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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랫필로우 Oct 18. 2024

색종이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아이

여섯 살 아이의 장래희망

아이들이 커가면서 장래희망, 꿈이 뭔지 이야기를 나눠보면 참 즐겁다. 이 작은 아이가 커서 어떤 어른이 될까 하는 부모로서의 호기심을 아이의 꿈 이야기가 충족시켜주는 기분이랄까.


여섯 살 우리집 첫째 아이는 네 살 때 꿈을 물어봤을 때는 물고기 잡는 어부라고 답했다. 왜 어부가 되고 싶냐고 물어보면 바다와 물고기가 좋아서요 라는 귀여운 답을 들었다. 네살 일 때 특히 고래 물고기 해파리 오징어 문어 등등 바다생물과 바닷속 이야기가 담긴 동화책을 좋아해서 그랬던 것 같다. 


아이가 다섯살이 되었을 때 다시 꿈을 물어봤다. "체육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어린이집에서 매주 금요일마다 체육시간이 있었는데 아이들에게 동작도 가르쳐주고 여러가지 재미있는 운동 기구를 설명해주시는 모습이 꽤나 아이에게 멋지게 느껴진 것 같다. 하원하고 집에 와서 "여기 파랑색 동그라미에 서서 점프해보세요" 하고 체육 선생님 흉내를 내며 놀이를 할 정도로 좋아했다. 아이가 아직 어리다보니 다른 부분의 재능은 크게 발견하지 못했지만 운동신경은 정말 좋고 날쌘 다람쥐같아서 체육선생님도 참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며 흐뭇해했던 기억이 난다. 


올해 아이가 여섯 살이 되자 언어구사력이 생겨서인지 엄마가 묻지 않아도 꿈 이야기를 술술 풀어냈다. 
"엄마 저는 종이쌤이 될 거예요. 종이쌤이 되어서 색종이접기를 배우고 싶은 어린이들을 위해 가르쳐줄 거예요". 

"와 멋진 꿈인데? 종이쌤이 되어서 영상으로 만들어서 어린이들에게 알려주기도 하고 종이접기 책을 만들어도 되겠는걸? 하고 얘기하니 아이는 곧바로 대답했다. 

"아니요. 저는 지금 종이쌤들보다 더 멋진 종이쌤이 될거라구요. 색종이 접기를 배우고 싶다고 하면 제가 자전거를 타고 그 어린이가 사는 집에 가서 직접 접는 걸 알려줄래요". 


웃음이 났다. 꽤나 멋진 생각이기도 하고. 이 이야기를 친정엄마께 들려드리니 

"유치원에서나 집에서 어른들이 하나하나 일일이 종이접기를 옆에 앉아서 상세히 알려주지 않아서 아이가 많이 답답했나보다".


아차 싶었다. 독립적인 아이, 스스로 뭐든 하는 아이, 주도적이고 주체적인 아이로 키운답시고 나는 늘 아이에게 친절한 설명을 해준 순간이 많지는 않았기에.  


이 말을 들은 이후로는 아이가 접고 싶다는 종이접기가 있으면 먼저 해보라고 하고 잘 되지 않으면 설명도 상세히 옆에 앉혀놓고 해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종이쌤이 꿈인 아들래미한테 이 정도 노력은 엄마로서 해줘야겠지? 하는 마음에. 


나는 평소에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왠만해선 아무 이유없이 또는 아이의 기분에 맞춰 사주거나 하지 않는다. 우리집 아이들은 장난감을 가질 수 있는 날은 오직 어린이날, 크리스마스, 생일 이렇게 세 번이다. 이 때도 엄마 아빠인 우리가 사주진 않고 양가 할머니들이나 고모 삼촌이 사준다. 너무 헤프게 장난감을 쉽게 얻으면 물건이나 선물의 가치를 느끼지 못할 것 같기도 하고 몸으로 뛰며 놀이하거나 집에 있는 재료로 직접 만들어서 놀이하는 걸 선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갖고 싶은 게 생기면 이렇게 말한다. "엄마 크리스마스 되려면 아직 멀었나요? 크리스마스 되면 인형 갖고 싶어요 꼭 사주세요"라며 선물 예약을 한다. 다른 친구들은 갖고 싶은 게 생기면 그때 그때 재미난 장난감을 선물받을텐데 우리 아이들은 그렇지 않으니 때로는 이런 상황이 미안하기도 하고 민망할 때도 있지만 이렇게 키우는 걸 후회하진 않는다. 


그래도 내가 유일하게 돈을 팍팍 쓰며 원할 때마다 사주는 게 하나 있다. 그게 바로 '색종이'. 

예쁘고 반짝반짝하는 색상과 모양이 그려진 색종이, 양면 색종이, 단면 색종이, 색종이 정리함 등 색종이에 대한 건 아끼지 않고 아이가 언제든 만들 수 있도록 환경을 제공했다. 그래서 아이가 색종이쌤이 꿈이 된 건지도. 


환경 조성이 아이의 가치관, 꿈, 생각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구나 하는 걸 새삼 느낀다. 


내년에 일곱살 형아가 되면 아이는 어떤 꿈을 꿀까? 

아이가 꿈꾸는 직업을 들으면 아이의 머릿 속을 들여다보는 기분이 들어 늘 기대가 된다. 


네 살때 꿈은 어부

다섯 살때 꿈은 체육선생님

여섯 살때 꿈은 종이쌤


매년 아이의 꿈을 물어보고 기록해놓고 아이가 진로를 고민하는 순간이 오면 짠 하고 보물봇따리처럼 풀어서 보여줘야겠다. 


네 살 둘째에게도 물어봤다. 꿈이 뭐야? 하고. 

"공주님이 되고 싶어요". 

귀염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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