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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꼰떼 May 31. 2023

나의 치앙마이 이야기 (번외편)

나는 왜 두 번째 스페인 순례길을 포기했나?

어릴 때 김남희 작가님의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 2-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스페인 산티아고 편>을 읽었다.

그 책을 접한 나는 무조건 2010년 그곳에 가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지만 나 역시 생각하는 대로 결국 이루어진다고 믿는 편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대로 나는 2010년 스페인 순례길을 갔다.

그곳에서의 시간은 내 인생 가장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다.


가기 전에는 그곳에서 무언가 생각을 정리하고자 했다.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나의 직업은 그리고 행복은 등 나만의 개똥철학을 가득 안고 난생처음 배낭이란 것을 짊어지고 길을 나섰다.

하지만 길 위에서 그런 생각은 하나도 하지 않았다.

일부러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냥 그 순간이 너무 행복했고, 무엇보다 초반의 육체적 힘듦이 그런 나름의 철학적 사고를 할 수 없게 뇌를 마비시키는 것 같았다.


그곳에서 나의 삶은 초단순화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 배낭을 메고 길을 걷기 시작하면 바르(bar)가 언제 나올까만 손꼽아 기다린다.


스페인은 바르라는 곳에서 아침식사도 팔고 커피, 음료, 크로와상, 맥주 등 그냥 모든 걸 다 판다. 그러다 보니 성별과 연령대 구분 없이 모든 사람들이 가볍게 들리는 곳 같다.


당시 나는 술을 마시지 않았기 때문에 항상 콜라를 마셨다.

콜라를 주문하면 대부분 얼음잔에 레몬을 하나씩 띄워 주었다.


그렇게 순례자에게 오아시스 같은 바르에 도착하기만을 기다리며 걷다 보면, 어느새  나의 생각은 오늘 저녁은 뭘 먹을까로 이른다.

오로지 자고, 걷고, 먹고, 싸고 정말 인간이 원초적으로 된다고 할까?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가장 행복했던 이유는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때문이었다.

각자가 다른 이유 때문에 순례길 위에 있지만 그곳에서 우리는 모두 순례자라는 공통된 신분이 된다.

나이, 성별, 국적, 직업 등 모든 게 필요 없다.

그냥 너와 나였고, 우리는 모두 평등했으며 서로를 배려하고 걸었다.

내가 행운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열이면 열 모두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다.

너무 좋은 인연들이라 그중에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이지만 스스럼없이 연락한다.


하지만 오히려 너무 행복한 추억과 감정 때문에 섣불리 다시 그곳에 갈 수 없었다.

이미 한 번의 경험이 만들어낸 기준이 너무 높았기 때문에 다시 도전하는 게 두려웠다.

괜히 실망만 하고 돌아오면 어쩌지라는 마음이 컸다. 그래서 두 번째 순례길이 오히려 첫 번째보다 도전하기 어려웠다.

마음속에는 항상 그곳을 향한 그리움이 있었고, 언젠가 다시 걸을 걸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 작년 5월 나는 자발적 백수가 되었다.

가장 먼저 준비한 것은 스페인 순례길을 다시 가는 것이었다. 5월 중순쯤 출발하는 것으로 티켓을 발권했다. 너무 가고 싶은 마음에 일단 티켓을 발권하면 어떻게든 가겠지라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내 몸은 가지 말라고 하고 있었다. 당시 나는 과로로 인해 결국 목디스크가 터진 상태였다.

5~6번 디스크가 터져 그로 인한 방사통으로 오른쪽 팔과 손 저림이 심했다. 하루 종일 일하고 퇴근하면 저녁 먹을 때는 숟가락 드는 게 힘들어 왼손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 저림 증상이 하반신으로까지 퍼져갔고 결국은 오른 다리까지 저렸다. 걷는 게 불편했다. 가끔은 다리를 절기도 했다. 이런 상태로 800km를 완주하는 것이 가능할까? 괜히 갔다가 중도포기하게 되면 오히려 좌절만 하지 않을까? 그리고 무리해서 걷다가 영영 다리를 절게 되면 어쩌지? 무서워졌다. 10년 전 나는 건강했지만 지금 나의 몸은 아니다.

순례길이 내 인생의 끝은 아니지 않은가!

결국 고민 끝에 나는 티켓을 취소하기로 결정했다. 일단 1년의 휴식기간을 가지기로 결심했으니 쉬면서 몸이 좋아지면 다시 가자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첫 번째 다시 갈 기회를 놓쳤다.


그러다 백수 1년의 끝자락 4월 중순쯤 다시 스멀스멀 순례길에 대한 욕망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매년 5월만 되면 나는 병처럼 순례길을 그리워한다.

하지만 백수생활 1년이 되니 돈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통장 잔고의 앞자리가 바뀔 때마다 심장이 쿵하고 떨어졌다. 그래도 너무 가고 싶었다. 미래의 내가 갚을 거라 생각하며 순례길에 대한 예열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여느 때처럼 그날도 아시아나 홈페이지에 들어갔는데 마일리지로 항공권 발권에 성공한 것이다. 그것도 비즈니스로 말이다!

내 생애 언제 비즈니스를 타겠냐며 이것은 온 지구가 내게 순례길을 가라고 돕는 것 같았다. 이젠 진짜 출발만 하면 된다. 하지만 한 가지 관문이 남아 있다.


순례길을 다녀오면 바로 취직을 해야 한다. 처음에는 순례길에서 돌아오면 일자리를 알아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계획했던 1년이 다되어가니 뭔가 불안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일단 가벼운 마음으로 시험 삼아 이력서를 몇 군데 넣기 시작했다.

당연히 여기서는 연락 오겠지라며 생각했던 곳에서 면접제의가 없었다. 탈락인 것이다. 믿을 수가 없었다.

충격 그 차체였다. 나름 복귀하는 것이고 예전처첨 120%의 열정으로 일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어찌 보면 하향지원이었다. 그런데 거부당한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평소 복 받았다고 할 정도로 잠을 잘 잤는데 난생처음 불면증을 경험한 것이다. 갑자기 취업을 못한다는 불안감에 심장이 벌렁거릴 때도 있었고, 겨우 잠이 들면 한두 시간도 못 자 깨기도 했다. 너무 힘들었다. 순간 내가 너무 쓸모없는 인간 같았다. 거기다 매달 나가는 고정지출들을 확인해 보았다. 숨만 쉬어도 들어가는 돈이 100만 원이었다. 취업을 못할 경우 내가 최대 몇 개월까지 버틸 수 있는지 계산을 해보았다.

가벼운 마음으로 이력서를 넣었는데 마음이 모아이 석상만큼 무거워졌다.


이런 모아이 석상 같은 마음으로 순례길을 온전히 집중하며 걸을 수 있을까? 나는 자문해 보았다.

돈이 무서워 마음 편히 콜라 한잔 사서 마실 수 있을까 생각했다. 난생처음 취업과 돈을 걱정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무서웠다. 그래서 결단을 내려야 했다.

그건 순례길 포기였다.


그리고 본격적인 구직 활동을 시작했다. 우선 주변 지인들에게 나의 구직소식 소문냈다. 처음에는 아예 다른 직종으로 전환을 해보고 싶어 관련 지식을 쌓으며 자격증을 따기도 했다. 그런데 현실적인 문제, 즉 연봉과 근무환경 때문에 일단은 기존에 했던 일을 다시 알아보기로 결정했다.

보통 회사는 구인란, 구직자는 취업난이지 않는가. 그래서 직종을 바꾸지 않는다면 소개로 추천해서 들어가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나의 구직 소식을 여기저기 알렸다. 자존심 따위는 내려놓았다. 그렇게 해서 3군데에서 면접 제의가 들어왔고 감사하게도 2군데에서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더불어 직종 전환을 꿈꾸었던 곳에서도 신입으로 함께 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비록 짧은 일주일에서 열흘정도되는 구직 활동이었지만 정말 피를 말리는 시간이었다.

나는 사회초년생 때도 이렇게 힘들어했던가 생각해 보았다.  오히려 그때는 부모님 집에서 거주하고 있었고 어렸기 때문에 크게 취업걱정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나의 사회적 위치가 다르다. 마냥 부모님만 바라보기엔 나 자신이 용납할 수 없다. 게다가 엄마가 아직도 일하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해서 나의 두 번째 순례길은 결국 좌절되고 말았다. 취업이라는 현실 때문에.


흔히들 농담 삼아하는 "돈이 있으면 시간이 없고, 시간이 있으면 돈이 없다"라고 말한다.

내 상황이 딱 저랬다. 하지만 포기에 대한 아쉬움이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이상했다.

나는 다시 자문해 보았다.

내가 순례길을 가려고 했던 이유가 무엇인지.

5월 햇살의 싱그러운 초록을 보고 싶다. 동이 틀 때의 하늘과 안개가 보고 싶다. 그리고 쨍한 스페인의 태양을 느끼고 싶다. 새로운 인연을 만나고 싶다. 그 새로운 인연이 나를 또 어디로 데리고 갈지 궁금했다.

그런데 그런 가고 싶은 이유들 뒤에는 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숨겨져 있지 않았나 싶다.

그중 가장 큰 부분이 외로움이다.

처음 그 길을 갔을 때 나는 다시 그 길을 걷는다면 반드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런데 지금 내게는 사랑하는 사람이 없다. 마지막으로 누군가를 사랑했고 그리워한 것이 벌써 2년이 훌쩍 지났다. 가끔은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 감정이 없다는 것이 마음 편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 없음이 나를 외롭게 하기도 한다. 떠오르는 사람이 없다. 어쩌면 다행인 건가!? 더 이상 그로 인해 마음 아파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나의 두 번째 순례길은 그렇게 무산되었지만, 작년 11월 아이슬란드 여행을 동행한 동생 중 한 명이 지난 3월 순례길을 다녀왔다. 그의 회사는 5년 근무를 하면 안식월을 준단다. 역시 개발자이고 대기업인가?

그래서 그가 현재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끝나는 시점에 맞춰 안식월 플러스 내년 2024년의 연차를 5개까지 당겨 쓰며 다녀왔다.


그 동생을 며칠 전 만났다.

그의 순례길 이야기가 궁금했다. 그는 그곳을 걸으며 많은 생각을 했고 때론 울기까지 했단다.

물론 나도 울었다. 그것도 3번이나. 한 번은 물집 때문에, 또 다른 한 번은 배가 너무 고픈데 차고 딱딱한 샌드위치 말고 따뜻하게 조리된 음식이 먹고 싶어서, 그리고 마지막은 최종 목적지인 산티아고 콤포스텔라에 도착해서.

그의 눈물과는 달았다.

그는 많은 생각에 잠겼다고 한다.

인간이 어디까지 단순화될 수 있는지를 경험한 게 나였다면 그는 자기 탐구 혹은 자아성찰의 시간을 가진 듯했다.


같은 장소를 경험했지만, 사람마다 사고하는 것과 느끼는 감정이 다르다.

그가 그곳에서 만난 사람이 나와 달랐을 것이고, 그가 그 길을 걸었을 때의 날씨와 공기 또한 나와 달랐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성장배경과 성격, 가치관이 나와 다르다.

순례길이라는 큰 틀의 장소만 같을 뿐 그가 경험한 모든 것이 나와 다르다.


내가 나의 여행기를 쓰고, 일상을 쓰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이런 다름 때문이다.

수없이 많은 여행기와 에세이가 넘쳐 흐리지만 나의 생각과 글은 하나뿐이다.

누군가는 공감할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렇지 못할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이런 나의 사소한 감정들을 기록하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아이폰의 메모장이 가득 차고 있다.

비록 이번에도 두 번째 스페인 순례길은 실현되지 않았지만, 내가 진짜 원했다면 결국 가지 않았을까?

두 번째 순례길 대신 나는 치앙마이를 갔고, 그곳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났다. 어쩌면 그 인연 덕분에 지금 내가 브런치에 글을 올리게 된 게 아닌가 싶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꼭 다시 만나고 싶다.


그리고 나의 두 번째 스페인 순례길은 반드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할 것이다.

그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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