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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날로그 육아 Feb 05. 2023

그네들에게는 천국인 이곳

03 나에게는 전혀 천국처럼 느껴지지 않네요

  세찬 온몸 소독 후 모모 아빠와 들뜬 마음으로 예약했던, 바로 그 산후조리원에 들어갔다. “천국”이라는 그곳에 들어가면서도 내 기분은 전혀 천국에 온 것 같지 않았다. 나는 그저 빨리 혼자 있고 싶었다.  


  조리원 입구를 지나고 나면 오른편엔 신생아실이, 그리고 가운데 크게 거실이 있고 두 갈래 길에 방들이 쭉 놓여있었다. 내 방은 그 갈래 길 중 하나의 끝 방이다. 모모 면회라도 다녀올 참이면 싫든 좋든 그 거실을 지나야 내 방으로 갈 수 있었다.  나를 배려하여 떠들썩한 곳과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방을 준건지, 아니면 마침 퇴실한 방이 그 방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잠깐 궁금하긴 했지만, 그러면 어떻고 또 아니면 어떤가.

 

  이미 거실에는 신생아를 품에 안고 하하 호호 웃고 떠드는 산모들이 있었다. 나는 그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고 내 방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산모님, 식사는 어떻게 하실래요? 보통 식당에 가서 먹으면서 서로 친해지고 하는데... 물론 가는 게 불편하셔서 방으로 받는 산모님들도 계세요.”


  “저도 방으로 가져다주세요. 그런데 식사 시간이 언제인가요?”

  

  “점심은 12시 반, 저녁은 6시예요.”


  모모의 면회시간은 오후 1시와 저녁 7시. 30분 이내의 거리지만 도로사정과 주차사정 상 그전에 출발해야 했다.


“식사시간이 둘 다 면회 가야 하는 시간이라서... 그 시각엔 제가 없으니까 그냥 방에 놓고 가주시면 다녀와서 먹고 밖에 내어 놓을게요.”






  짐을 대충 정리하고 나니 모모의 면회시간이 가까워졌다. 나는 냉동실에 잘 얼려 둔 모유를 꺼내 연두색 가방에 소중히 담고, 아직 덜 빠진 배의 붓기 때문에 출산 전 입었던 임산복을 입은 다음 모모가 있는 병원의 면회 출입증을 목에 걸고 나섰다. 조리원복이 아닌 사복을 입고 아기도 없이 나가는 내 모습에, 거실에 앉아있던 산모들의 의아한 시선이 돌아왔다.


  '나도 그네들처럼 최후의 자유를 만끽하면서 수다도 떨고, 그 '조리원 동기'라는 데도 끼고 싶지만 내 처지가 그럴 수가 없네요. 과연 내가 여기서 나가기 전까지 우리가 같이 앉아 대화할 일이 있을지...'


  나는 그들에게 들리지도 않을 말을 속으로 중얼거리며 조리원 밖으로 나왔다.


  그나마 오늘까지는 오후, 저녁 면회 둘 다 모모아빠와 편하게 갈 수 있지만 오늘로써 모모아빠의 출산휴가가 끝나기 때문에 내일부터 저녁 면회는 나 혼자 택시를 타고 가야 한다.


  모모아빠는 이 당시, 오후에 출근해서 새벽에 마치는 근무를 하고 있었다. 새벽에 퇴근하면 조리원 출입이 불가능한 시각이라 집에서 잠을 자고, 모모의 점심 면회에 맞추어 나를 데리러 왔다. 그리고 나와 모모의 점심 면회를 마치고 나면 나와 밥 한 끼 먹을 시간도 없이 서둘러 출근을 해야 했다. 조리원에 있는 동안 남편 시켜 맛있는 거 잔뜩 사다 먹고 TV나 보며 뒹굴거리는 그 ‘천국 같은’ 생활은 전혀 할 수가 없는 패턴이었다.



  심란한 내 마음과 달리 오늘의 여름 하늘은 눈 부실 정도로 파랬다. 그리고 하얗고 커다란 뭉게구름이 둥실둥실 떠 있는, 우리 부부가 ‘동남아 하늘’이라고 부르는 그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 구름들 사이에 하늘로 올라가며 웃고 있는 강아지 모습을 닮은 구름이 있었다.


  "저것 봐! 저 구름 강아지 같아."


  하늘을 보고 있으니 조금 기분이 좋아졌다.






* 사진 - 2017년 8월 11일, 모모의 면회를 가던 중 담은 강아지 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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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망가진 인형”에 계속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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