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바린다 도서관 Yorba Linda Library
미국의 도서관은 참 다채롭다. 시간 여행을 떠나는 듯 고풍스러운 도서관이 있는가 하면, 세련된 디자인과 첨단 시설로 사람을 압도하는 도서관도 있다. 하지만 도서관의 진짜 가치는 건물의 화려함에 있지 않다. 그 공간을 채우는 사람들과 그곳에서 만들어지는 특별한 에너지에 있다.
내가 부에나팍 도서관 다음으로 자주 찾는 곳은 캘리포니아 오렌지 카운티에 위치한 요바린다 공공 도서관이다. 이곳을 처음 알게 된 건 작년 이었다. 도서관을 좋아하는 나를 아는 지인이 “새로 리모델링된 요바린다 도서관에 꼭 가봐. 정말 멋지더라”라고 추천해 주었다. 그 말에 기대감이 잔뜩 생겼지만, 방문은 한동안 미뤄졌다. 하지만 그 기다림이 무색하게, 처음 이곳에 발을 들였을 때, 나는 속으로 이렇게 외쳤다.
여긴 분위기가 다르다!
2020년에 리모델링된 요바린다 도서관은 한마디로 21세기형 도서관의 표본이었다. 넓고 개방적인 구조에 쏟아지는 자연광, 친환경 설계와 최신 기술까지. 들어서는 순간부터 “이건 도서관이라기보단 힐링 센터 아니야?”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 정도면 책을 읽는 건 덤이고, 공간 자체가 경험이었다.
도서관 주차장에 차를 대자마자 풍경부터 심상치 않았다. 잔디밭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야외 테이블에서 담소를 나누는 부모들, 그리고 한쪽에 자리한 커뮤니티 센터까지. 이곳은 단순히 책을 빌리는 공간을 넘어 지역 주민들이 소통하고 문화를 나누며 함께 배우는 중심지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이 도서관의 진짜 매력은 건물도, 시설도 아니었다. 바로 그 안을 채운 사람들이었다. 각 공간마다 이용자들로 가득했고, 아이들부터 어르신까지 세대를 초월해 모두가 이 공간을 누리고 있었다. 독서에 몰두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아이들이 책을 들고 웃으며 뛰어다니는 공간도 있었다. 그 활기찬 에너지가 마치 공기처럼 도서관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특히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부모와 아이들이 나란히 앉아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었다. 인도와 아시아계 가족들이 많이 보였는데, 부모와 아이가 함께 책을 읽으며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정말 특별했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예전에 봤던 유대인의 하브루타 학습법 다큐멘터리가 떠올랐다. 도서관에서 어른과 아이들이 소리 내어 질문하고 답하며 논쟁하는 그 모습이 신선했었는데, 여기 요바린다 도서관에서도 그와 비슷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나와 아이도 요바린다 도서관에 올 때마다 책을 한아름 들고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책을 테이블에 쌓아 두고는 왠지 똑똑해진 기분으로 첫 장을 넘긴다. 자연스럽게 마음속에서 자신감이 샘솟는다. ‘이 정도면 한 달만 다녀도 하버드 가겠는데?’
적당히 밝은 조명과 따뜻한 자연광, 높은 천장이 주는 개방감, 그리고 아늑한 소파와 넉넉한 테이블까지. 모든 것이 완벽하게 준비된 이곳에 앉아 있으면, 그냥 천재가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요바린다 도서관은 단순히 현대적이고 멋진 공간이 아니다. 이곳의 진짜 매력은 책과 사람이 만들어 내는 에너지다. 도서관마다 매력이 다 다르지만, 학구열을 다시 불태우는 데 이곳만 한 곳은 없을 것이다.
이 도서관에서 아이와 책 한 권을 펼칠 때마다 내 안에 묻어뒀던 열정이 슬그머니 고개를 든다. 요바린다 도서관은 내가 잊고 있던 배움의 즐거움을 다시 깨닫게 해주는 곳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이곳에서 책과 사람의 기운에 푹 빠져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