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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꼰떼 May 31. 2023

나의 치앙마이 이야기 Day-1

 (2023.4.28. 금요일)

떠난다.

오랜만의 혼자 비행이다.

이직준비로 지난주 내내 마음고생을 했다.

그러다 세 군데 면접을 보았고 다행히 두 군데서 함께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제안을 받으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스페인 순례길을 괜히 취소했나 생각도 들지만 현재의 상황과 엄마를 생각하면 잘한 결정 같다.

자발적 백수생활 1년, 밤낮이 바뀌지 않은 것만 해도 나름 다행이라 생각하는데 요즘은 재취업 때문에 불면증으로 하루 걸러 하루 잠을 이루지 못했다.


눈을 뜨니 오전 7시 반이다.

캐리어에 짐을 싸야 한다.

귀찮다. 나는 이 귀찮은 짓을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왜 하는 걸까?

우선 네이버로 치앙마이 날씨를 검색한다. 폭염이다.

옷은 최대한 얇은 것으로 챙긴다.

평소 한국에서는 타인의 시선 때문에 입기 꺼려지는 어깨가 드러나는 나름 과감한 옷을 선택한다.

옷은 상의 3벌, 하의 2벌, 슬리퍼, 화장품 등 챙긴다.

제주항공에서 가장 저렴한 항공권으로 결제했기 때문에 수화물은 붙일 수 없다.

어차피 4박 5일 매우 짧은 일정이기에 짐이 단출하다. 한 편으로는 여행기간에 비해 옷이 많다는 생각도 든다.

요즘은 하루하루가 소중하다.

오늘이 내 인생에서 가장 젊고 그래서 예쁜 날이라는 생각이 든다.

예쁘게 다녀보고 싶다는 생각에 평소 여행보다는 옷을 많이 넣었다.

그렇게 짐을 싼 후 방청소와 설거지를 하고 냉장고를 비우고 오후 1시쯤 집을 나선다.


비행기는 오후 6시다.

근데 하남에서 공항까지 가는 길이 2시간 30분에서 3시간은 잡아야 한다.

집에서 15분 정도 일반버스를 타고 올림픽공원역 공항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한동안 코로나 때문에 운행하지 않았는데 드디어 이곳 버스정류장에 공항버스가 정차하다니 감회가 새롭다.

공항버스는 생각보다 많은 승객을 태웠고, 서울의 지긋지긋 한 교통 체증 때문에 평일인데도 대략 2시간 30분이 지나서야 공항에 도착했다.


우선 밤비행기기라 치앙마이 공항에 늦게 도착하기 때문에 혹시 몰라 인천공항 내 우리은행에서 환전 신청을 미리 해놓았다. 그렇게 신청한 1,000바트를 찾았다.

이어 이직을 위해 제출한 이력서들 때문에 회사에서 전화가 올지 몰라 로밍도 신청한다.


꼭 해야 할 두 가지 일을 마무리하니 배가 고파온다. 생각해 보니 오전 8시쯤 아침식사를 하고 지금까지 굶었다.

빨리 출국 수속을 밟고 라운지에서 배를 채울 생각뿐이다.

자! 이젠 검색대만 통과하면 된다.


헐! 사람이 많다.


자고로 공항이란 이런 법인데 북적북적대는 사람들이 낯설다. 작년 겨울 공항에 왔을 때만 해도 이렇게 사람이 많지 않았는데 검색대 통과를 위한 줄이 사람들로 바글바글하다.

집에서 출발한 시간이 1시가 조금 넘었었는데 검색대 라인에 있는 지금 시간이 4시가 넘었다.

오후 6시 비행기라 기내에서 배가 고플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무조건 배를 채우고 비행기를 타야 한다. 저가항공이라 밥도 안 준다. 뭐 돈 주고 사 먹으면 되긴 하지만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5시간 반 정도 소요되는 비행, 현지에는 9시 반에서 10시쯤 도착예정인데 그럼 한국 시간으로는 밤 12시다.

흠...

나는 말랐다. 어릴 때부터 항상 작고 마른 아이였는데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말랐다고 배고픔을 모르진 않는다. 회사에서 일하다가 밥 먹는 게 귀찮아 배고픔을 참다 위경련이 일어난 적이 몇 번 있어 항상 공복이라도 적당한 상태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배고픔에 예민하고 비상식량? 빵.. 같은 것을 사둬야 심리적으로 안정을 얻는다.


여하튼 원래 나의 계획은 공항에 일찍 도착해 면세점에서 세련된 안경테를 사고 라운지에서 식사를 하며 여유 있게 키보드를 두드리는 신녀성의 모습이었다.

근데 젠장, 안경테는 고사하고 밥이라도 먹었으면 좋겠다.

시계만 계속 바라본다. 검색대를 통과하니 4시 반이 지났다. 일단 안경쇼핑은 패스~ 라운지로 재빨리 향한다.


헐!

이런 광경도 첨 본다. 라운지에 들어 갈려는 사람들로 인해 줄이 길다. 지난 11월 아이슬란드 간다고 공항에 왔을 때만 해도 널널했는데.. 이제 여행업계도 완전히 예전으로 돌아온 듯하다.

라운지도 빠르게 포기!

식량을 구하기 위해 38번 탑승구 쪽에 있는 식당을 향해 종종걸음으로 경보하듯 빨리 걷는다.


헐!

여기도 만석에 주문 대기시간이 30분이다. 이제 슬슬 짜증이 밀려온다. 지금 출출함은 괜찮은데 한국시간 밤 12시까지는 참을 수는 없는 수준이다.

빠르게 식량을 구하기 위해 머리를 굴린다.

'하.... 진짜 빵은 먹기 싫은데...'

어쩔 수 없다. 파리바게트로 방향을 튼다.

'우와!! 여기도 줄이 길다니....'

할 말을 잃었다.

샌드위치와 고구마식빵, 생수를 계산한다. 무려 15,800원이다. 너무 비싸다.

계산한 식량을 가지고 사람이 별로 없는 게이트 쪽 의자에 앉아 휴대폰을 충전하며 샌드위치를 먹는다. 맛이 없다. 2/3쯤 먹고 버렸다. 아까워서 억지로 더 먹었다가는 채 할 수도 있겠다 판단되어 쓰레기 통에 버린다.


꽤 오래전 일이지만 시집간 언니가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자신의 집으로 초대한 일이 있다.

그런데 그때 내가 왜 그랬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분명 언니가 저녁상을 차려 줄 것을 알고 있는데 나는 뭔가를 먹고 언니집에 간 것이다. 예상대로 언니는 막내가 온다고 진수성찬을 차려 놓았다. 언니의 정성을 생각하니 차마 밥을 먹고 왔다고 말할 수 없어 꾸역꾸역 먹었고 결국 탈이 나서 바로 다 토하고 말았다.

나는 언니에게 미안하고, 언니는 나에게 미안해했다.

그게 나에겐 트라우마가 되어 뭔가 억지로 먹지 못하게 된 것 같다.


그렇게 맛없는 샌드위치를 먹고 진짜 38번 탑승구 쪽으로 가는데 생뚱맞은 곳에 카페 분위기로 되어 있는 곳에 면과 돈카츠 등 내가 좋아하는 조리된 식사를 파는 곳이 있지 않은가!!!


너무 먹고 싶은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고 무엇보다 이미 샌드위치로 굶주린 배의 급한 불은 껐기 때문에 아쉬움만 남기고 발걸음을 게이트 쪽으로 계속 옮긴다.

식탐은 없다 못해 때론 먹는 게 귀찮아 알약 하나만 먹으면 배고픔을 잊게 하는 그런 게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런데 많이 먹지도 못하는데 또 배고픔은 참지 못하는 나란 사람 참 어려운 것 같다. 그냥 지금 나는 따뜻한 밥을 먹지 못하고 비행기를 타야 한다는 상황이 짜증 났다. 하지만 별 수 없지 않나.

 

5시 반 드디어 비행기를 탔다.

캐리어가 있기 때문에 빨리 줄을 선다. 간혹 저가항공은 기내에 캐리어 둘 공간이 없어 곤란해하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어 최대한 빨리 탔다.

오랜만의 LCC라 그런지 좌석 간격에 놀란다.

동남아 갈 때는 거의 LCC였는데 어쩌다 보니 작년 여행에서는 계속 국적기만 타서 좌석 간격에 감을 잃은 것이다.

157센티인 나는 그래도 괜찮는데 성인 남성들은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저렴한 가격이기 때문에 몇 시간의 불편함만 참으면 되니까 LCC가 좋다!!


처음엔 사람이 없더니 거의 만석이 되어 비행기는 출발했다. 잠이 안 온다. 뒤척이다 보니 어느새 기내식 주문을 받는다. 하필 내 양옆 좌석의 사람들이 모두 컵라면을 주문한다.

라면 먹을 생각이 1도 없었는데 나도 따라 주문한다.

사실 옆에서 누가 라면을 먹으면 한 젓가락이 국롤 아닌가!

그런데 처음 보는 사람에게 한 젓가락만! 국물 한 입만!

그럴 수 없기에 나도 따라 주문한다.

꿀맛이다. 두세 번 젓가락질을 한 것 같은데 면이 사라졌다. 감칠맛만 난다. 하나 더 주문하고 싶은데 참는다.

이제 3시간 남았다.

원래 예정 도착시간은 9시 30분인데 10시쯤 도착한다고 기장님이 방송으로 말씀하신다.

공항에서 숙소가 있는 올드시티는 가깝다. 10~15분이면 택시로 도착한다. 하지만 해외여행 중에는 해지면 혼자 돌아다니는 걸 무서워하기 때문에 30분이 연착되는 상황이 싫다. 조금이라도 일찍 숙소에 들어가고 싶다.

책도 들고 탔는데 도무지 글이 눈에 안 들어온다.

잠을 겨우 청했는데 기내 안 조명이 다시 켜졌다.

기장님이 착륙 40분이 남았다고 우리를 친절히 깨우셨다.

아... 그냥 착륙 10분 전에 깨워 주시지...


정말 어릴 때는 비행기 타는 게 너무 좋았다. 마냥 신났다.

물론 지금도 좋다. 딱 탑승 후 3시간까지만.

체력적으로도 힘들고 무엇보다 답답하다.

이제 곧 좁은 공간에서의 탈출이 얼마 남지 않았다.

비행기가 착륙한다.

쿠웅!

지면과 닿는 바퀴의 소음과 진동이 온몸으로 전해진다.

착륙소리와 함께 바로 휴대폰 전원을 껐다가 켠다.

제출한 이력서들 때문에 일단 혹시나 연락이 온 회사가 있나 살짝 기대해 본다. 없다.

이미 두 군데와 접촉 중이고 함께 일하자는 제의도 받았지만 확 끌리지 않는다.

100% 만족스러운 직장은 없겠지만 그래도 최대한 일하고 싶은 곳으로 선택하기 위해 여행 중에도 틈틈이 이력서를 제출할 생각이다.


초저가로 구입한 항공권 덕분에 기내에 반입한 캐리어를 낑낑대며 내린다.

이럴 때는 키 작고 왜소한 내가 싫다.

탑승할 때는 남자승무원이 도와줬는데 지금은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괜히 서글퍼진다.

괜찮아! 난 강한 여성이니까!

한번 와 봤던 곳이라 그런지 두려움도 많지 않다. 그리고 치앙마이 자체도 두려움을 주는 그런 도시는 아니다.


입국심사 줄이 꽤 길다.

내가 탑승한 제주항공과 거의 비슷한 시간에 대한항공도 도착한듯하다. 그로 인해 한국인으로 북적댄다. 여기가 한국인지 태국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늘 그렇듯 공항만 나가면 함께 탑승했던 한국인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이방인의 느낌이 물씬 난다.

밤 10시 반이다. 아무리 안전한 곳이라 해도 밤은 위험하다. 그랩도 있지만 공항택시가 잘 되어 있다는 블로그 후기를 보고 왔다. 꼼꼼히 본 나는 글에서 시키는 대로 했다.


우선 입국장으로 나가면 택시라고 적혀 있는 곳으로 가서 내가 갈 목적지를 말한다. 그러면 직원이 목적지가 적힌 종이를 다시 준다. 그럼 나는 그 종이를 들고 1번 출구 쪽으로 간다. 거기에 직원분들이 종이에 몇 번 택시를 탈지 적어준다.

나는 87번 택시였다. 대체 87번이라는 숫자는 내가 어떻게 확인하는 거지?

두리번거리니까 차마다 숫자가 적혀 있는 게 보였다.

공항택시를 타는 방법은 굉장히 어수선하고 아날로그적인 방식인데 막상 접해 보면 매우 체계적이다.

아주 오랜 시간 그들이 몸으로 경험하고 만든 시스템임을 알 수 있다.

나의 87번 택시는 5분도 기다리지 않았는데 도착했다. 탑승하니 기사님이 구들지도에 목적지를 입력해 달라고 하신다.

그리고는 나를 태운 택시는 호텔로 향한다.

공항에서 10분도 되지 않았는데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기사님이 말씀하신다.


'어랏!! 여긴 어디지? 내가 예약한 숙소의 사진과 다른데...'


순간 심장이 벌렁 거린다.

침착해야 한다. 구글 지도로 현재 나의 위치를 확인해 본다. 숙소는 분명 이 근처이다.

아! 조금 지나쳤다. 왜 보지 못했지? 사실 걸어갈 수 있는 거리였지만 무서웠다. 늦은 시간이라 거리의 조명이 거의 꺼졌기 때문에 택시에서 내리지 않고 기사님께 지도를 다시 보여준다. 기사님과 함께 주변을 잠시 헤매가 최종 목적지에 도착했다.


'아... 이러니 못 찾았지...'


내가 2박을 할 숙소는 별 3개짜리 조그마한 부티크 호텔이다. 그런데 카페와 함께 하는 곳인데 메인 도로에 접하는 카페가 영업이 끝이나 조명이 꺼져 있어 숙소를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던 것이다.


내가 택시에 내릴 때  마침 호텔 직원이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검은색 봉투를 들고 나왔다.

직원은 나를 보자마자 반갑게 인사를 한다. 하지만 택시 기사님은 무언가 불안하신 듯 연신 여기가 호텔이 맞냐고 내게 물어보신다. 그리고 호텔에서 나온 직원에게도 다가가서 태국말로 계속 뭔가를 말씀하신다. 의심스러운 눈으로 그를 보는 것 같았다.

기사님은 나를 그냥 내려 주고 갈 수도 있는데 마지막까지 나의 안전까지 챙겨주신다.

감동적이다. 이래서 치앙마이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프런트에는 남자직원 한 명이 더 있었다. 보아하니 나를 포함해 2명의 손님이 아직 체크인을 하지 않은 것 같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친절히 그리고 반갑게 맞아 주신다. 내가 가본 동남아는 태국과 베트남뿐인데 태국은 언제나 친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찌 보면 과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전혀 부담스럽지 않고 덩달아 나도 친절하게 만드는 친절이다.

왜 태국을 미소의 나라라고 하는지 한 번이라도 온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체크인 절차를 마친 후 2층 나의 객실로 직원분이 안내해 줬다. 숙소 컨디션은 생각했던 것과 비슷하다.

근데 복병을 만났다. 한국의 무소음 에어컨에 익숙해진 건지 에어컨 소음이 너무 크게 들린다.

나 그렇게 예민한 여자가 아닌데 거슬린다. 참다가 그냥 에어팟을 착용한다. 현지 시간으로 밤 11시가 넘은 시간 한국시간으로는 새벽 1시가 넘었다. 서둘러 잠잘 준비를 한다.

그런데 막상 잠이 쉽게 들지 않는다.


나는 왜 이곳에 있을까?

아침에 취소한 스페인 순례길 비행기 티켓이 떠오른다. 잘한 결정일까? 후회하지 않을까? 두 번째 순례길이 참 쉽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내일은 뭐 하지 생각한다.

아침 조식은 없는 걸로 결제했는데 호텔에서 사 먹을까? 그런데 비용이 한국 돈으로 거의 2만원이다. 대체 얼마나 대단한 조식이기에 치앙마이에서 2만원일까? 한국에서도 그 가격이면 비싸다. 바로 포기한다. 근처에 먹을 곳이 있는지 구글지도로 검색해 본다. 도보 6분 거리에 블루누들이 있다. 결정했다. 여긴 2019년 휴가 때 가 봤던 곳이고 맛집으로도 유명하다. 블루누들은 오전 9시에 오픈이니까 늦잠 자고 천천히 움직여야겠다고 나름의 계획을 세운다. 그렇게 내일 아침 먹을 곳만 결정하고 진짜 잠을 청한다.

나머지 일정은 내일 끌리는 대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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