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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꼰떼 Nov 15. 2023

나의 치앙마이 이야기 Day-5 (3부)

(2023.5.2.화요일)

이제 혼자가 되었다.

오늘밤 9시까지 공항에 도착한다고 가정했을 때 내게는 5시간 30분이 남아있다.

무엇을 할까 잠시 고민하다 숙소로 돌아가기로 결정한다. 남은 시간은 오롯이 숙소에서 휴식을 취하며 보내고 싶다. 숙소로 돌아온 나는 한동안 멍하니 있는다. 짧은 여행이었지만 지나 온 시간을 되돌아본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뭘까?

그건 생각할 것도 없이 첫날 계획에 없던 그녀를 만나 동행했던 일이다.

나는 그녀 덕분에 지금까지 브런치에 글을 남기고 있다. 물론 그녀는 모를 것이다. 자신이 내게 준 영향력을. 

그녀는 서울에 살고 있다고 했다. 언젠가 그녀에게 연락을 해서 감사한 마음을 표현할 날이 왔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번 여행은 내게 어떤 의미로 남을까?

항상 알고는 있지만 실천은 하지 못했던 기록의 중요성과 나를 알릴 수 있는 SNS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첫날 동행한 그녀가 자기를 소개할 때 자신의 SNS를 알려 줬다. (물론 이것도 처음에는 밝히려 하지 않았다.)

그때 나는 자신을 소개하는 수십 가지 단어나 말, 명함보다 SNS계정 하나가 더 효과적임을 알았다.


물론 아이슬란드 여행을 통해 알게 된 H와의 시간도 즐거웠지만 역시 첫날 그녀와의 동행이 나의 치앙마이 여행이 준 가장 큰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숙소에서는 특별한 일 없이 보냈다.

숙소 맞은편 피자가게에서 1인용 피자를 포장해 숙소 마당 벤치에 앉아 먹는다. 실외지만 참을 수 있을 정도의 더위다.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 일상 중에는 새로운 직장이 기다리고 있다. 10년 만에 새로운 직장으로 출근하는 것이다. 설렘도 있지만 두려움이 더 크다.

이런 생각을 하니 아직 몸은 치앙마이에 있지만 서울에 도착한 것 같아 중단한다.


배부르게 피자를 먹은 후 샤워를 한다. 밤 비행기라 미리 씻고 출발해야 찝찝하지 않다.

이 좋은 숙소에서 한 번 밖에 씻을 수 없다니.. 그리고 잠도 잘 수 없다 생각하니 괜히 억울해진다.

샤워 후 머리를 바싹 말리고 침대에 대자로 눕는다. 하얗고 뽀송한 침구의 촉감이 좋다.

으앙! 가기 싫어!

하지만 돌아갈 시간은 점점 다가온다. 어느덧 해가 저물어 어두워졌다.

나는 캐리어에 짐을 다시 정리한다. 기내용 캐리어라 아담하다. 아담한 캐리어에 치앙마이에 대한 추억도 같이 담아 넣는다. 부디 이곳에서의 추억과 나의 결심들이 한국까지 잘 이어갔으면 좋겠다.


이윽고 진짜 숙소에서도 떠날 시간이 되었다. 나는 그랩으로 공항까지 가는 택시를 부른다.

방을 나서니 이미 호텔 주인분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는 나의 캐리어를 차에 실어 주신다. 화려한 호텔은 아니지만 따뜻한 주인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곳이라 정이 간다. 다음에 이곳에 온다면 꼭 다시 와야겠다.


호텔을 떠나기 직전 주인에게 내가 이곳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되었던 유튜브 영상을 찾아 보여 준다. 그는 신기해하며 좋아한다. 그의 반응에 내가 만든 영상이 아님에도 괜히 뿌듯해진다. 보여주길 잘했다. 그는 내게 꼭 다음에 다시 오라며 택시를 타고 떠나는 내게 손을 흔들어준다.


치앙마이 공항이 작은 것을 알지만 성격상 여유 있게 도착한다. 비행기가 출발하려면 아직 시간이 꽤 남아 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게 딱히 없다. 현금이 조금 남아 마사지나 할까 했지만 이미 풀부킹이다. 남은 현금을 탕진하려고 했는데 실패다. 그래도 괜찮다. 덕분에 절약하게 되었으니 남은 현금은 다음에 왔을 때 쓰자고 생각한다. 


비행기 탑승에는 아직 1시간이 남았다. 

도저히 할 일이 없다. 일단 휴대폰을 본다. 아직 배터리가 여유 있지만 보조배터리가 없다. 비행시간을 고려해 충전하면서 사용하고 싶어 진다. 주변에 충전이 가능한 곳이 있는지 찾아본다. 역시 사람은 비슷한 생각을 한다고 모든 콘센트가 충전 중이다. 그러다 내 눈에 콘센트 하나가 들어왔다. 남자 화장실 앞이다. 내가 남자였다면 아무렇지 않겠지만 나는 여자다. 충전할까 말까 고민한다. 하지만 고민도 잠시 바로 충전기를 꽂는다. 

대신 나도 그렇지만 화장실을 왔다 갔다 하는 남자들이 당황해하지 않게 하기 위해 나름 배려의 차원으로 등을 돌려 서 있는다. 그렇게 하니 출입하는 남자들과 얼굴이 마주치지 않는다. 

이제 휴대폰 배터리 충전까지 확보되니 마음이 든든해진다. 역시 폰 없이 살 수 없는 현대인이다. 

휴대폰에 다운로드해 온 넷플릭스 영화나 유튜브 영상이 있지만 끌리지 않는다. 

대신 휴대폰 메모장을 연다. 그리고 오늘 하루를 생각나는 대로 기록하기 시작한다. 자세는 불편하지만 그래도 시간이 잘 흐른다. 나름 몰입하며 기록하다 보니 어느덧 비행기에 탑승할 시간이다.

나는 서둘러 짐을 챙겨 비행기에 탑승한다. 


돌아갈 때도 제주항공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운이 좋아 3열 좌석에 나만 홀로 앉는다. 

눕코노미에 당첨된 것이다. 이코노미 승객에게 눕코노미는 최고의 행운이다. 

신이 나서 사진을 찍어 H에게 자랑한다. 

H는 온 지구가 나의 귀국을 도왔다며 축하해 준다. 

나는 이륙 후 비행기가 안정권에 들어가자마자 좌석 3칸에 몸을 눕혔다. 키가 작아 다리를 거의 펼 수 있다. 이럴 때는 작고 왜소한 몸이 장점이 된다. 그리고 머플러를 이불처럼 덥는다. 눈을 감는다. 

이로써 나의 치앙마이 여행이 완전히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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