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조선 팔도, 강원도 산골. 밤.
북풍이 매섭게 몰아치던 어느 밤, 조선 팔도에 기이한 소문 하나가 돌았다. 동해 바다 해신(海神)의 노여움이 극에 달하여, 어민들의 목숨을 끊고 배를 가라앉힌다는 풍문이었다. 그 비참한 소식은 강원도 깊은 산골, 천 리 밖 무학산 중턱에 자리한 도량(道場)까지 스며들었다. 세상을 구제하라는 스승의 지시를 받은 도사 초영(超影)은 만신(萬神)의 애타는 부탁을 뒤로하고 해묵리 바닷가를 향해 나섰다. 어두운 그림자가 깔린 산길을 오르는 그의 모습은 경쾌했다.
이 산 두어 고개만 더 넘으면 해묵리 해안가에 닿을 것이라 어림짐작했건만, 야속하게도 해는 발걸음보다 빠르게 저물고 어느덧 달이 중천에 뜨는 밤이 되었다. 마음 같아서는 노숙이라도 하고 싶었으나, 한시라도 빨리 그 비극을 막고 싶었던 초영은 달빛을 벗 삼아 걸음을 재촉했다. 그는 자신의 은신술(隱身術)로 산짐승이나 눈먼 백성들의 시선을 피해 조용히 길을 나아갔. 밤의 장막이 깊어질수록 숲의 공기는 더욱 차갑고 날카로웠지만, 초영의 얼굴에는 어떤 동요도 비치지 않았다. 오히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능청스러운 여유를 부렸다.
2. 초영과 아랑, 달빛 아래 조우
숲길을 걷던 초영은 문득 달빛이 갑자기 사라지는 것이 이상하여 고개를 들었다. 이상하게도 굵은 나무가지 하나가 무언가에 눌린 듯 꺾여 달빛을 가리고 있었다. 초영은 이내 고개를 갸웃하더니, 그 존재를 향해 싱글벙글 웃으며 입을 열었다.
"허어… 그 묘한 재주가 필시 은신술일진데… 어찌 짐승 비린내를 이리 고약하게 풍기는고? 쯧쯧. 이거이거, 내 코가 다 썩겠네! 하하하!"
초영은 과장되게 콧등을 찡그리며 코를 막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나뭇가지 위, 아무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뜻밖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새끼 여우가 앙칼지게 으르렁거리는 듯한, 앳되면서도 뾰족한 목소리였다.
"흥! 어라? 내가 보이느냐? 그럴 리가 없는데? 이 미천한 인간 따위가…."
자신이 펼친 은신술이 간파당한 것에 당황한 듯, 목소리는 점차 높아졌다. 하지만 이내 자존심이 상한 듯 앙칼지게 말을 이었다.
"흥! 내 정체를 알아챘다면 더 숨을 까닭은 없지!"
푸른 달빛 아래, 나무 위에서 사뿐하게 누군가 내려서는 소리가 들렸다. 바스락거리는 낙엽 소리만이 발소리를 대신하며 미끄러지듯 땅에 발을 딛는 순간, 눈앞의 상대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는 두 눈을 휘둥그래 떴다. 아담한 체구, 백옥처럼 하얀 피부, 전형적인 여우상의 갸름한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녀의 코에서 '킁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나!? 이게… 옷이… 옷이 어찌 이리 되었나…?"
방금 막 환술(幻術)이 풀린 것인지, 그녀의 옷차림은 기이하기 짝이 없었다. 무릎 한참 위까지 올라오는 짧은 치마는 몸에 달라붙어 맨살을 그대로 드러냈고, 상의 또한 허리가 다 보이고 어깨가 훤히 드러나는 형상이었다. 가슴 부분만 겨우 가린 듯한 모습에 그녀는 당황한 듯 두 팔로 자신의 몸을 가리려 애썼으나, 역부족이었다. 발가벗겨진 듯한 수치심에 온몸을 베베 꼬는 모습은 영락없는 어린아이의 모습이었다. 앙칼지게 쏘아붙이던 기세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붉어진 얼굴에는 불안과 당혹감이 뒤섞여 있었다.
초영은 눈이 뚫어져라 그녀의 모습을 응시하다가, 이내 크게 함박웃음을 터뜨리며 입을 열었다.
"하하하! 헌데 그 차림이 어딘가 익숙하구나! 내 잠시 먼 앞날의 시대에 다녀오며 보았지! 그 시대 처자들이 다 너처럼 발가벗고 다니더구나! 헌데 너에게도 아주 잘 어울리는구나! 하하하!"
그녀의 머리는 복잡하게 엉켰다. 분명 자신은 이 도사의 관상(觀相)을 꿰뚫어 본 후, 완벽한 환술을 써서 고운 한복을 입은 아름다운 모습으로 자신을 꾸몄거늘!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현실에 혼란스러웠다. 홀딱 벗은 모습이라니! 자신의 술수가 통하지 않았다는 당혹감에 초영의 받아치는 능청스러움까지 더해지니, 얼굴이 화끈거려 불타는 듯했고 창피함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마치 불에 덴 듯 몸을 움찔거리며 뒷걸음질 치는 그녀를 향해 초영이 다시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왜 이리 창피한 표정이냐? 흠… 그렇다면 이러하면 어떠할까?"
초영은 대뜸 손에 든 부채를 펼쳐 들고는, 그녀에게로 두어 번 바람을 일으켜 부채질했다. 그의 부채질에 굉장한 바람이 일더니, 얇고 짧아 마치 입지 않은 것과 같던 그녀의 옷감은 금방이라도 벗겨져버릴 듯 사납게 나풀거렸다. "꺄악!" 경악에 찬 비명과 함께 간신히 옷자락을 움켜쥐고 버티던 그녀는 바람의 힘이 잠시 약해진 틈을 타 재빠르게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치욕감에 새끼 여우처럼 발을 동동 굴렀다.
나무 뒤에 숨어서 그녀는 고래고래 악을 썼다. 앙칼진 목소리에는 분노와 함께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이런 무례한 놈! 도사라는 작자가 어찌 이리 파렴치한 짓을 한단 말이냐? 내 당장 요절을 내주마! 앙큼한 자식!"
분노에 가득 찬 외침과 함께 그녀는 분신술(分身術)을 써서 고운 한복을 입은 아름다운 처자의 모습으로 변신했다. 재빨리 숨겨진 소매 속에서 날카로운 은빛 비침(飛針) 세 개를 꺼내 손가락 사이에 끼워 넣고, 언제라도 던질 기세로 초영을 노려보았다. 그 찰나, 초영은 어느새 나무 뒤로 바싹 다가와 분노에 차 소리 지르는 그녀의 머리 가까이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었다. 너무도 가까이 다가온 초영의 얼굴을 보고 그녀는 그만 얼굴이 붉어졌다. 눈앞의 도사가 너무도 잘생겨서 수줍은 탓인지, 아니면 자신의 술법이 모조리 간파당하고 심지어 골탕까지 먹은 것에 창피해서인지 알 수 없었다. 초영은 잠시 멈춰버린 그녀의 머리를 능글맞게 쓰다듬으며 말을 건넸다.
"이 요녀석! 어느 천둥벌거숭이 어린 구미호 녀석이 나 초영 도사님께 까부는 것이냐? 어여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거라. 이리 재주부리지 말고."
그 말에 그녀는 황급히 초영과 거리를 벌리기 위해 재빠른 도약으로 몇 번이고 멀어져 비침을 날렸다. 핏빛이 묻은 비침이 날카로운 바람을 가르며 날아갔다. 그러나 헛수고였다. 초영은 그저 부채를 가볍게 펼쳐 막아낼 뿐이었다. 쇠붙이가 부채에 부딪히며 '챙그랑' 하는 소리가 숲을 울렸다. 어린아이의 장난이 귀엽다는 듯, 초영은 부채를 다시 접으며 너털웃음을 흘렸다.
"허허, 거 참 녀석! 심보하고는…"
멀리멀리 사라져 가는 그녀, 아니 어린 구미호 아랑을 보며 초영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과연 그녀가 무사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지, 아니면 자신 같은 도사나 무당, 혹은 다른 요괴에게 잡히는 것은 아닐지 걱정하는 듯한 미소였다. 앙칼지게 쏘아붙이던 어린 여우는 이제 막 날갯짓을 배우는 새끼 새처럼 세상을 향해 몸을 던지고 있었다. 그 모습은 때로 위태롭고 때로는 어설펐지만, 갓 피어난 꽃처럼 생명력 넘치는 아름다움이 있었다. 초영은 찰나의 고민 끝에 이내 피식 웃으며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해묵리의 어둠은 아직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3. 해묵리 도착, 해신과의 대면
얼마간의 시간이 흘러, 드디어 초영은 해묵리에 도착했다. 그러나 해묵리 마을 사람들은 그를 도우러 온 도사가 아닌, 해신(海神)의 분노를 달래는 제물로 바쳐진 듯한, 혹은 둔갑술을 부린 요괴쯤으로 여기고는 칼과 작살을 든 채 달려들었다. 이방인을 경계하는 날카로운 눈빛은 이미 증오와 광기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흐음, 굳이 이리 몸을 쓰는 것은 체질이 아닌데."
초영은 나지막이 읊조리며 마을 사람들을 향해 부채를 가볍게 휘둘렀다. 쩌렁한 외침과 함께 부채에서 뿜어져 나온 기운은 태풍처럼 휘몰아쳐 마을 사람들을 해변가 저 멀리로 날려 보냈다. '악!' 하는 비명 소리가 뒤섞이며 사람들이 뒹굴었고, 그제야 사태를 파악한 마을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무릎을 꿇고 초영에게 매달려 울면서 살려달라고 빌었다. 그들의 얼굴은 공포와 절망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초영은 그들을 뒤로하고 유유히 천천히 걸어 바다를 향했다. 짠 바다 내음은 상쾌하기보다는 비릿하고 음습한 기운을 품고 있었다. 초영은 해안가에 이르러 바다를 향해 깊이 고개를 숙이며 큰절을 올렸다. 그리고 엄숙한 목소리로 해신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어떤 대답도, 어떤 징조도 돌아오지 않았다. 바다는 그저 침묵할 뿐이었다.
초영은 기다림 대신 자신의 도술(道術)을 이용해 바다 위에 자신이 걸을 수 있는 길을 만들었다. '쏴아아아!' 바람 소리와 함께 푸른빛 기운이 손끝에서 뻗어나가자, 바닷물은 순식간에 응축되며 길고 투명한 다리를 형성했다. 다리는 쭉 뻗어나가며 바다 한가운데까지 이어졌고, 마치 초영의 발걸음에 맞춰 만들어지는 듯했다. 초영은 그 물다리 위를 가볍게 걸으며 바다 한가운데로 향했다. 고요하던 바다의 심연이 반응하는 듯,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그때 초영이 걸어가는 방향의 반대편에서 거대한 파도가 일어났고, 그를 집어삼킬 듯 달려왔다. 마치 심술궂은 어린아이의 장난처럼, 파도는 거친 콧김을 뿜으며 몰려들었다. 이내 초영을 덮치며 모든 것을 삼켜버릴 듯 포효했다. 그러나 파도가 지나간 후, 초영은 입은 도포(道袍) 한 자락 젖지 않은 채 조용히 바다를 응시하며 다시 부채를 펼쳐 들고는 깊이 절을 올렸다. 그 엄숙한 의식 끝에 비로소 거대한 물속에서 해신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파도와 해초가 엉겨 붙은 듯한 형체, 차가운 푸른빛이 감도는 눈동자, 슬픔과 분노가 뒤섞인 압도적인 존재감. 그 해묵리의 해신이었다.
4. 해신의 봉인과 초영의 비통함
초영과 해신 사이에 짧은 대화가 오가는 듯했다. 초영의 얼굴에는 경청하는 표정이, 해신의 눈빛에는 응어리진 비통함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그들의 소리 없는 대화는 곧 격렬한 힘의 충돌로 변모했다. 해신의 노기가 하늘을 찌르자, 바다는 끓어오르는 용광로처럼 요동쳤다. 수백 척의 배를 삼킬 듯한 거대한 파도가 사방에서 초영을 덮쳐왔다.
"허허..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초영의 능청스러운 말과 함께 집채만 한 파도가 초영을 향해 쏟아졌다. 초영은 부채를 휘둘러 격렬한 바람의 장벽을 만들어 파도를 갈랐다. 바람과 물이 부딪히며 천둥 같은 소리가 갯벌을 뒤흔들었고, 바닷물은 폭우처럼 쏟아져 내렸다. 초영은 몸을 날려 파도 위를 걷고, 해초 줄기가 채찍처럼 휘감아 오면 부채 끝으로 날렵하게 잘라냈다. 그의 부채질 한 번에 바닷물이 갈라지고, 한 발짝 내디딜 때마다 주변 공간이 일그러졌다. 해신은 분노에 가득 찬 눈으로 촉수처럼 뻗어 나오는 해초와 물기둥으로 초영을 공격했다. 번개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초영은 그 모든 공격을 피하고 흘려냈다. 바다는 그의 도포 자락조차 젖게 하지 못했다.
싸움은 더욱 격렬해졌다. 초영의 부채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 기운은 해신의 맹렬한 파도 공격을 막아냈고, 해신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푸른 빛은 초영의 움직임을 한순간 얼어붙게 했다. 해신은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거대한 물뱀의 형상으로 변해 초영을 휘감으려 했다. 파도가 초영을 중심으로 원형의 벽을 만들고, 그 안에 초영을 가두려는 듯 맹렬히 돌진했다. 초영은 물뱀의 압력에 몸이 짓눌리는 고통을 느끼면서도, 미소 띤 얼굴을 잃지 않았다. 그의 눈빛은 오히려 더욱 형형하게 빛났다.
초영은 찰나의 틈을 놓치지 않고, 부채를 접어 마치 하나의 송곳처럼 날카롭게 변화시켰다. 그리고는 모든 기운을 응집한 부채를 해신의 가슴 한복판으로 꿰뚫었다.
애끓는, 뼈아픈 비명 소리가 바다를 갈랐고, 그 충격으로 해묵리의 땅이 깊이 울렸다. 비명 소리는 분노와 고통, 그리고 해방되지 못한 슬픔이 뒤섞인 비통한 절규였다. 해신의 몸에서 검푸른 기운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며 주변 바닷물을 온통 먹빛으로 물들였다. 그 순간 초영은 온몸에 염력(念力)을 집중하여 근처에 있던 거대한 바위를 움직여 해신을 눌렀다. 바위는 마치 거인의 손처럼 굉음을 내며 해신 위로 떨어졌다. 그리고 초영은 자신의 부채를 펴 들고는 바위에 복잡한 봉인(封印)의 문양을 그려 넣기 시작했다. 빛을 내는 부채 끝에서 그려지는 문양이 완성될수록, 해신의 비명 소리는 점차 희미해졌다.
봉인을 마친 초영은 한참을 그 바위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머리를 조아리며 통곡했다. 그의 어깨는 한없이 가늘게 떨렸고, 비통함에 차오른 눈물이 갯벌의 진흙 위로 떨어져 검게 스며들었다. 아마도 인간의 그릇된 욕망과 어리석음을 인정하지만, 해신의 노여움이 더 큰 살생으로 풀리는 것은 막아야 하는 필연적인 결과이며, 자신이 그들을 대신하여 봉인할 수밖에 없음에 대한 미안함을 표하는 듯했다. 그 처절한 초영의 모습에 마을 사람들도 바다로 달려와 이내 땅에 머리를 조아리며 울부짖었고, 두 손이 닳도록 용서를 빌었다. 그들의 울음소리가 갯벌의 침묵을 갈랐다.
5. 구미호 아랑, 새로운 감정에 눈뜨다
그 모든 광경을 멀리 해안가 나무 숲에서 지켜보는 눈이 있었으니, 바로 초영이 만났던 그 어린 구미호, 아랑이었다. 할머니의 구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속세로 도망쳐 나온 그녀는 조선 팔도를 돌며 백 년쯤 세상을 유람했다. 헌데 백 년의 시간 동안 인간이란 구제불능의 존재임을 뼈저리게 느꼈다. 인간의 그 탐욕과 욕심이 자신을 괴롭게 하고 나아가 주위 사람들을 병들게 하며, 급기야 온 조선 팔도를 썩게 만들었다. 아랑은 인간들에게 깊은 회의감을 느끼던 참이었다. 인간의 추악함에 지쳐가던 그녀에게, 초영이라는 도사의 행동은 가히 충격이었다. 그는 보통 사람들과는 확연히 다른 존재였다.
초영의 비범함에 아랑의 앙칼진 눈매는 경외심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그 도사는… 잘생겼다. 싸우는 내내 뿜어져 나오던 그의 압도적인 기백과, 바다 위를 가볍게 걷고 파도를 가르는 모습은 마치 그림 속 신선과 같았다. 저 도사 녀석의 능력으로 실컷 골탕을 먹었지만, 그가 지닌 압도적인 힘과 그 속에 숨겨진 고독과 비애를 보며 아랑의 마음은 혼란에 빠졌다.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어지럽게 뒤섞이자, 아랑의 얼굴이 갑자기 달아오르며 가슴 한편이 살짝 뛰는 것을 느꼈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소리가 숲의 고요를 깨뜨릴 듯 울렸다. 그녀는 작은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살포시 움켜쥐며 속으로 알 수 없는 감정을 읊조렸다.
'어머나! 이게 뭐지? 나… 왜 이리 되었지? 이 간사한 인간에게… 내가 왜…?'
어린 여우 아랑의 붉어진 얼굴과 요동치는 가슴은, 이제 막 태동하기 시작한 미지의 감정으로 가득 찼다. 그녀의 백 년 세월 동안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혼란스럽고도 달콤한 떨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