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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끄적쟁이 Apr 08. 2023

현실을 잠시 도망치고 싶어도 엄빠는 항상 다시 집문 앞

 아직도 지금 혼자서 아이 둘을 키운다는 게 적응이 안 되는가 보다. 출근해서 일을 하고 집에 와서 다시 또 집안일을 하는 일.. 당연히 해야 하는, 포기라는 건 있을 수 없는 편 부모 가정의 일상이다.      


 어느 날 퇴근하고 오니 집안이 난장판에 두 아이들은 싸웠는지 서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아빠가 현관 중문을 여는 소리에 두 아이 다 얼음이 되어서 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마도 속으로 ‘X 됐다...........’라는 단어가 떠올랐을 것이다.      


 그날은 왠지 아이들에게 잔소리도 할 기운도 없고 집안 정리도 아이들 저녁 식사 여부를 물어보고 조금 더 챙겨 줘야 하는 모든 일 따위가 하기 싫어졌다. 아이들과 눈빛 교환이 잠시 있다가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대로 뒤로 돌아서 문 밖을 나가버렸다.      


 차에 다시 올라타 시동을 걸고 그냥 달렸다. 아무 생각 없이 일단은 지금 현실이 너무나 싫어 벗어나고 싶은 생각뿐이었던 것 같다. 1시간 정도 운전을 하면서 한숨만 계속 나오는 나의 미쳐버릴 것 같은 이 감정을 어떻게 추슬러야 할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는 와중에 큰딸의 전화가 계속 걸려왔다. 한참을 바라보다가 전화를 그냥 꺼버렸다.      


 얼마나 흘렀을까 나는 다시 집 앞의 문 도어록에 비번을 누르고 있었다. 엄빠가 갈 곳이 어디 있는가, 우리 아이들이 기댈 곳은 나뿐인 것을, 우리 집 관리는 누가 대신 해줄 수 있단 말인가... 집에 돌아오니 두 아이가 어느 정도 집안을 정리하고 아빠 눈치만 보고 있었다. 아무 말 없이 식탁에 앉아서 “늦었으니 자라..” 말했다.    

  

 집안에서 할 수 있는 작은 일탈. 맥주와 소주를 섞어 폭단주를 마시면서 불 꺼진 거실과 아이들 방문을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내일 또 하루를 시작해야 하니까.. 빨리 마시고 잠들자..‘라고 나를 통제해야 하는 말을 머릿속으로 반복할 뿐이다.    

  


 엄빠가 어딜 갈 수가 있단 말인가..? 아이들과 비, 바람 막아주는 우리 집뿐. 다른 일탈 따위는 생각 조차 할 수 없는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일단 아이들이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자기 앞가림은 할 수 있을 때까지 견딜 수 밖에는 없다. 이 시간을 견뎌 내는 것, 그게 나의 최선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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