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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꼰떼 Nov 15. 2023

나의 치앙마이 이야기 Day-5 (2부)

(2023.5.2 화요일)

내가 머무를 12호실에 짐을 옮긴 후 시계를 본다. 10시가 다 되어간다.

H와 만나기로 한 약속 시간이 1시간 밖에 남지 않았다.

택시를 타고 가면 약속한 장소에 금방 도착하겠지만 걷고 싶다. 원래 걷는 것을 좋아 하지만 떠나는 아쉬움에 더 걷고 싶어 진다.


구글지도를 통해 목적지까지 걸으면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는지 확인해 본다. 

대략 50분쯤 소요된다고 나온다.

그렇다면 실제 시간은 40분~45분 정도 걸리지 않을까?

지금 이곳의 기온은 30도가 훨씬 넘는 1년 중 가장 더운 날씨지만 나는 걷기로 결심한다.


아울러 숙소에서 출발하며 목적지로 가는 길에 환전소가 있는지도 체크한다. 아직 지불하지 않은 숙소비를 위해 현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오! 다행히 가는 길에 환전소가 위치해 있다. 완벽하다.


여행의 마지막 날이라 걸으며 최대한 치앙마이를 눈에 담기 위해 노력한다.

가끔 한국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사진 찍는 보면 '왜 저기를 찍고 있을까? 의아해하면서도 재미있게 보는 경우가 있었다. 아마 지금 내가 사진 찍고 있는 모습이 이곳 현지인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을까?

외국인들만의 시선이 있는 것이다. 굳이 특별한 것 없는 골목이지만 외국인의 눈에는 모든 것이 특별해 보인다.


땡볕 속을 조금 더 걸어가니 오아시스처럼 환전소가 나타난다. 마치 내게 더우니까 에어컨 바람 좀 쐬고 쉬어가라고 속삭이는 것 같다.

한국 돈으로 무려 8만원을 환전한다.

숙박비 1,100바트와 마지막날이라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싶은 마음에 아낌없이 환전한다. 그래봤자 숙소비를 제외하면 대략 3~4만원 남겠지만 동남아에서 이 돈이면 큰돈이다. 이것이 단연 동남아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나는 두둑이 현금을 챙기고 다시 햇볕 속으로 다시 들어간다.


흔히 하는 표현으로 떠날려니 도시가 달리 보인다. 

역시 사람은 옆에 있을 때 소중함을 알기 어렵다. 사람이든 여행이든 내 곁을 떠나고 나서야 아쉬움에 소중함을 깨닫는다. 지금 나의 아쉬움은 무엇 때문인지 생각한다.


H와의 동행은 즐거웠다. 비록 생각보다는 더 친해지지 않아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도 즐거웠다.

이미 한 번의 동행 경험으로 서로의 성향을 알고 있어 그런가?

우리 둘의 성격은 극과 극이다. MBTI를 맹신하는 것은 아니지만 MBTI에서 겹치는 것이 하나도 없다. 

너무 다르기 때문에 오히려 재미있었나? 아니면 서로가 다름을 이미 알기에 나도 그렇지만 그 역시 나를 배려했기 때문이 아닐까? 덕분에 많이 웃는 여행이 되었다. 


잡생각을 하다 보니 약속장소인 카오소이에 도착했다.

H는 아직 도착 전이다. 그를 기다렸다 같이 들어갈까 고민하지만 이내 웨이팅이 생길까 봐 먼저 식당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전형적인 로컬식당 분위기다.

인테리어라는 단어를 쓰기가 무색할 정도로 특별할 것 없는 분위기에 오픈형 주방으로 되어있다.

한국에서도 예쁜 카페보다는 노포 같은 식당을 좋아하는 내게 더없이 좋은 장소이다.


테이블에 착석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밖에서 오토바이에서 내리는 H가 보인다.

그는 볼트엡(Bolt)으로 오토바이를 불렀다고 한다. 

볼트앱으로 부르는 게 가격이 저 저렴하다고 한다.

우린 가볍게 인사하고 바로 메뉴 선정에 돌입한다.

남들은 뭐 먹지? 블로그 후기와 실제 지금 사람들이 먹고 있는 메뉴가 무엇인지 주변 테이블을 두리번 거린다.


우린 둘 다 카오소이 맛집답게 취향에 맞춰 1인 1 카오소이와 그것으로 양이 부족할 것 같아 고기국수를 하나 더 주문한다.

대부분 공감하겠지만 태국은 1인분의 양이 너무 적다. 평소 많이 먹지 못하는 나도 양이 적다고 느껴지는데 성인남자에게는 턱없이 부족할 양이다. 그래서 그런지 생각해 보니 이곳에서 비만인 현지인을 본 기억이 없다.

잠시 후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카오소이는 대체 무슨 맛있까? 내 입맛에는 코코넛이 섞인 카레맛 국수였는데 사실 그다지 내 취향은 아니었다.

참고로 나는 카레를 좋아한다. 하지만 지금 내가 먹은 카오소이는 굳이 찾아와서 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내 입맛에는 고기국수가 더 맛있었다.

둘 다 맛이 그저 그렇다는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맛에 대한 찬사가 없었던 것으로 보아 우리에게 이곳은 맛집은 아닌 듯했다. 개인 취향이겠지만 내게 이곳은 먹을 만은 하지만 애써 찾아올 곳은 아니다로 귀결된다. 

그냥 유명한 음식점을 방문했다는 것에 의의를 둔다. 에어컨이 없어 더운 우리는 서둘러 음식을 해치우고 식당에서 나온다.


식당을 나온 우리는 소화도 시킬 겸 목적이 없이 걷는다. 

걷다가 우린 다음 일정으로 마사지를 받는 것으로 결정한다.

눈만 돌리면 마사지하는 곳이 보였는데 갑자기 갈려고 하니까 보이지 않는다. 결국 구글지도로 현 위치에서 가까운 샵들을 찾는다.

H와 나는 함께 그곳으로 간다. 입구에서부터 고수의 향기가 느껴지는 찐 마사지샵이다. (사진으로 남기지 않아 아쉽다.) 그런데 오늘 나는 전신 마사지가 아닌 다리와 발만 마사지를 받고 싶었다. 하지만 이곳의 프로그램은 세부화되어 있지 않다. 이미 H에게 전신마사지를 원치 않는다고 말했기 때문에 나는 다른 샵에서 마사지를 받겠다고 한다. 그도 쿨하게 그렇게 하자고 한다. 우린 대략 2시간 후쯤 다시 만나기로 하고 헤어진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H와 별다른 트러블 없이 동행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게 이런 '따로 또 같이'에 서운해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나도 그렇고 H도 이런 상황에 괘념치 않는다.    


그와 잠시 헤어진 나는 주변에 다른 마사지샵을 찾는다. H와 그리 멀지 않은 장소이며 가급적 기다리지 않고 바로 가능한 곳으로 찾는다. 그러다 내 눈에 샵이 한 군데 들어왔다. 외관이 깔끔하고 전문적인 느낌이 들어 바로 들어간다. 차가운 에어컨 공기가 나를 맞이한다. 역시 마사지의 완성은 에어컨 바람이다.

하지만 이곳도 풀부킹이라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어느 정도 기다려야 하는지 물어보니 20분 정도라고 한다. 나는 다른 곳을 찾아보지 않고 그냥 기다리기로 한다.

그런데 10분 정도 지났을 때쯤 키가 큰 건장한 남자마사지사가 들어오신다.

설마 저분인가? 남자 마사지사에게는 한 번도 받아 본 적이 없는데..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 그는 나를 부른다. 나는 건장한 그분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간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되었다. 2층에 냉방이 안 되는 것이다.

맙소사. 망했다. 속에서 짜증이 올라왔다. 하지만 금세 체념하고 마사지를 받을 의자에 앉는다.

이미 이렇게 된 거 마사지나 잘하는 분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도 망했다. 이 분의 스킬은 역대 내가 받아 본 마사지 중 최악이었다.

하지만 이 또한 누구를 탓하겠는가. 내가 선택한 곳인걸.

한편으로는 더위 속에 나름 최선을 다하는 그가 짠해 보이기도 했다. 

어쨌든 나야 힘들이지 않고 편한 의자에 반쯤 누운 상태로 있지만 그는 노동을 하고 있지 않는가.

물론 돈이 아깝긴 했다. 


나는 지루하여 H에게 톡을 보낸다.

그는 자신이 있는 곳은 병원 같은 분위기라고 사진을 보내 준다. 

마치 내가 정형외과에 도수치료받으러 갔을 때 보았던 풍경이었다. 재미있다.

왼쪽은 H가 마사지를 받은 곳이고 오른쪽은 내가 마사지를 받은 곳이다.

각자의 마사지를 마치고 다시 만난 시간은 2시가 겨우 넘은 시간이었다. 

여전히 별 다른 계획이 없던 우리는 H가 마사지받으며 검색했다는 베트남 쌀국수집으로 향한다.

태국까지 와서 왠 베트남 음식인가 할 수 있겠지만 쌀국수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라 좋아하며 따라갔다.


<럭키 베트남 음식 식당> 쌀국수집이라고 하기에는 인테리어가 카페 같은 느낌이다. 치앙마이에서 이런 분위기의 카페는 흔하지만 쌀국수집은 처음이었다.

우선 입구에 적혀 있는 영업시간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 겨우 4시간만 영업을 한다. 짧은 영업시간임에도 식당이 유지된다는 것은 맛의 자신감을 나타내는 것 같아 괜히 기대감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안으로 들어가니 우리 외에 한 테이이블이 있다.

60대쯤으로 보이는 서양인 커플이다.


메뉴판을 보니 이곳은 식사 외에도 디저트도 함께 팔았다. 쌀국수와 분짜와 커피와 디저트. 뭔가 신선한 조합이다.

배가 많이 고프진 않지만 분짜를 주문한다. 식사는 깔끔하게 플레이팅 되어 나온다. 맛이야 말해 뭐 하나. 한국인 입맛에 분짜는 맛이 없을 수가 없다.

분짜를 먹은 후 이번에는 디저트를 주문한다.

코코넛 커피 슬러쉬와 베트남아이스커피 그리고 푸딩.

디저트의 플레이팅도 깔끔하고 예쁘다. H는 디저트와 함께 사진을 찍고 싶어 한다. 나는 맛을 빨리 보고 싶었지만 나름 최선을 다해 사진을 찍어 준다. 그리고 똥손인 것을 감안해 수십 장의 사진을 연달아 찍는다.

보통 이런 곳에 오면 여자가 모델이 되고 남자가 사진 찍어 주기 바쁠 텐데 우리는 반대다. 그런 모습이 재미있는지 맞은편 서양커플이 계속 웃으며 쳐다본다. 그럴 만하다. H가 웃기려고 의도한 건지 알 수 없지만 새끼손가락 끝까지 디테일에 신경 써가며 포즈를 취하는 모습에 나의 웃음이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그들보다 어린 우리의 젊음에 눈을 떼지 못한 건 아닐까 생각되었다.


H의 사진 촬영을 끝내고 드디어 커피와 푸딩을 입안에 넣는다.

오! 맛있다!

앞서 카오소이에서는 맛있다는 말을 하지 않았던 H와 나였지만 지금 이 순간은 둘 다 맛있다는 말을 연신 내뺃는다.

그리고 오죽 맛있었으면 H는 코코넛 슬러쉬가 계속 생각나 다음날 이곳에 혼자 와서 코코넛 커피 슬러쉬만 마시고 나왔다고 한다. 우리에게 이곳은 커피와 디저트 맛집으로 각인되었다.


식사와 디저트를 먹은 후 영업종료시간인 3시쯤 맞춰 가게를 나온다.

우리는 당연한 듯 남은 시간은 각자 보내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H와의 시간도 즐거웠지만 오늘 밤이면 출국을 해야 하는 나에게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H가 먼저 볼트앱을 이용해 오토바이를 불렀다. 잠시 후 오토바이 한 대가 우리 쪽으로 다가온다.

H는 "Bolt?"라고 그에게 묻는다, 운전기사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헬멧을 내민다. 그런데 그의 머리통이 커서 헬멧이 잘 안 들어간다. 큰 덩치에 낑낑대며 헬멧에 머리를 집어넣는 모습이 귀엽다.

H가 헬멧을 똑바로 착용할 때까지 오토바이 기사는 더는 기다리지 못하고 그에게 어서 타라고 제스처를 취한다. 결국 H는 헬멧을 머리에 걸친 상태로 출발한다. 그는 서울에서 보자며 뒤돌아 손을 흔든다.

나는 오토바이가 다가올 때부터 출발할 때까지 영상으로 남겼다. 그리고 그에게 재미있는 추억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영상을 전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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