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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럽맘 Nov 19. 2024

낯선 땅에서 찾은 고향의 따스함

부에나퐉 도서관 Buena Park Library

두 번째 미국 이민 생활은 생각보다 더 고단했다. 미국에 온 이후, 내 삶은 문제 해결의 연속이었다. 이사 갈 집을 찾고, 아이의 학교를 알아보고, 크고 작은 문제들을 매일같이 처리하다 보니 정신이 점점 지쳐갔다. 아내로서, 엄마로서 내 역할에만 충실하다 보니 어느 순간 나 자신을 돌보는 일은 뒷전이 되었다. 정체성을 잃어가는 듯한 불안감이 서서히 밀려왔다. ‘내가 지금 잘 살고 있는 걸까?’ 미국이라는 넓은 대륙이지만, 내겐 의지할 곳 하나 없는 외딴섬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캘리포니아에도 가을 추위가 찾아온 아침이었다. 아이와 함께 동네 도서관으로 발길을 옮겼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매일 무심코 지나치던 그곳이 문득 궁금해졌을 뿐이다. 도서관 문을 열고 들어서자 오래된 카펫과 책 냄새가 섞인 향이 코끝을 스쳤다. 묘하게 익숙하면서도 따뜻한 냄새였다. 마음속에 얽혀 있던 실타래가 조금씩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안내 데스크를 지나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Children’s Room”이라는 문구가 보였다. 커다란 창문 너머로 햇살이 쏟아져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아이들은 테이블에 앉아 책을 읽기도 하고, 카펫 위에 엎드려 블록 놀이를 하며 웃고 있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한국에서의 도서관이 떠올랐다. 그곳에서는 아이가 조금만 소란스러워도 엄마들이 눈치를 보며 조심해야 한데 여기서는 아이들이 서가 사이를 뛰어다니고, 책 제목을 소리 내어 읽어도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다. ‘미국 도서관은 책 보다 책을 읽는 아이들이 빛난다는 걸 아는구나.’ 그들의 여유로운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긴장이 풀렸다.


도서관 한쪽에는 한국어 책 코너가 있었다. 외국어 서가는 보통 구석에 숨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은 달랐다. 큰 창문 앞, 햇살이 가장 잘 드는 공간에 자리 잡고 있다. 창가 중앙에는 넉넉한 테이블과 의자 네 개가 놓여 있고 책장은 한글 책들로 가득했다. 마치 누군가가 *‘여기, 당신을 위한 자리입니다.’라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나는 천천히 한국어 책 등을 읽어보았다. 신작은 아니었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 출판된 책들도 보인다. 책을 한 권 꺼내어 읽기 시작하니 묘하게 마음이 따뜻해졌다. 낯선 땅에서 길을 잃고 헤매던 내가 이 도서관에서 따스함을 처음 발견한 순간이었다.


그렇게 한 권의 책과 품에 안고 도서관을 나섰다. ‘만약 부에나팍 도서관이 없었다면, 나는 어땠을까?’ 어쩌면 계속해서 우울함에 갇혀 어두운 길을 헤매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후로 부에나팍 도서관은 나와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자 따스함을 느끼게 해주는 친정 같은 곳이 되었다. 매번 문을 열고 들어설 때마다 반겨주는 사서들의 따뜻한 미소, 코끝을 스치는 특유의 도서관 냄새, 아늑한 분위기. 그 안에서 아이와 보내는 소소한 시간들은 내 삶에 작은 위로와 안정감을 더해 준다.


부에나퐉 도서관은 언제나 책이라는 따뜻한 밥상을 차려 놓고, 두 팔을 벌려 나를 맞아준다. 삶이 조금 고단할 때마다, 언제든 돌아가 안길 수 있는 나만의 친정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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