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날로그 육아 Feb 09. 2023

터널은 아직도 길다

05 빛이 우리 가족에게 오는 속도는 얼마일까

  그날의 저녁 면회길은 참 얄궂었다. 구름 뒤에서도 숨길 수 없는 빛을 발하던 태양은 우리에게 밝은 미래를 가져다줄 것을 약속하는 듯했으나, 아직은 아니라는 듯 곧 어둠이 밀어닥쳤다.


  금요일 저녁, 평소에도 온갖 화물트럭이 오가는 그 길은 금요일 퇴근 시간과 맞물려 더욱 복잡했다.


  모모가 있는 병원으로 가는 길에는 마지막 관문처럼 지나야 할 터널이 하나 있었다. 그 터널을 중간쯤 통과했을 때쯤 속도가 점점 줄더니 이내 차들이 꼼짝도 안 하기 시작했다. 앞의 상황을 보려 애썼지만 끝없이 늘어선 차들의 행렬만 보일 뿐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빛이 새어 들어오지 않는 걸로 봐서는 출구까지의 거리도 한참 남은 듯했다. 시간은 자꾸 흘러가고 속이 탔다. 이대로 가다가는 면회에 늦을 것은 뻔했고, 까딱하면 면회 시간을 아예 넘길 지경이었다.


  어둠, 터널, 그리고 하염없이 지나가는 시간. 그 속에서 조급한 건 우리만이 아니었던지, 갑자기 뒤에서 거대한 소리의 경적이 시작되었다. 그 소리는 꽉 막힌 터널 속을 쩌렁쩌렁 울리다 못해 차 안에 있는 우리의 심장이 떨리게 할 정도로 컸다. 우리 뒤편에 있던 한 화물트럭에서 나는 소리였다. 시간에 대지 못한 짜증이 분노로 바뀐 것일까. 그 큰 트럭에서 울리는 소리는 경적소리라기보다는 자신을 가둬둔 누군가에 대한 분노를 가득 담은, 거대한 들짐승이 울부짖는 소리에 가까웠다. 소리가 폭력적일 수 있음을 그때 처음 알았다.


  벗어날 수도 없는 공간에서 그 소리의 일방적인 공격에 당하고 있던 우리는 점점 더 거칠어지는 소리에 행여나 저 기사가 공황발작이라도 일으켜 이 캄캄한 터널 속에서 어떤 일이라도 저지르진 않을지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시간은 점점 7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시곗바늘이 7시를 넘어서자 거짓말처럼 앞의 차들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언제 어둠이었냐는 듯 이내 밝은 빛이 우리를 맞이했다.


  때때로 우리의 삶은 수렁에 빠지고, 그곳에서 벗어나려고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소용이 없을 때가 있다. 그때가 그러했다. 어둠 속에서 숨을 죽이고 가만히 기다리면 반드시, 빛은 다시 돌아온다.





  터널에서의 지체 때문에 결국 저녁 면회에 늦었다. 하지만 늦었다고 해서 아예 못 들어가는 것은 아니라서 잠시라도 모모를 보기 위해 서둘러 올라갔다.


  신생아 중환자실의 아기들이 모두 그들의 엄마, 아빠와 함께 있었다. 우리 모모의 침대 주변만 썰렁했다. 그런데 모모가 혼자 있어서 허전하게 느껴지는 것만은 아니었다. 모모 주변을 감싸고 있던 기계의 수가 줄었다. 모모의  속에 꽂혀 있던 튜브도 없었다.


  “모모야! 엄마 왔어. 오는 길에 차가 막혀서 조금 늦었어. 많이 기다렸지? 미안해. 우리 모모 못 볼까 봐 얼마나 마음 졸였는지 몰라. 우리 모모 엄마 아빠 언제 오나 했겠다.”


  의사 선생님이 왔다. 입으로 잘 먹는 것 같아서 이제 음식물 공급을 위해 넣어두었던 튜브는 제거했다고 한다. 모유를 20ml씩 잘 먹고 있고 앞으로 50ml까지 먹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오후에 MRI도 한 번에 잘 찍었다고 했다. 다만 인공호흡기를 떼어봤더니 아직 호흡수가 90밖에 나오지 않아서 최소 95가 나올 때까지 조금 더 달아두기로 했다고 한다.



  신생아 중환자실에 면회 오는 엄마들의 손에 들린 연두색 가방의 정체를 알았을 때 우리 모모도 엄마의 모유를 먹게 되기만 하면 회복 속도가 더 빨라질 거라 생각했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랬다. 모모는 이겨내고 있었다. 그 작은 몸으로, 살아내려고 애쓰고 있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brokendoll

브런치북 “망가진 인형”에 계속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이전 04화 내 아기는 살아날 것이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