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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꼰떼 Jun 06. 2023

나의 치앙마이 이야기 Day-3 (2부)

(2023.4.30 일요일)

동생과 나는 작년 11월 아이슬란드 여행을 위해 동행 구하는 인터넷 카페를 통해 알게 되었다.

우린 사전모임을 위해 10월 초 한 번 만났고 그 뒤 인천공항에서 재회 후 먼 이국땅 아이슬란드에서 2주간 부대끼며 함께 지냈다.


여행지에서의 시간은 일상에서의 시간과 다르게 흐른다. 그것은 경우에 따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긴 시간이 되기도 하며 그로 인해 급속도로 가까워지기도 한다. 그런 특이성이 있는 상황 속에 2주라는 시간은 개인의 성격과 식성, 작은 생활 습관까지 알게 하였다. 아침에는 퉁퉁 부어 있는 민낯과 부스스한 머리 그리고 집에서 입는 후줄근한 옷까지 모두 여과 없이 보여주게 된다.


아침에는 예민하여 건드리면 안 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요리에 지나치게 진심인 사람도 있다. 그리고 도대체 뭘 하는지 모르겠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서로 모르는 4명의 여행자들이 2주간의 합숙 아닌 합숙을 통해 서로를 알아갔다.

그곳에서 동생과 내가 친해졌는지는 모르겠다. 내 개인적인 생각은 편해진 것은 맞지만 친하다고 말 하기엔 무언가 거리감이 남아 있다. 이 거리감은 성별의 차이에서 오는 것인지, 나이 차이에서 오는 것인지 아님 그냥 나라는 사람에 대해 그가 불편을 느껴서 나오는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사람마다 관계의 속도는 다르다. 비단 성별을 떠나 친구관계에서도 그렇지 않은가. 그냥 나는 치앙마이를 여행하고 싶고 동생은 재미있으니 그걸로 된 거다. 가볍게 생각하자.


언젠가 <나의 아이슬란드 이야기>도 글로 남겨 보고 싶지만 치앙마이처럼 쓰기는 어려울 것 같다. 왜냐하면 4명이서 함께 한 여행이었지만 현재는 3명만이 만남을 유지하고 있다. 단톡방을 나간 1명과는 어려운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글이 매우 조심스럽다. 그래서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야 결정하지 못했다.  


자! 이제 치앙마이로 다시 이야기를 넘어가 보자.

그리고 아이슬란드 여행을 통해 만난 동생은 앞으로 편의상 H라 칭하겠다.


H는 예상보다 조금 늦게 도착했다. 선데이마켓이 12시까지 하기 때문에 우린 서둘러 택시를 타고 타패게이트로 출발한다.

우리가 도착한 11시 20분에는 이미 대부분의 상인들이 짐을 챙겨 떠나고 있었다. 아쉬운 마음에 H와 나는 조금이라도 뭔가 마켓의 분위기를 느끼지 않을까 싶어 올드타운을 걷는다. 하지만 이내 철수하는 모습들만 보여 금세 흥이 깨져 버린다. 우린 그냥 마켓에 대한 기대는 버리고 타패게이트 앞으로 가서 인증샷을 찍기 시작한다.

똥손인 나는 타인의 사진을 찍어 줄 때면 조금 긴장이 된다. 특히 상대방이 사진을 잘 찍으면 잘 찍을수록 그렇다. 내가 너무 못 찍으니 미안한 마음이 들어 한번 찍어 줄 때 수십 장을 찍어 준다.

하지만 H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크게 들지 않는다.

인증샷을 찍은 후 H와 나는 숙소로 바로 들어가기 아쉬워 타패게이드 주변의 펍을 가기로 한다.

그런데 복병을 만났다. 주변의 펍들이 죄다 12시에 영업을 종료한단다. 우린 급히 구글맵을 통해 늦게까지 오픈하는 펍을 찾지만 나오지 않는다.

나 같으면 그냥 포기하고 숙소로 발길을 돌리겠지만 조금 전 치앙마이에 도착한 H는 포기할 수 없나 보다. 그는 맥주 한잔이 간절했다. 결국 간절한 자가 이긴다고 했던가? 어느 순간 H는 구글 지도 따위는 더 이상 의지하지 않고 무작정 골목으로 누빈다. 나는 그의 집념의 뒤통수에 의지하며 뒤따라 걷는다. 그러다 그는 한 펍에서 발길을 멈춘다. 외부에서 보았을 땐 바 테이블에 손님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4~5명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 모습에 H는 먼저 슬그머니 문을 열고 가게 안으로 들어간다. 차가운 에어컨 바람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주인인지 직원인지 알 수 없는 사람이 우리에게 다가오자 H는 영업을 하는지 물어본다. 그는 우리에게 주류는 판매할 수 있지만 음식(안주)은 판매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차선책이 없기 때문에 우린 그래도 좋다며 창가에 있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보아하니 바에 앉아 있는 사람들도 손님은 아닌 것 같았다. 직원으로 보인다. 우리의 추측상 그들은 영업을 끝내고 회식하는 느낌이다. 우린 그들의 회식 덕분에 꼽사리로 끼어 맥주 한잔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H와 나는 가볍게 맥주 한 병씩 주문한다. 맥주잔의 아래에는 얼음이 얼려있다.

차가운 맥주에 차가운 잔, 그리고 인위적이지만 시원한 에어컨 바람, 그리고 큰 음악소리와 적당한 사람들의 소음, 적당히 어두운 조명까지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기에는 나쁘지 않은 장소이다. 그리고 나는 하루 종일 혼자였다 보니 말벗이 생겨 그저 신이 났다.

     

H는 동생이지만 친구 같은 느낌이다. 아마 아이슬란드에서 어쩌다 보니 그가 우리 4명의 실질적인 리더 역할을 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MBTI를 신봉하는 것은 아니지만, 당시 여행에서 나를 포함 P 2명과 H를 포함 J2명이 있었다. 흥미로운 게 정말 P 2명은 딱히 특별한 계획을 세우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J들이 주도적으로 일정을 관리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P들이 그들이 세운 일정에 불만이 있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P들은 그냥 아무 생각이 없었다.(P들이라고 복수형을 칭하기엔 다른 P의 생각이 어땠는지 몰라 조심스럽긴 하다.)

  

나는 H에게 내일의 계획이 뭔지 물어본다. 그는 한국에서 검색했을 때 가고 싶은 음식점이 2군데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내일은 그곳과 마사지, 그리고 저녁에는 도이수텝 야경보기, 딱 이렇게 3가지만 하면 된다고 한다. 특별히 먹고 싶은 음식이 있었던 게 아니기 때문에 메뉴 고민을 하지 않게 만들어 줘서 좋다. 그리고 태국에 왔으면 1일 1 마사지 아닌가! 도이수텝에서 야경은 지난번에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말한 일정이 나는 다 마음에 들었다.


각자 한 잔씩을 비우고 아쉬움이 남아 맥주 1병을 추가로 주문하면서 직원분에게 몇 시까지 영업을 하는지 물어보았다. 새벽 2시까지 영업을 한단다. 뭐지? 구글지도에도 이곳의 영업시간은 자정까지로 되어 있다.

그리고 우리가 이곳에 들어온 이후 더 이상 새로 들어오는 손님은 없었다. 그가 말한 새벽 2시는 그들의 회식이 종료되는 시간일까?

     

H는 어릴 때 친구와 동남아를 배낭 여행한 일화를 들려줬다. 돈이 없이 고생한 일들이 태반이지만 생각해 보면 그때만이 할 수 있는 무모하고 재미있는 일들이다.

지금은 추억이 되어 웃으며 타인에게 말할 수 있는 경험들. 나 역시 어릴 때 여행을 생각하면 돈이 없어 고생하고 아찔했으며 어이없는 일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일들도 시간이 흐르면 추억으로 미화되기도 하고 혹은 기억 속에 삭제하기도 한다. 미화된 기억은 더욱 미화되어 추억과 그리움이라는 단어로 포장된다.


우린 추가로 주문한 맥주 한 병을 마저 마시고 자리를 뜬다.

술을 좋아하는 H는 알코올이 부족해서 추가로 술을 사서 숙소로 들어가고 싶어 했지만 태국은 12시 이후에는 주류를 판매하지 않는다. 그래서 펍도 공식적으로는 12시까지 영업을 하는가 보다.

     

우린 그랩을 타고 숙소인 콘도에 도착했다. H와는 성별이 다르기에 방을 다르게 잡았다.

솔직히 아이슬란드에서 숙소를 같이 사용한 경험이 있다 보니 (물론 각자의 방을 사용했다.) 그와는 경비를 절감하기 위해 같은 숙소를 사용해도 될 것 같았는데 H가 불편해할까 봐 그런 제안은 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에는 H와 나 둘만 탔다. 7층에 방이 있는 H가 먼저 내렸다.

잠시 후 엘리베이터 문이 열려 이번엔 내가 내렸다. 그런데 내가 내릴 때 백인 남성 한 명이 탔다. 우린 가볍게 눈인사를 했다. 그는 20대 후반쯤으로 보였다. 나는 복도로 들어가 1506호 내 방을 찾는데 '어라' 11층인 것이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을 때 살짝 취기가 올라온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당연히 15층이라 생각하여 층수를 확인하지 않고 내린 것이다.  나는 다시 엘리베리터를 타고 15층으로 올라간다. 문이 열려 내리는데 아까 마주친 백인 남성을 다시 만났다. 뭐지? 이 분도 나처럼 잘못 내렸나? 나는 괜히 11층에 잘못 내린 게 들킨 것 같아 머쓱해서 가볍게 웃는다. 그런데 그 순간 백인남성이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냐며 묻는 것이다.

'뭐야.. 이 사람... 무섭게..'   

나는 내가 잘못 알아 들었나 싶어 재차 그에게 묻는다. 그 남성은 연신 토일렛만 외쳐댄다.

'나보고 어쩌라는 거지?'

모르는 사람을 그것도 성인남성을 자정이 한참 지난 시간에 숙소 안에 데리고 간다고? 대체 거기서 무슨 일이 생길 줄 알고... 이런 말도 안 되는 그의 요구가 너무 당황스럽고 무서워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머리가 하얗게 되었다.


사람이 너무 놀라거나 무서우면 말문이 막힌다.      

20대 초반 딱 한번 그런 순간을 경험한 적이 있다. 감사하게도 결과적으로 아무 일 없이 넘어갔지만 분명 비명을 질러야 하는 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아니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말문이 막혀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숨만 드려 마셨던 기억이 난다.      


지금이 딱 그런 느낌이다. 너무 무섭다. 늦은 밤이라 이곳에 사람이 지나갈 일은 거의 없을 것이고 괜히 소리를 질렀다가는 그를 당황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렇다고 안된다고 하면 그를 화나게 만들까 봐 조심스러웠다.  늦은 밤 처음 본 성인이 화장실을 이용하자고 말을 거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가? 나의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기에 모든 것이 조심스러웠다. 혹여나 그가 약을 했을 수도 있지 않은가. 사람이 가장 무섭다. 그것도 정신이 온전치 않은 사람이.


일단 나는 그와 거리를 두며 조심스럽게 내 객실 쪽으로 데려간다. 카드키를 대고 문을 열어 주니 그는 곧장 화장실로 향한다. 그리고 나는 객실 문을 열어 놓은 상태로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멀찌감치 떨어져 복도 한가운데 서 있는다. 그의 화장실 이용하는 소리가 복도에 서 있는 내게도 들린다. 황당하면서도 무서웠다.

순간 아래층에 있는 H가 떠올랐다.

'잠깐만 1506호로 와줄래?'     

나는 H에게 단답형으로 지금의 상황을 톡으로 알렸다. 그 사이 백인 남성이 화장실에서 나왔다. 그는 머쓱해하며 고맙다고 인사하고는 내 객실에서 나간다. 나는 다시 H에게 연락해 그가 갔다고 올라오지 않아도 된다고 톡을 보냈다.


하.... 정말 식겁했다. H에게는 별일 아니라는 듯 톡을 보냈지만 사실은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문을 닫고 한 동안은 그 외국인이 다시 올까 긴장되었다.


누군가는 이 일이 나처럼 무섭고 놀랄 수도 있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별일도 아닌데 호들갑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나는 겁이 많은 편이다. 그것도 사람에 대한 겁이 많다. 그러다 보니 내 기준에서 경계심을 푸는 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웬만하면 이런 모습은 들키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살아왔다.

내가 원래 이런 성향인 것인지 아니면 20대 초 내게 겪은 일이 이렇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일상 속에서 별다른 문제도 없고, 친구와의 관계도 직장에서도 문제없이 잘 지낸다.(모두 내 기준에서다.) 하물며 혼자 여행도 잘 다닌다. 하지만 아주 가끔씩 내면에서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느껴질 때면 심리상담에 대한 필요성을 생각하게 된다.


그나저나 그 백인남성의 정체가 궁금하다.     

그는 늦은 밤 1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왜 거기서 탔을까? 나처럼 잘못 내린 건가?  여기는 콘도라 펍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도무지 모르겠다.


그래도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니 자연스럽게 두려웠던 마음이 사라진다. 무엇보다 아래층에 아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아.. 피곤하다.      

빠르게 씻고 침대로 가서 혹시나 개미가 있지는 않을까 침구를 드려다 본다. 하지만 자세히는 안 본다. 차라리 모르는 게 약이라고 대충 살펴보고 침대에 눕는다.     

이렇게 오늘 하루가 마무리된다.     

H와는 내일 1층 로비에서 12시에 만나기로 약속했다. 그동안의 수면 패턴으로 보면 나는 내일도 오전 7시쯤 일어날 것이다. 그럼 아침식사로 콘도 맞은편에 있는 로컬식당에 가서 고기 국수를 먹고 커피 한잔을 마시며 H를 기다리면 되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곤 눈을 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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