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꼰떼 Jun 05. 2023

나의 치앙마이 이야기 Day-3 (1부)

(2023.4.30 일요일)

왜 이렇게 잠을 설치지?

어젯밤 거의 한 시간 간격으로 잠에서 깬듯하다.

진짜 잠을 잘 자는 나인데..

이직에 대한 급한 불은 끈 상태인데 왜 이러는 거지?

잠을 설치는 원인을 모르겠다.

2시간의 시차가 문제인가? 겨우 2시간인데?

어제 숙소에 돌아왔을 때 나는 이미 더위를 먹어 넉다운이 된 상태였다.

그럼 기절을 했어야 하는 게 정상 아닌가?

결국 아침 7시 더 이상 잠을 자는 것을 포기한다.


오늘도 샤워로 몽롱한 정신을 깨운다.

그리고 오늘로써 이 호텔과는 안녕이다.

별 3개짜리 부티크 호텔답게 작고 아담하지만 혼자 사용하기엔 부담스러울 만큼 큰 침대가 놓여 있다.

그리고 벽의 한 면이 창문으로 되어 있고 베란다로 나갈 수 있어 개방감이 좋다.

하지만 좋은 베란다는 낮에는 더위 때문에 밤에는 벌레 때문에 제대로 나가 본 적이 없다.

사실 숙소에서 쉴 시간 없이 돌아다닌 게 맞는 표현인 것 같다.


기분 좋게 씻고 8시가 조금 넘은 시간 올드시티를 거닐어 보기로 한다. 어제는 뜻밖의 동행으로 정작 내 숙소가 있는 올드시티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비록 4년 전에 온 적 있지만 지금은 또 다른 느낌이다.

아직 폭염이 이곳을 삼키기 전인데도 삼십 분 정도 걸으니 덥게 느껴진다.

어제 만났던 동행분이 왜 아침에 나갔다가 오후 한낮엔 피신했다고 했는지 알 것 같다


나는 어제처럼 더위를 먹을까 봐 숙소에서 나오기 전 냉장고에서 차가운 물을 챙겼다.

아침으로 뭘 먹을까? 브런치는 땡기지 않는다.

태국에 왔으니 태국 스타일로 먹고 싶다.

그런데 아직 대부분의 가게가 오픈하지 않은 시간이다.

구글지도로 인근의 오픈한 로컬식당이 있는지 확인한다.

9시 블루누들이 가장 빨리 문을 연다.  아메리칸브랙퍼스트를 파는 가게들은 이미 오픈되어 있지만 왠지 끌리지 않기에 패스한다.

어제 동행이 코코넛쉘을 추천했는데 그곳의 오픈 시간을 확인하니 오전 10시다. 기다릴 수 없다. 눈을 뜨면 먹어야 하는 내게 10시는 가혹한 시간이다.


올드시티를 배회하다 9시가 조금 넘긴 시간 블루누들로 간다. 역시나 손님이 많다. 하지만 오늘은 나의 자리가 있다. 어제와 같은 자리다.

메뉴는 고기국수와 어제 옆테이블에서 먹는 게 맛있어 보였던 비빔국수를 주문한다.

주변을 보니 내 옆에 혼자 온 여자도 메뉴를 2개 주문해서 먹고 있다.

'흠.. 먹을 줄 아는 여자군'

보아하니 먹을 줄 아는 그녀도 한국인 같았고 나처럼 혼자였다. 하지만 오늘은 어제처럼 말을 걸고 싶지 않아 조용히 나의 식사에만 집중하기로 한다.


혼자 여행 온 사람들은 나와 비슷한 마음이지 않을까?

오롯이 혼자이고 싶다가도 동행이 있으면 좋겠고 근데 동행이 생기면 또 혼자이고 싶고.. 어쩌란 말인지..

나만 그런가? 내 마음 나도 모르겠다.


일단 지금 나의 경우에는 어제는 동행이 있었고 오늘 밤에는 아는 동생이 치앙마이로 오기 때문에 이곳에서 혼자인 시간은 오늘 낮 뿐이다. 그래서 더욱 그냥 혼자인 시간을 즐기고 싶다.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이런... 비빔국수가.... 내가 뭘 기대한 거지?'

폭염이라 당연히 한국처럼 차가운 비빔면을 생각하고 주문을 했는데 따뜻하다.

그것도 아~주 따뜻한 면이다.

왠지 모르게 속았다는 기분이 든다.

주문 전에 물어봤어야 했는데.. 어쩜 그들에겐 따뜻한 면이 당연한 게 아닐까? 그냥 나의 경험으로 지레 차가울 것이라고 판단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래도 고기국수와 비빔국수를 모두 클리어하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지금 나의 계획은 호텔 체크아웃이 12시니까 11시까지는 거리를 걷다가 숙소에서 1시간 쉬고 나오는 거다.

아주 완벽한 오전 계획이다.

근데 아침을 먹고 일어서니 걸을 수가 없다.

뜨거운 공기가 온몸으로 느껴진다. 거리엔 사람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어제처럼 또 더위를 먹어선 안된다는 마음에 숙소로 피신한다.

나는 에어컨을 틀고 침대에 바로 눕는다.

'아~ 이것이 행복이로구나'

순간 이럴 거면 내가 왜 치앙마이에 왔나 생각이 든다. 알고 있다. 나는 게으른 여행자다.

매번 여행 시 특별한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그냥 발길 닿는 대로 그 순간 마음이 가는 대로 움직인다.

그러다 보니 이것이 여행이 맞나? 이럴 거면 왜 집을 떠났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굳이 돈과 시간을 들여 이게 뭐 하는 짓인지...


한참 어릴 땐 여행을 하면 나의 삶이 뭔가 드라마틱하게 변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게 되곤 했다. 하지만 여행의 횟수가 늘어나면 늘어나는 만큼 그런 기대는 사라져 버렸다. 물론 경험이 쌓이긴 했겠지만 여행 전 후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 번 여행을 떠난다. 여행의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여행에도 이유가 있어야 하나?

그렇게 침대에 누워 잡생각 속에 빠져든다.


나는 체크아웃 시간을 20분 남기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다.

캐리어와 잔스포츠 백팩은 호텔에 맞긴다. 다음 숙소의 체크인 시간은 오후 2시다. 일단 2시간을 때워야 한다.

폭염 속에서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생각해 본다. 마야몰에서 쇼핑하기, 카페 가기, 마사지받기.


나는 마사지를 선택한다. 올드시티를 어슬렁 거리다 나름 합리적이라고 판단되는 가게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곳은 내가 4년 전에 들렸던 곳이다.

간혹 마사지사에 따라 마사지가 간지럽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어 오늘은 안전하게 발마사지만 받기로 결정한다. 1시간에 350바트. 좀 비싸다. 더 저렴한 곳을 찾으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굳이 비싼 350바트의 호사스러운 사치를 선택한다.

다행이다. 마사지사가 나보다 체격이 크다. 왜소한 분이 오시면 괜히 미안해진다.

그녀는 무릎을 꿇고 내 발을 씻는 것으로 마사지를 시작한다.

타인의 발을 정성스럽게 씻어주는 그들의 프로정신에 나는 감사한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교차한다.

부디 내가 지불한 350바트 중 절반 이상은 마사지사가 가져가길 바래본다. 그녀는 월급제일까? 언젠가부터 이런 서비스를 받으면 그들의 페이가 어떤 방식으로 책정되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비단 이것은 여행지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헤어숍이나 네일숍, 피부관리실, 타일공, 도배업 등 개인의 기술이 제공되는 곳은 어디든 나는 궁금해진다.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기준에 따라 기술직을 바라보는 범위나 시선이 다르겠지만 나에게는 충분히 기술직으로 분류되며, 직업 또한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에 대한 나의 생각은 추후 따로 몇 자 끄적여 볼 생각이다.

 

마사지를 마친 후 맞은편에 있는 식당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Its good kitchen 4년 전 찍은 사진이다.


여기는 4년 전 숙소가 바로 근처라 자주 갔던 곳이었는데  그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왜 이렇게 손님이 많은 거지?

4년 전 내가 왔을 때는 항상 자리가 여유 있어 나만의 맛집이라 생각하며 편하게 찾았는데 지금은 뭔가 그렇지 못한 느낌이다. 나는 식당 맞은편에 서서 가게 이름을 검색을 해 본다. 딱히 검색을 즐겨하지 않는 편이라 4년 전에도 이곳을 검색해 보지 않았다. 그래서 그 당시 이곳의 검색결과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구글 평점 4.6에 리뷰도 1500개가 넘는다. 그리고 네이버에도 <치앙마이 맛집>이라고 검색하니 17위로 소개까지 되어 있다. 뭐지? 원래 맛집이었던 건가? 여하튼 그로 인해 나의 자리는 없다. 그리고 더위 속에 기다림도 없다. 일단 나는 숙소 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걷다가 달달한 뭔가가 땡겨 노점에서 수박주스를 구입 후 올드시티 골목을 정처 없이 걷는다.

그런데 왜 이렇게 사람이 없는 거지? 예전에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뭔가 휑한 느낌이다. 너무 더워서 다들 거리에 나오지 않는 건가? 아니면 코로나로 인한 여파가 아직까지 이어지는 건가? 나는 특정한 목적지 없이 골목골목을 계속 걷는다. 쨍한 태양이 나를 죽이려 달려들지만 수박주스가 인공호흡기 마냥 계속 두 다리로 걸을 수 있게 도와준다. 뜨거운 태양과 거리의 초록 색감이 마냥 기분 좋게 만든다.


나는 다음 숙소의 체인시간을 40분가량 남기고 숙소 주인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혹시 일찍 체크인 가능한가요?"

가능한다는 답을 받자마자 바로 캐리어를 맡긴 호텔로 가서 짐을 찾고 그랩을 불러 다음 숙소로 이동한다.


두 번째 숙소는 콘도로 에어비앤비 어플을 통해 예약했다.

'와우'

외부에서 본 규모가 압도적이다. 이렇게 크면 괜히 주눅이 든다. 애써 당당해 보이기 위해 좁고 말린 어깨를 펴본다. 로비에는 서양인들이 많이 보인다. 그리고 흑인이 많이 보였다. 치앙마이에 와서 처음으로 흑인을 보았다. 그것도 여러 명이나. 뭔가 이국적인 느낌의 콘도다.


나는 입실하기 위해 카드키를 찾으러 갔다.

아이슬란드 여행에서 에어비앤비를 많이 이용했는데 그때의 경험이 숙소키를 찾는데 도움이 되었다.

족히 100개는 넘어 보이는 키박스가 한 곳에 모여 있다. 나보다 먼저 도착한 서양인 커플이 어떻게 해야 할지 헤매는 모습이 보인다. 나는 그들의 옆에 가서 익숙한 듯한 자세로 쉽게 키박스에서 카드키를 빼낸다. 나의 모습을 지켜보던 서양인 커플이 바로 따라 한다. 괜히 어깨가 올라간다. 처음 아이슬란드에서 키박스를 만났을 때 나와 동행들은 마치 방탈출게임을 하는 것 같다며 말한 기억이 났다.

 

그렇게 미션 클리어를 한 다음 나의 방으로 들어왔다.

아... 근데 실망이다. 생각보다 노후가 많이 된 느낌에 화장실 배수관 냄새가 많이 난다.

그래도 괜찮다. 냄새는 익숙해지니까.

부디 도마뱀과 개미만 없으면 된다. 15층이라 도마뱀은 없을 것 같고, 개미만 없으면 된다.

그런데 캐리어에서 짐을 풀다가 순간 눈앞에 작고 미세한 뭔가가 빠르게 움직이는 게 포착된다.

제발... 이건 뭐지? 개미라고 하기엔 너무 작고, 아니라고 하기엔 아닌 것 같고.. 대체 뭐지?

아!!! ㅜㅜㅜㅜㅜㅜ 내게 개미는 바퀴벌레와 동급일 만큼 싫다. 징그럽다.

안경을 쓰고 자세히 보니 개미인 듯 개미 아닌 개미 같은 생명체가 숙소에 바글바글하다.

굳이 음식물이 없는 곳에도 생명체가 기어 다닌다. 테이블에도 소파에도 싱크대 위에도 화장실의 세면대에도 미칠 것 같다. 머릿속에 상상의 나래가 펼쳐진다.

혹시 이 녀석들이 내 캐리어에 들어가서 한국까지 따라오면 어떡하지? 우리 집엔 개미가 없는데...

숙소에서 마실 맥주와 과자를 사 왔는데 과자는 먹지 못할 것 같다.

리뷰가 참 좋았는 나만 개미를 싫어 하나 보다.

찝찝한 마음 가득 안고 이곳에서 2박을 해야 한다.


드디어 한국에서 가져온 책을 읽으려고 집어 들었는데 개미 몇 마리가 책 위에 기어 다닌다. 순간 너무 놀라서 책을 떨어 트렸다. 대체 이 녀석들이 없는 곳이 없다.  책을 오만상 털며 개미가 떨어지길 바래본다.


이제 3시간만 있으면 아는 동생이 온다. 동생과 같은 숙소를 하기 위해 내가 이쪽으로 옮겼다. 동생은 굳이 같은 숙소일 필요는 없다고 했지만 이래저래 동선을 생각했을 때 같은 곳에서 움직이는 게 교통비도 절감되고 편할 것 같아 옮겼다. 동생은 7층, 나는 15층이다.

동생은 낮에 지연 없이 비행기가 출발할 것 같다고 톡이 왔다.

동생이 오면 바로 선데이마켓을 가기로 했다. 혼자였으면 가지 않았을 텐데... 나는 해가 지면 무섭다.


오늘 오전까지는 태국이 안전한 나라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산책을 하는데 어떤 아저씨가 계속 태국어로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그런데 그분의 상태가 조금 이상했다. 엄청 무서웠다. 술에 취한 건지 약에 취한 건지 아니면 원래 정신이 온전치 않은 건지 판단할 수 없었지만 무서워서 나는 빠른 걸음을 도망쳤었다.

이곳은 안전하다고 생각했는데 단 한 명의 사람 때문에 내게 이곳도 위험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만들었다.

우리나라에 온 외국인도 본인이 경험한 한국인 한 명 때문에 한국이 무서운 나라 혹은 싫은 나라가 될 수 있겠지?

한 번의 경험으로 일반화를 하면 안 되지만 우린 쉽게 그런 오류를 범하곤 한다.


밤 11시가 조금 넘은 시간 나름 기다렸던 동생이 숙소에 도착했다.


여행 3일째 되는 밤, 새로운 여행이 시작되는 기분이다.





이전 03화 나의 치앙마이 이야기 (번외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