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은 비켜가지 않는다 - 줄리언 반스
요즘 문학을 조금 멀리 했어요. 정말 오랜만에 돌아왔습니다.
문학이 호흡이 길다보니까, 바쁘면 손에 잘 잡히지 않더라구요 ㅠ
하지만! 오랜만에 정말 설레는 마음으로 문학의 세계에 발을 다시 들여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첫걸음을 함께한 책은 바로, 줄리언 반스 작가님의 『우연은 비켜 가지 않는다』입니다.
이번 작품은 '닐'이라는 인물의 삶을 중심으로 흘러가요. 닐은 결혼 생활에서도,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그리고 커리어에서도 실패를 겪으며 인생의 중요한 고비를 맞이하게 됩니다. 마음 한구석에 채워지지 않는 결핍감을 느끼던 그는 성인 대상 강좌에서 '엘리자베스 핀치' 교수님을 만나게 되는데요. 이 교수님이 닐의 삶에 정말 중요한 존재로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과연 닐에게는 어떤 변화가 찾아올까요?
나는 점심을 먹다가 한번 왜 성인을 가르치는 일을 더 좋아하게 되었는지 물은 적이 있다. "나는 호기심 없는 사람에게는 흥미가 없어요," 그녀가 대답했다. "역설적으로 젊은 사람일수록 자기 확신이 더 강해요. 그들의 야망은 외부인의 객관적인 눈에는 모호해 보이지만 자신들에게는 선명하고 성취 가능해 보이죠. 반면 성인의 경우, 일부는 그저 즉흥적으로 등록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삶에서 결핍을 느끼기 때문에 와요. 자기가 뭔가 놓쳤을지도 모른다는 느낌, 그런데 이제 상황을 바로잡을 기회 - 어떠면 아마도 마지막 기회 - 가 왔다는 느낌. 나는 그게 대단히 감동적이라고 생각해요." -P72
엘리자베스, 그녀의 강의는 기존의 생각을 확 바꿔주는 '사고의 전환점'으로 작용하는데요.
예를들어 배교자 율리아누스, 모든 사람이 배교자라고 말하는 율리아누스의 이면을 설명하며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뒤집는 시선을 키워줍니다.
그렇게 강의를 통해 사고의 확장을 경험한 닐은 자신의 머릿속에서 별을 팡팡 터지게 만들어주는
엘리자베스의 강의와 함께 그녀에 대한 존경과 사랑 또한 키워나가죠.
"기독교라는 종교의 성공 비결 한 가지는 늘 최고의 영화제작자를 고용한 것이죠." -P245
" 첫 수업 때 EF가 한 말 기억나?' 나는 여러분 모두에게 최고의 선생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런 거였어. EF는 너하고 나한테는 최고의 선생이었지. 하지만 어떤 애들한테는 그렇지 않았어. 그 애들은 더 전통적인 걸 바랐어. 날짜, 이름, 사실 더 폭넓은 생각이 아니라. 물론 그 애들도 처음에는 흥미를 느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EF는 그 애들에게...동요를 일으켰어."
"맞아. EF는 나한테도 동요를 일으켰어 - 그리고 너한테도. 그러니까 내 정신을 흔들어놓고, 늘 다시 생각하게 하고, 내 머릿속에서 별들이 터지게 했어."-P280
타인의 생각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작은 생각들을 흥미롭게 바꿔주는 그녀.
그렇게 강의가 끝나고도, 스마트하면서 사랑스러운 그녀와
꽤 오랫동안 엘리자베스 와의 만남을 이어갑니다.
둘은 75분이라는 정해진 시간동안 함께 점심을 먹으며 철학과 역사에 대해 토론을 이어가요.
그러던 어느 날, 엘리자베스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고
닐은 그녀의 동생으로부터 평생 써온 서류와 노트 들을 유품으로 전해 받게되요.
그는 이 유품 전달의 의미를 진지하게 탐구해 나갑니다.
그것은 바로 배교자 율리아누수 에세이를 완성하고 엘리자베스를 회고하는 것.
그렇게 그는 점점 예상하지 못한 사실들을 마주하는데요.
소설 속 화자는 율리아누스와 엘리자베스를 탐구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 그레서 나는 엘리자베스 핀치를 얼마나 알게 됐는가라고 자문합니다.
내가 알던 그녀와, 다른 사람들이 기억하는 그녀가
너무나 다를 수 있다는 생각에, 닐은 혼란스러움을 느끼죠.
엘리자베스 핀치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학생들을 단숨에 사로잡은 뛰어나고 사랑스러운 선생?
아니면 세상의 편견을 뒤집어보는 깨어있는 지식인?
하지만 그녀의 가장 사적인 부분들까지 모두 아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만약 그녀를 다른 시선에서 본다면,
가령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또 다른 모습으로 해석될지도 모르는 일.
닐은 결국 깨닫게 됩니다.
그 어떤 것도 '완벽한 진실'일 수는 없다는 것을요.
모든 것에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 이면이 존재하고,
우리는 보고 싶은 대로만 해석하게 된다는 사실을요.
우리는 결코 한 사람을 단 하나의 이야기로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으며,
그렇게 하려 들면 분명히 잘못 알게 될 것이라는 진실 말이죠.
세상과 사람들의 이면, 아이러니, 그리고 모순을 인정 합니다.
어떤 상대방에 대한 '앎'이란,
결국 대화 등을 통해 얻은 나의 생각과 기억을 통한 간접적인 비유와 같은 모습일 뿐,
그 사람의 실체를 전부 알았다고 보장할 수는 없으니까요.
어쩌면 나의 관점, 나의 생각, 나의 편견이
상대방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질문에 봉착하게 되는 거죠.
그리고 타인을 결코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거대한 벽 앞에서,
닐은 자신이 만들던 회고록을 그냥 덮기로 결정해요.
다각도에서의 해석을 통해 전부를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닐 자신이 생각하고 기억하는 존경하고 사랑스러운 그녀를 영원히 간직하고 받아들이기 위해서.
가끔 전기 작가들이 어떻게 그 일을 하는지 궁금하다. 정황적이고 모순되고 이가 빼진 그 모든 증거에서 하나의 삶, 살아 있는 삶, 빛나는 삶, 일관된 삶을 만드는 것. 그들은 점쟁이들을 끌고 원정에 나선 율리아누스와 같은 기분일 것이 틀림없다.~
아니면 일관된 서사란 것은 대립하는 판단들을 화해시키려 하는 것이기에 망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냥 검토해 볼 만한 암시적 사실들을 그냥 나열하여 어떤 사람을 설명해 보는 것도 똑같이 가능할지 모른다.-P217
그녀는 나의 친구였고, 나는 그녀를 사랑했다. 그녀의 존재와 모범 때문에 나의 뇌는 기어를 바꾸었고, 나는 자극을 받아 세계 이해에서 비약적 발전을 이루었다. 나는 그녀가 다른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을 공책들을 읽었고, 그녀가 나에게 남긴 책의 모든 연필 자국을 살폈다. 하지만 아마 이 모든 만남과 대화, 그리고 그것에 대한 나의 기억 - 기억도 결국은 상상력의 기능 가운데 하나다 - 은 수사학의 비유와 같고 과거에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문학적 비유가 아니라 살아 있는 비유지만, 어쨌든 비유, 아마도 내가 엘리자베스 핀치를 '알고' 또 '이해하는' 것은 율리아누스 황제를 '알고' 또 '이해하는'것보다 나을 것이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것을 깨달았으니, 멈출 때가 되었다.-P2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