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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꼰떼 Nov 08. 2023

나의 치앙마이 이야기 Day-5 (1부)

(2023.5.2 화요일)

짧은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오늘은 숙소를 옮겨야 한다.

어젯밤 잠이 들 때까지만 해도 오늘 일정에 대해서는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흠... 역시 나는 P다.

일단 11시 체크아웃이니까 그즈음 숙소를 나가면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만 해놓았다.


9시 기상알람을 맞춰 놓았지만 눈이 7시가 채 되지도 않았는데 떠진다.

정말... 2시간의 시차가 이렇게 큰 것인가?

나는 이불속에서 몸을 뒤척이며 오늘의 일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한다.


그전에 어제 말한 H의 일정을 생각해 본다.

그의 오늘 하고 싶은 일이 개인적인 볼 일이 있어 우체국 가기, 카오소이에서 국수 먹기, 마사지받기 이렇게 세 가지라고 했다.

그런데 어제 도이수텝에서 만난 한국인 남자분이 본인이 이틀 연속 카오소이를 갔는데 1시쯤에 갔을 때는 사람이 많아 줄이 길었고, 2시 이후에 갔을 때는 괜찮았다며 참고하라고 했다.

그래서 H와 나는 2시쯤 카오소이 도착이라는 큰 틀 만같이 정한 상태였다.


이제 숙소이동에 대해 생각해 보자.

옮길 려고 하는 호텔 체크인 시간은 2시부터다. 그런데 지금은 8시도 되지 않은 시간이다. 숙박비는 1박에 44,000원 정도이다.

잠도 자지 않고 당일 저녁 8시 반쯤 체크아웃을 하기에는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만, 비행기 타기 전 편하게 있고 싶다. 또 숙소비를 아낀다고 카페나 음식점, 마사지 등에 돈을 쓰게 되면 그 돈이 그 돈일 것 같아서 어젯밤 급히 예약했다.

그런데 사실 이 모든 이유는 핑계다.

뒤늦게 유튜브에서 본 이곳 호텔후기가 좋아 가고 싶은 마음에 지른 것이다. 가보고 좋으면 다음에 길게 예약해야겠다는 나름의 답사 같은 합리화 아닌 합리화로 나를 설득시켰다.


혹시나 얼리 체크인이 안되면 옮긴 숙소에 짐을 맡기고 카오소이라는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거리를 좀 걷다가 마사지를 받은 후 2시에 체크인 시간에 맞춰서 쉬러 들어가면 될 것 같다는 계획을 세웠다. 나름 완벽하다.

하지만 이렇게 할 경우 H와는 오늘 일정을 함께 할 수 없게 된다. 어차피 한국 가서 만나겠지만 그래서 살짝 아쉬움이 남지만 일정이 꼬여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이렇게 나름의 오늘 일정을 계획하고 어제 마신 맥주값 8,000원을 동생에서 카카오페이로 보낸다.

여행에서 돈 계산은 중요하다. 특히 물가가 저렴한 나라일수록 더 그렇다. 깔끔하게 더치페이를 하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

H에게 카카오페이를 보내고 오늘 나의 일정을 톡으로 보내려고 하는데 어라?! H에게서 바로 답장이 온다. 그도 일찍 눈이 떠졌단다.

나는 ㅋㅋㅋ를 연신 남발한다.

역시 2시간의 시차에 H도 어쩔 수가 없구나.

그도 나처럼 더 자고 싶은데 정신이 너무 멀쩡하단다.

그러면서 H가 먼저 오늘 일정을 일찍 시작해도 될 것 같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카오소이에 10시에 가는 건 어떻겠냐고 물어본다.

H는 10시에는 본인이 기분이 안 좋을 것 같다고 11시에 보자고 한다.

나는 또 연신 ㅋㅋㅋ를 남발한다.

그의 말이 나를 웃기려고 한 것이 아님을 알기에 더욱 웃겼다. 진지함이 웃겼다.

아이슬란드 여행 때부터 본인은 아침에는 예민하다고 말해 왔다.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을 처음 봤기 때문에 웃겼다. 내게 H는 재미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우리는 각자 아침시간을 보내다 11시에 카오소이 식당 앞에서 보기로 한다.


이로써 진짜 나의 오늘 첫 번째 일정이자 미션이 정해졌다.

9시쯤에는 지금 머물고 있는 콘도에서 체크아웃하고 호텔로 옮겨 얼리체크인이 가능한지 확인하는 것.


치앙마이는 저렴한 가격에 다양하고 좋은 숙소가 많아 숙소를 옮기는 재미도 있다. 하지만 매번 캐리어를 옮겨야 한다는 게 귀찮다. 이 귀찮은 짓을 나는 또 해야 한다.

소파에 어제 읽고 널브러진 책을 챙기려고 들었는데 으악!! 개미가 몇 마리 붙어 있다.

뭐지? 주변을 보니 어제 로띠를 담은 비닐봉지가 소파 위에 있었는데 그 비닐에 달콤한 무언가가 붙어 있었나 보다. 자세히 보니 불투명한 비닐봉지에 개미가 바글바글하게 붙어 있다.

으악!!! 너무 징그러워!!!

엄지와 검지 손 끝으로 비닐봉지를 겨우 들어 쓰레기통으로 옮기려는데 바글바글 붙은 개미가 너무 징그러운 나머지 비닐봉지를 그만 거실 바닥에 떨어트리고 만다.

청소하실 분에게는 너무 죄송하지만 나의 한계는 여기까지다. 도저히 더 이상 건드릴 수가 없다. 개미가 내 몸을 타고 올라올 것만 같은 상상에 나는 얼음이 되고 만다.

지금부터 나는 개미떼들로부터 나의 물품들을 구해야 한다.

누군가는 겨우 개미에 호들갑이냐 할 수 있겠지만 나는 바퀴벌레만큼 개미가 싫다.

대체 누가 이 좋은 고층 콘도에서 (여긴 창클란에 있는 샹그릴라호텔 바로 옆에 있는 고급 콘도다. 그것도 현대식의 콘도) 개미떼의 공격을 당할 것이라고 상상이나 했겠나.

더워서 거실 테이블에 있는 에어컨의 리모컨을 드는데 거기도 개미들이 바글바글 붙어있다. 개미가 많아도 너무 많다. 도대체 리모컨에는 왜 개미들이 붙어 있지? 결국 난 에어컨을 포기한다. 개미로 덮여 있는 리모컨을 건드릴 자신이 없다.


샤워도 하기 싫어진다. 어차피 오늘밤 비행기 타기 전 숙소에서 씻고 탈 것이기 때문에 아침샤워는 건너뛴다.

나의 피부는 건성이라 하루 두 번 샤워는 오히려 피부에 해롭다며 나름 합리화한다. 지금 당장의 나의 미션은 숙소이동에서 개미들로부터 벗어나는 것으로 바뀌었다.

캐리어에 나의 물건을 담을 때마다 개미가 붙었는지 매의 눈으로 검열한다.

나름 검사를 한다고 했는데 완벽하게 했는지 모르겠다. 한국 나의 집까지 개미를 데리고 가는 것은 아닌지 불안한 상상이 머릿속을 점령한다. 하지만 이내 상상을 멈추고 짐을 정리한다.

냉장고에는 어제 먹다 남긴 로띠가 있어 쓰레기통에 버려야 했는데 그럼 개미들이 더욱 바글거려 청소에 문제가 될 것 같아 그냥 냉장고 속에 둔다. 부디 청소하시는 분이 나의 깊은 뜻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개미 때문에 사 온 과자도 뜯어보지 못하고 냉장고 속에 그래도 두었다.

그렇게 개미와의 전쟁에서 서둘어 짐을 챙기고 1506호를 탈출했다.


그랩을 잡는다.

그리곤 예약했던 부띠끄 호텔로 간다. 프런트에는 주인으로 보이는 남자분이 나를 반갑게 맞아 주신다.

역시 미소의 나라 태국이다. 그의 편한 미소가 조금 전 개미와의 전쟁을 잊게 만든다.

나는 혹시 지금 체크인이 가능한지 조심스레 묻는다. 9시 반쯤 된 시간이다. 거절을 생각하고 물었는데 감사하게도 그는 가능하다며 싱긋 웃으신다. 역시 태국은 부띠끄호텔이지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나보고 조식도 된다고 하신다. 비록 마당 쪽에 차려진 조식 종류가 부실하긴 하나 그의 마음과 친절함에 감동한다. 다음에 치앙마이로 오면 꼭 다시 이곳에 머물러야지라고 생각하며 결제 카드를 내민다.


예약 당시 결제를 호텔에서 하는 것으로만 설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주인분께서 카드 결제는 받지 않는다고 하신다. 하지만 지금 나는 환전한 현금은 거의 사용했다. 게다가 모바일로 스캔해서 결제하는 어플(GNL)은 한국에서의 오류로 갑자기 사용이 되지 않는다. 나는 그에서 지금 당장 결제를 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 설명한다. 당황하는 나에게 그는 나중에 결제해 달라고 쿨하게 말한다.

세상에... 이렇게 감동적 일 수가...


덧붙여 체크인을 하며 나는 오늘밤 9시쯤 체크아웃을 해야 한다고 말씀드린다. 혹시나 그 시간에 프런트에 사람이 없을까 봐 미리 말씀드렸다. 그리고는 오늘 떠나게 되어 너무 아쉽다고, 이 숙소를 늦게 검색에서 발견하여 마지막날 짧게 머무른다며 아쉬움을 숨기지 않고 말했다.


그는 내가 머무를 방으로 안내한다.

1층의 12호실

우왕!!

혼자 사용하기엔, 그리고 1박을 다 채우지 못하고 가는 게 더 아쉬울 만큼 쾌적하고 넓다.

그리고 트윈베드 2개가 나를 반갑게 맞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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