도 보였다.
도서관 홈페이지를 확인하니 어린이 프로그램도 잘 마련되어 있었고, 마침 우리가 가기로 한 날 오전에는 스토리타임이 진행된다고 했다. 모든 계획이 완벽했다. 도서관에서 책을 보고 스토리타임을 들은 뒤, 시내 구경과 점심을 즐기고, 공원에서 잠시 놀다가 바다를 구경하면 그야말로 완벽한 하루가 될 것 같았다.
롱비치로 떠난 여행
토요일 아침, 아이와 함께 차를 타고 길이 한적한 동네를 지나 항구도시 롱비치에 도착했다. 높은 오피스 건물들과 복잡한 도로는 낯설면서도 신선한 느낌을 주었다. 2시간 무료 주차가 가능한 공용 주차장에 차를 대고, 설렘 가득한 마음으로 도서관 정문을 향해 걸어갔다.
하지만 예상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도서관 주변과 공원에는 텐트들이 줄지어 있었고, 그곳에는 노숙자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 중 일부는 짐을 정리하며 도서관 정문 앞쪽으로 몰려들기 시작했고, 우리는 그들 사이에 서서 줄을 서야 했다.
‘이게 맞나?’
‘그냥 돌아가는 게 나을까?’
순간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 여기까지 온 만큼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10분 정도 줄을 서서 기다렸는데, 가장 힘들었던 것은 냄새였다. 아마도 도서관 주변에서 발생한 노숙자들의 배설물 때문인 듯했다. 자연스럽게 우리의 손은 코로 향했고, 도서관이 열리기만을 기다리며 불편함을 참아야 했다.
예상 밖의 공간
10시 정각, 드디어 도서관 문이 열렸다. 도서관 내부는 구글 이미지처럼 크고 화려했으며, 매우 깨끗했다. 문밖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서둘러 어린이 코너를 찾았고, 다행히 그곳은 정문 바로 옆 깊숙한 곳에 위치해 있었다. 일반 성인 이용자들이 2층에서 주로 책을 이용하는 구조라, 어린이 코너는 비교적 조용하고 안전한 공간이었다.
사실 방문 전날, 어떤 블로그에서 이 도서관의 방문 후기를 읽었다. 후기를 작성한 사람은 노숙자가 많아 불안한 마음에 도서관 사서에게 괜찮은지 물었고, 사서는 “도서관에는 경비원이 있으니 괜찮다”고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고 했다. 글을 읽으며 아이와 방문해도 괜찮겠지 싶었는데, 막상 현장에서의 경험은 예상보다 충격적이었다.
아무래도 항구도시인 롱비치는 교통이 편리해 여러 지역에서 노숙자들이 몰려오는 듯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도서관이 그들에게 닫힌 공간이 될 수는 없다. 도서관은 모두에게 열려 있어야 하며, 그들도 하나의 이용자로 존중받아야 한다. 도서관 측에서도 다른 이용자들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경비원을 배치하고 있는 듯했다.
어린이 코너에서의 발견
어린이 코너에서 책을 읽다가 디스플레이 책장에 놓인 책들이 눈에 들어왔다. 마침 1월 세 번째 월요일, 흑인 인권 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를 기리는 기념일이 가까워 그와 관련된 책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다양한 흑인 역사와 인물에 관한 책들을 접할 수 있어 흥미로웠다.
캘리포니아는 이민자가 많은 지역이라 여러 도서관에서 다양한 언어로 스토리타임을 진행하는데, 이곳은 스페인어와 영어로 동시에 진행되었다. 동양인은 우리 모녀뿐이었지만 기죽지 않고 즐기기로 했다. 다른 도서관의 스토리타임도 경험해봤지만, 남미 특유의 활기 때문인지 이곳은 사서와 참가자들 모두의 호흡이 특히 잘 맞았다. 우리도 함께 스페인어로 노래를 부르고, 박수를 치고, 춤을 추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아마 다른 참가자들도 “어떻게 동양인 모녀가 이렇게 신나게 놀고 있지?” 하고 신기하게 바라봤을 것이다.
돌아보며
빌리 진 킹 메인 도서관은 약자들에게 사랑받는 공간인 듯했다. 집 없는 사람들에게는 바람을 막아주는 천장이 되어주고, 이민자들에게는 자신의 언어와 문화를 지킬 수 있는 곳이 되어준다. 그리고 우리 같은 낯선 방문객에게도 특별한 추억을 만들어주는 공간이었다.
집에 돌아와 롱비치 관련 뉴스를 찾아보니, 최근 시내에서 총기사건과 범죄가 늘어나며 지역사회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런 뉴스를 미리 알았다면 다른 도서관으로 갔을지도 모르지만, 무지했기에 용감하게 방문했던 것 같다.
그로부터 거의 1년이 지났다. 가끔 아이와 농담 삼아 “다시 냄새나는 도서관에 가볼까?” 하고 웃어보지만, 사실 다시 갈 용기가 나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언젠가 다시 꼭 가보고 싶다. 그날의 경험이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