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생이 공부 안하면 이상한 나라

by 플랫필로우

우리집 아이 둘은 올해 5세 7세의 미취학 아이들이다.


내가 보기엔 우리집 아이들 생활이 평범한 것 같은데 주변 엄마들이 보기엔 우리 아이들과 내가 꽤나 특이하게 비춰진다. 그 이유는 바로 한글때문이다.


나는 한글을 아직 안가르치고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한글을 아직 가르쳐주고 싶지 않다.


내가 아동전문가도 아니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학교 선생님도 아니지만, 내가 낳아서 키우고 있는 우리집 아이들에 대해서만큼은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전문가가 아닐까?


우리집 아이들을 관찰해보니, 한글 공부를 포함해서 학습 자체를 일찍 시작하면 안될 것 같은 성향을 많이 가지고 있는 아이들인거다.


산만하고, 엄마가 하라고 하는 것은 오히려 반대로 하는 등 순종적이지 않고 등등.


이 아이들과의 소통도 아직 원활하지 않은데 나에게 한글이나 학습을 이 아이들에게 시키라고 누군가가 말한다면 나는 숨이 너무 막힐 것 같다.


7살 된 우리 첫째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에서 같은 반 아이 엄마가 나에게 고충을 털어놓았다.


내년에 이제 초등학교에 입학을 할텐데 아이를 앉혀놓고 한글을 가르치고 싶은데 도통 하려고 하지 않는다는거다.


아이에게 한글 도대체 언제 공부할거냐며 같은 반 친구들 중에 한글 모르는 친구 없지 않냐고 물으니 아이 입에서 우리집 첫째 아이 이름이 나왔다고 한다.


"저 말고도 한글 공부 안하고 한글 모르는 친구 한 명 더 있다구요 엄마!!".


그게 바로 우리집 아이란다.


하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예상했던 일이고, 오히려 우리집 아이 말고도 한글을 안가르치는 엄마가 한 명이라도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나도 이렇게 태연한 내가 신기하기도 하지만 우리집 아이들을 한글 공부나 학습을 늦게 시켜야겠다고 다짐한 건 꽤나 오래 전이다.


때는 바야흐로 마흔이 넘은 내가 초등학생일 때였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에는 유난히 외국에 이민가서 살다가 이민에 실패하거나 어떤 이유로든 한국에 다시 돌아와서 정착해 살고 있는 집 아이들이 많이 다녔다.


국가, 도시도 참 다양했다.


미국 뉴욕, 영국 런던, 일본 오사카, 수리남 등등.


이렇게 외국에서 살다가 온 친구들의 공통점이 있었다. 처음 전학을 왔을 때는 한글도 거의 익히지 못했기 때문에 학업 성적이 부진하다가 몇 개월이 지나고 나면 최상위권으로 올라간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 나라에 살 때 어땠고 무슨 공부를 했고 뭘 하고 놀았냐고 물어보면 공부는 거의 하지 않았고 뛰어놀고 운동을 많이 했고 생활 습관 잡는 것에 몰두했다는 점이었다.


그 아이들과 내가 스무살이 되었을 때쯤 아이러브스쿨, 싸이월드 등을 통해 동창회가 유행이어서 그 아이들을 동창회에서 만날 기회가 있었다.


모두가 신기하게도 우리나라 최고 명문 대학에 입학을 했다.


내가 아이를 키우는 순간이 오자 이상하게도 그 때 그 시절이 생각이 난거다. 아, 한글도 모르는 친구들이었는데도 학업을 이어가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심지어 좋은 학교에도 진학하는 거 보면 어린 아이들에게 유난스럽게 학습을 일찍부터 시킬 필요는 없겠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이들에게 공부 시키는 시기를 늦추려는 이유는 저 이유 말고도 좋은 습관을 물려주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서이기도 하다.


나는 맞벌이 가정에서 자라서 오빠와 단 둘이 항상 집에서 티비만 보며 성장해왔다.


식사를 하고 나면 바로 양치질을 해야 하고 대충 해서도 안되고 아주 꼼꼼히 오랫동안 해야 한다는 것,


학교에 다녀오면 바로 숙제를 해야 하는 것,


자고 일어나면 이불 정리를 해야 하는 것


등등 이런 것이 어린이가 배워야 할 습관이라는 것을 성인이 되고 나서 알게 되었다.


우리 엄마는 시골에서 나고 자라셔서 딸래미와 아들래미에게는 꼭 공부도 많이 시키고 좋은 학교에도 보내고 싶은 마음이 크셔서 학원, 과외 등등 공부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으셨다.


그 덕에 나는 좋은 학교에도 진학했고 좋은 직장에도 다녔다. 하지만 생활습관이 정말 나쁜 성인으로 성장했다.


교육의 기회는 마음껏 제공해주셨지만 좋은 습관은 물려주지 못하신거다.


어떤 부모가 가장 이상적인 부모일까 라는 질문에 정답은 없겠지만 모든 인간은 자신의 결핍을 채우며 살아가기에, 나에게는 아무래도 좋은 습관을 가지지 못한 것이 내 인생의 결핍 요소인 것 같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에게는 좋은 학교에 입학하는 것에 방점을 두고 공부를 많이 시키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어릴 때부터 좋은 습관을 길러줄 수 있을까 하는 것에 욕심을 부리는 내 모습을 매일 발견하는 중이다.


그리고, 솔직한 마음을 말해보면,

자기 새끼가 공부 못했으면 좋겠다는 부모가 이 세상에는 없겠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내 새끼가 전교 1등쯤 하면 공부 쪽으로 밀어주고 싶겠지만 그 정도가 아니라면 꼭 공부 분야로 안 가고 자기가 좋아하는 방향이 어느 쪽이던 스스로 정해서 쭉 그 길을 걸어가면 좋겠기에.


엄마의 목소리를 통해 듣지 않으면 동화책을 절대 읽을 수 없으니 책읽기에 목숨을 거는 첫째 아이의 모습을 보고 나는 더더욱 한글학습에 굳이 미리 공들이지 않기로 마음먹게 된 가장 큰 계기이다.


그림을 구석구석 살펴가며 엄마가 어떤 내용을 입으로 읽어주는지 듣고 그림과 내용을 매치해가며 하는 독서 방식이 나는 너무도 신비롭고 만족스러운거다.


그리고 아이가 유치원 생활 이야기를 집에 오면 들려주곤 하는데 요즘 친구들이 주말마다 뛰어놀지 못하고 엄마 아빠한테 붙잡혀서 하루종일 앉아서 공부만 해서 주말이 싫다고 했다는거다.


우리집 아이들은 주말마다 놀이터, 공원에 가서 마음껏 뛰어 논다.


하루는 첫째가 나에게 물었다. "엄마 나는 왜 공부 안해요? 친구들은 다 하는데 저도 할래요".

"지금은 학생 아니고 원생이지? 마음껏 친구들하고 놀이하고 뛰어놀고 밥 잘 먹고 하는 게 공부인거야" 하고 대답해주었다.


한글 아직 공부 안시키세요? 라는 수많은 주변 엄마들의 질문에 나는 오늘도 꿋꿋하게

"다 크면 글자를 못 쓰고 못 읽지는 않겠죠. 언젠가는 할 수 있겠죠?" 하고 돌아선다.


화면 캡처 2025-01-20 171747.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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