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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꼰떼 May 31. 2023

나의 치앙마이 이야기 Day-2

(2023.4.29. 토요일)

눈이 떠진다.     

몇 시지? 이런...아직 새벽 5시다. 그러니까 한국시간으로는 오전 7시다.      

어젯밤 새벽 1시가 넘어 잠들었는데 4시간 밖에 자지 못했다. 암막 커튼으로 창문을 가리긴 했지만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어두운 빛이 아직 해가 뜨지 않음을 알려 준다. 나는 잠을 더 청해 보기로 한다. 근데 쉽게 다시 잠이 들지 않는다. 비상수단으로 유튜브 <나중에 볼 영상>에 담아 뒀던 수면유도 음악과 빗소리 ASMR 등의 힘을 빌려 잠들려 노력한다. 그러나 도무지 잠이 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몸이 개운한 것도 아니다. 여전히 숙면을 취하지 않아 머리가 띵하다. 나는 이불속에서 계속 몸을 뒤척인다.     


그러다 때마침 나의 아침 루틴인 모닝응가가 신호를 보내온다. 

아침에 이 루틴이 빠지면 굉장히 찝찝한데 숙면을 취하지 못한 게 힘들지만 그래도 시작은 좋다고 생각한다. 화장실에서 몸을 가볍게 비우고 나와 다시 침대에 누우니 그제야 짹짹거리는 새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한다. 나는 몸을 다시 일으켜 암막커튼을 열고 테라스로 나가 본다. 혹여나 창문을 여는데 벌레가 들어오지 않을까 잠깐 멈칫하지만 짹짹 소리를 듣고 테라스를 나가지 않을 만큼 감성이 메마르지는 않다.     

어젯밤은 어두워 주변이 어땠는지 몰랐는데 전형적인 초록초록한 치앙마이의 모습이다.

     

비록 숙소는 내 기대보다 못하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만족한다. 치앙마이에서 숙소를 선택할 때 최우선 조건이 도마뱀이 들어오지 않고, 개미가 없을 것, 그리고 늦은 밤 도착할 것이기에 늦게까지 프런트가 운영하는 곳이었다. 그리고 가격은 1박에 최대 5만원선까지 한도를 두었다.      

잠시 나간 테라스에서 오늘 치앙마이가 얼마나 더울지 미리 느낀다. 우리나라의 한여름 아침 같다.      

아직 9시가 되려면 2시간이 남았다. 아직도 잠을 많이 자지 못해 띵한 머리로 컨디션이 나쁘다. 그래서 침대에 다시 몸을 던진다. 어찌어찌 겨우 잠들었나 싶었는데 8시쯤 다시 눈이 떠진다.       

살짝 출출해서 어젯밤 인천공항에서 비상식량으로 샀던 고구마식빵으로 허기진 배를 달랜다.                

그리고는 욕실로 간다. 역시 샤워였다. 몸이 시원하니 잠에서 완전히 깬다. 씻고 나와 화장대 앞에 앉는다. 원래 화장을 잘하지 않는데 여행지에서는 더욱 하기 싫다. 누군가는 더 예쁘게 하고 싶은 순간일 텐데 난 반대로 더 하지 않는다. 평소처럼 선크림만 바르고 눈썹만 그린다. 눈썹을 그릴 때마다 눈썹문신을 할까? 고민한다. 하지만 결론은 문신하면 아플 것 같다는 생각에 늘 포기한다. 그리고 화장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답답해서이다. 남자들이 선크림 바르기 싫어하는 이유가 답답해서라는 말을 들었다. 난 여자인데.. 화장이 답답하다. 그래도 피부건강을 위해 외출 전 선크림은 꼭 바른다.     

그렇게 나름의 메이크업을 마치고 긴 청바지와 블라우스, 그리고 버켄스탁 샌들을 신고 블루누들로 향한다.                

오픈시간인 9시에 맞춰 갔는데 테이블이 이미 만석이다.      

눈을 굴려 앉을자리를 찾다 보니 4인석 테이블에 검은색 옷을 입은 여자가 혼자 있는 게 눈에 들어온다.      

나는 그녀 대각선 맞은편으로 앉는다. 그녀의 국적은 아직 모르겠다.      

이곳은 4년 전 한 번 와봤지만 주문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음식을 만드는 곳으로 가야 할지 그냥 앉아 있으면 되는지, 메뉴판은 어디 있는지.. 뻘쭘하게 잠시 있으니 직원 분이 메뉴판을 주고 가신다. 뭘 먹을까 찬찬히 메뉴판을 본다. 관광지라 영어로 표기되어 있어 보기 편하다.      

뭘 먹지? 8,9번 메뉴가 베스트라고 적혀 있다. 일단 모를 땐 그냥 베스트를 시키면 된다. 근데 면의 굵기를 선택해야 하네.. 어떤 면으로 하지? 살짝 고민하다가 맞은편 여성에게 말을 걸어 보기로 결심한다.               

그녀의 아이폰 케이스와 거기에 끼워진 카드를 보니 한국인으로 추정되어 영어가 부족한 나는 자신감 있게 “한국분이세요”라고 말을 건넨다.      

그녀는 ”맞아요"라며 대답해 준다.      

나는 먼저 먹고 있는 그녀에게 메뉴에 대해 물어본다. 그녀는 친절히 설명해 준다. 나는 그녀의 조언대로 대표메뉴인 8번에 중간 굵기의 면, 사이즈는 작은 것으로 주문한다. 음식을 기다리며 나는 그녀에게 혼자 여행을 왔냐며 가볍게 이야기를 이어 나가 본다.      

동글 동그란 얼굴의 검은색 단발머리, 깨끗한 피부, 선한 인상에 많아야 30대 초반이지 않을까? 어쩜 20대 후반? 속으로 혼자 그녀의 나이를 추측해 본다.     

그녀는 이곳에 며칠 전에 혼자 왔고, 그 유명한 한달살이 중이라고 한다.                

나도 나를 소개한다. 현재는 백수이며 학원에서 관리자로 일을 하다가 1년 전에 퇴사해서 이제 곧 다시 밥벌이의 세계로 뛰어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곤 처음 본 그녀에게 묻지도 않은 나의 이직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으며 우리의 대화는 점점 흥미로워졌다.    

            

나는 그동안 해왔고, 그것도 잘해왔던 일을 계속할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일을 할 것인지 고민이라고 했다.  하지만 새로운 일을 하면 신입이기에 연봉은 한참 낮고, 업무적 지식도 한 없이 부족해 잘할 수 있을지 두려움도 많다고 덧붙여 말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내가 고민 중이었던 새로운 일이 그녀 남편의 업과 매우 밀접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그 일의 업무환경에 대해 조금은 알고 있었다. 너무 신기했다. 그녀는 그 일을 직접적으로 해보진 않았지만 꽤 도움 되는 이야기를 내게 해준다. 

              

그녀는 본인의 업이 일러스트를 그리는 사람이고 그래서 외국에서도 일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우왕!!!!  부럽다! 멋지다!! 아마 많은 이들의 로망이지 않을까?      

디지털 노마드를 실제로 만나 보니 부러울 따름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여러 주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그러다 갑자기 그녀는 본인이 먹고 있는 국수 말고 하나 더 먹고 싶은 메뉴가 있는데 혼자 먹기에는 조금 부담스러워 안 시켰다고 같이 먹는 건 어떻겠냐고 물어본다.      

당연히 예스다. 이런 감사할 때가!     

그런 게 자연스럽게 그녀는 내 대각선 자리에서 맞은편으로 의자를 옮겨 앉는다. 이제 우리는 자연스럽게 합석을 하게 된 거다. 이것이 여행의 묘미 아닐까?      


때론 가까운 사람보다 처음 본 낯선 이에게 마음을 털어놓는 게 편할 때가 있다.      

지금 내가 그녀와의 관계에서 그렇다.      

나의 고민을 털어놓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국에서의 직업이며 나이, 사는 곳을 서로 이야기하게 된다.     

지금 그녀는 서울에 살고, 나는 경기도 하남에 세금을 내며 서울에서 생활을 하는 사람이다.


그러다 고향 이야기도 나왔다. 나는 대구출신, 그녀는 김천출신, 무엇보다 신기했던 것은 그녀의 또 다른 직업이 작가였던 것이다. 글쓰기에 관심 있는 나로서는 이보다 반갑고 신기할 수가 없다.      


그녀는 자신의 필명을 따로 가지고 있다 한다. 하지만 부끄럽다며 말해주길 꺼려해서 나도 애써 묻지 않는다.      

느낌 좋은 사람이다.      

치앙마이의 첫날 이렇게 끌리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니 신기하다.     


하... 근데 영화에서는 이렇게 우연한 만남을 갖게 되면 상대방은 멋진 남자주인공인데...

물론 그녀를 만나 나의 치앙마이 여행은 특별해졌지만, 싱글인 나에겐 그냥 뭐 아~~~~ 주 조금 아쉬움이란 게 찔끔 묻어난다고 할까?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훗날 나는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당신을 만나 브런치에 글을 쓰게 되었다고 말할 것이다.

    

그렇게 치앙마이에 대한 이야기와 한국에서의 일상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니 만석이었던 테이블은 어느새 텅텅 비어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오늘 일정 계획이 있는지 물어본다.      

그녀는 글 쓰는 작업 때문에 치앙마이에 왔고 오늘은 tcdc라는 곳에 갈 계획이라고 한다.      

특별한 계획 없이 숙소를 나온 나였기에 나는 불쑥 이렇게 말한다.   

            

"우와! 저 지금 여행기 쓰고 싶어서 블루투스 키보드 가지고 나왔어요. 괜찮으면 같이 가도 될까요?"                

다행히 그녀는 치앙마이에 온 이후 한국인과 교류한 적이 없어 한국말로 대화를 하는 게 조금 신난다며 나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렇게 우리는 다음 장소도 함께 하기로 결정한 후 계산을 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선다.               

어머!! 

내 가방에 지갑이 없음을 발견한다.

그래서 2시간 전 처음 만난 그녀가 나의 식사까지 계산을 한다. 너무 민망하고 감사하다.

만약 오늘 그녀를 만나지 못했다면 얼마나 당황했을까. 그런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모바일 결제시스템(GLN)으로 하면 되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순간에는 지갑이 없어졌다는 생각으로 당황한 나머지 GNL이 생각나지 않았다.                

나는 숙소에 지갑을 두고 나왔을 것이라 확신하며 블루누들을 나온 우리는 5분 거리인 내가 머무는 호텔로 함께 향했다. 가는 내내 혹시나 숙소에 지갑이 없을까 봐 마음이 불안하기도 했다. 숙소에 들어가자마자 옷장에 넣어 둔 잔스포츠 책가방에서 나의 검은색 지갑이 있음을 확인한다.      

휴~ 다행이다.     


지갑을 들고 그녀와 나는 택시를 불러 목적지인 TCDC로 이동한다.                

TCDC는 치앙마이 최초의 지역 디자인 정보센터이자 도서관이다. 현대적인 디자인에 누구나 이용할 수 있어 소위 디지털 노마드로 불리는 이들이 즐겨 찾는 곳 중에 하나라고 한다.          

택시에서 내린 우리는 도서관으로 들어가지 전에 후식으로 커피를 마시기로 한다. 구글 지도를 검색해서 인근의 분위기 좋은 카페가 있는지 찾아본다. 5분 정도 되는 가까운 거리에 카페가 하나 있다. 그곳으로 가 본다.     

카페 이름은 Looper Co.     

후기를 읽지 않아 기대 없이 방문해서 그런지 생각보다 훨씬 좋은 카페 분위기에 우리 둘은 활짝 웃는다.     

카페는 시원한 에어컨 바람으로 우리를 맞이해 준다.       

보아하니 카페 겸 칵테일바를 함께 운영하는 곳이다. 바 형식의 테이블 외에는 좌석이 거의 없는 여백의 미를 강조하는 인테리어다. 밤에 이곳에서 칵테일을 마시면 단 한 잔으로도 분위기에 취할 것 같은 곳이다.    

아! 단점이 있다. 비싸다.     

그녀와 나는 연신 카페에서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마침 손님이 우리 밖에 없어 카페를 전세 낸 듯 서로의 사진을 찍어 주기도 하고 인테리어 사진을 찍기도 한다.       

그리고는 커피가 나오자 우리는 다시 의자에 앉아 수다 2차전을 시작하고 그제야 서로의 이름을 말한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녀가 자신의 인스타 계정을 알려 준다.

  

와우~~~

팔로잉이 한 명도 없는데 팔로워가 8만명이 넘는다.     

뭐지? 이 분? 셀럽인가? 

내 주변에 이렇게 팔로워가 많은 사람을 본 적이 없는 나는 정말 순수한 마음에 평소 궁금했던 질문 하나를 한다.

"혹시 이렇게 팔로워가 많으면 광고 제의가 많이 들어오나요?

지금 생각하면 당시 이 질문이 그녀에게 얼마나 유치하고 우스꽝스러운 것일까 생각한다.

그녀는 웃으며 제의는 많이 들어오나 본인은 광고를 모두 거절한다고 한다.

그녀의 대답이 그녀를 더 있어 보이게 만든다.

       

우리는 계속해서 쉬지 않고 대화를 이어 나간다.

지금 생각해도 참 신기하다. 처음 만난 그녀와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나는 나의 일에 대해 그녀는 그녀의 일과 가정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그러다 그녀 딸의 사진을 보여주기도 한다. 아직까지 가정을 이루지 않은 나는 그녀의 그런 안정감이 부럽다. 


그녀가 내게 강한 인상을 남긴 이유 중 하나는 우리의 두서없는 대화 도중 그녀는 내게 <아동상담심리>를 하면 잘 어울릴 것 같다고 말해서다.

전혀 생각해보지 않은 직업 분야이지만 그렇다고 완전 동떨어진 분야도 아니기 때문이다.

비록 바닥의 성적으로 졸업했지만 나는 심리학과를 나왔다. 원래 아동학을 전공하려고 했는데 1학년 학부제시절 성적관리를 하지 않아 2순위인 심리학을 전공한 것이다.     

묘하게 신기한 느낌이다.


그렇게 두서없는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원래 목적지인 도서관으로 간다.     

치앙마이는 정말 특이한 매력이 있는 곳이다. 동남아 스러운 느낌 속에 현대적인 감각적인 카페도 많고 여기 도서관도 그렇다. 아마 이런 곳이 서울에 있다면 사람으로 북적거려 이런 느낌을 갖지 못했을 것 같다. 만약 치앙마이에서도 계속 업무를 봐야 하는 사람이 있다면 강추한다.

     

우리는 드디어 애초의 방문 목적대로 책상에 앉아 각자의 작업을 한다.     

그녀는 업으로써의 글쓰기, 나는 취미로써의 글쓰기

각자의 자판을 두드린다.    

그러다 나는 출출함 느껴 시간을 보니 3시가 넘은 시간이다.      

9시에 식사를 했으니 배고픈 게 당연한 시간이다. 

뭐 그리 대단한 일 한다고 배고픔을 느끼며 우린 글을 쓰는 것인가? 사실 당장 접고 밥 먹으러 가고 싶었는데 왠지 그녀가 더 있길 원할 것 같아 난 4시에 일어나자고 말한다. 그녀도 좋다고 했는데 잠시 후 우린 자리를 정리하고 나온다. 아마 둘 다 나가고 싶었는데 서로의 눈치를 봤던 것 같다    

 

이렇게 여행에서 동행이 생기면 예상치 못하게 눈치를 보게 되는 불편함이 있다.     

특히나 혼자 왔기 때문에 각자의 마음대로 움직이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상황이 아마 그녀도 어느 순간 불편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우린 함께 근처에 있는 식당으로 걸음을 옮긴다. 분명 구글지도에는 도보로 6분이라고 나와 있는데 식당이 나타나지 않는다. 우린 길을 헤매고 있다. 너무 더워 오후 12시~4시 사이에는 피신해 있어야 한다고 내게 말했던 그녀였는데 우린 먹기 위해 폭염속을 걷는다.     


그렇게 헤매고 헤메 15분쯤 걸려 식당을 찾는다. 태국음식은 1인분 양이 적다. 평소 많이 먹지 못하는 나의 기준에서도 1인분의 양은 적다. 어떻게 이 작은 양이 1인분일까? 이래서 살찐 사람들이 없는 걸까.. 나름 합리적인 의심을 본다. 우린 쏨땀까지 4개의 메뉴를 주문한다. 

그렇게 다 주문해서 한화 11,000원이다, 참 저렴하다.  동남아에 오면 내가 부자가 된 것 같다. 이 맛에 동남에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닐까?     

쏨땀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이번 식사도 그녀가 계산했다. 난 계속 커피를 계산했다.  


점심식사를 하며 나는 이후 일정으로 마야몰에 가서 왓코루라는 속옷 브랜드 매장에 가야 한다고 한다. 오늘 아니면 갈 시간이 없을 것 같아서다. 4년 전 우연히 왓코루에서 샀던 속옷이 착용감이 편해 언젠가 태국에 다시 가면 꼭 몇 세트를 더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는 이제 피곤해서 숙소로 돌아가야겠다고 한다. 일단 나도 짐을 숙소에 두고 나가기 위해 그녀와 함께 택시를 탄다. 그렇게 그녀의 숙소 앞에서 우린 헤어진다. 서로의 일정에 응원하며 가벼운 포옹으로 마지막 인사를 나눈다. 

언제 다시 기회가 될지 모르지만 나의 치앙마이 시작을 기분 좋게 만들어준 그녀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한국에서 이런저런 잡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했는데 그녀와의 대화로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되어 너무 좋다.  훗날 내 인생이 어떤 길로 흘러갈지 모르겠지만,  왠지 오늘 그녀와의 만남이 내겐 좋은 기회가 되어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든다. 


다시 혼자가 되었다.

숙소에 책과 블루투스 키보드를 내려두고 다시 택시를 잡아 타고 마야몰로 간다.     

나는 2층 속옷 매장으로 곧장 간다. 심플한 것을 좋아하는 나는 무조건 레이스가 없는 스킨톤, 블랙, 그레이 셋 중에 선택한다. 근데 오늘은 그레이를 사러 왔다. 하... 근데 내 사이즈가 많지 않다. 

이런... 내가 왓코루를 좋아하는 이유는 왜소한 내 체형에 맞기 때문인데 태국여자들도 이제 점점 커지는 것인가. 난 직원분에게 내가 원하는 디자인의 그레이톤과 나의 사이즈를 말해 준다. 직원분이 몇 개를 추천해 주신다. 그중에 하나를 탈의실에 가져가서 착용해 본다. 오! 맘에 든다. 한 번에 결정한다. 근데 세트로 살려니 팬티가 나의 사이즈는 다 나가고 없단다. 흠... 태국여자들의 힙 사이즈가 나와 비슷한가 보다. 직원분이 최대한 비슷한 톤으로 가지고 온다. 내가 확 구입의사를 밝히지 않으니 그녀는 계속해서 비슷한 톤을 찾아 가지고 온다. 사실 세트로  사고 싶었는데 그녀가 너무 열심히 일을 해서 결국 그냥 세트다라고 생각하고 얼추 비슷한 색상으로 맞춰 산다.     


그렇게 마야몰에 들어간 지 20분 정도 지난 후 나는 다시 숙소로 돌아갈 택시를 탄다.

숙소에 도착하니 6시가 넘었다. 4시쯤 점심을 먹었기 때문에 저녁을 먹기에도 애매하다. 무엇보다 더위를 먹었는지 입맛이 없다. 뭔가 시원한 게 필요해 숙소 근처를 어슬렁거리다 생과일주스 가게를 발견해 수박주스를 주문한다. 그냥 주스가게 인지 알았는데 주문을 기다리며 곁눈질을 하니 식사도 파는 곳이다.     

혹시나 난 배가 고프면 나와서 먹으려고 몇 시까지 하는지 영업시간을 물어본다. 저녁 9시까지 라고 한다. 

오케이!! 접수!!     

주문한 수박주스를 한 모금 마시는 좀 살 것 같다.     

어젯밤 늦게 숙소에 도착하고 오늘은 도서관을 간다고 숙소 주변을 구경하지 못해 주스를 마시며 조금 걷는데 해가 지려 한다.      

나는 숙소로 들어가야겠다고 판단한다. 나의 혼자 여행에는 거의 야경이 없다. 겁이 많아 해가 지기 전에 숙소로 귀가 본능이 발동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혼자 여행하는 여자들이 야경구경한다고 거리를 걷고 클럽과 바를 가는 것을 보면 진짜 대단하다. 내겐 없는 그녀들의 용기가 부럽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일밤에 아이슬란드 여행을 함께 동행했던 동생이 이곳으로 온다.     

치앙마이 여행은 동생이 이미 몇 개월 전에 계획했던 일이다. 근데 어쩌다 보니 내가 먼저 이곳에 왔지만, 실상은 내가 따라온 거나 다름없다. 숙소는 동생과 따로 잡았지만 같은 콘도다. 그것도 내가 따라잡았다.     

귀찮아하면 어떡하지.. 조심스럽지만 그냥 눈 딱 감고 따라붙기로 한다.     

내일 밤부터는 P인 나와 J인 동생과의 일정이 기다리고 있다.


숙소로 돌아와 친구와 통화를 하다 보니 어느새 밤 10시 30분이다.    

아... 책 읽으려고 2권이나 가져왔는데 한 권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다.

일단 나는 내일의 컨디션을 위해 씻고 바로 잠을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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