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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날로그 육아 Feb 13. 2023

내게도 아빠가 있다면

07 택시에서, 아빠를 추억하다


  나의 오후 시간은 그렇게 흘렀다.

  식은 밥을 겨우 삼키고, 유축을 했다. 그리고 교수님의 설명에서 나온 말들 중 간신히 기억에 발을 걸치고 있는 단어들을 끄집어내어 검색해 본다. 단어에도 무게가 있다면 과연 이 무시무시한 단어들은 얼마만큼 무게가 나갈까. 검색을 거듭할수록 내 마음도 무거워져 갔다.


  모모아빠는 지금 어떨까. 오랜만에 출근해서 정신이 없어 모모의 일은 잠시 잊고 있을까?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이 무게는 나 혼자 짊어져주고 싶다.


  어느새 오후가 거의 다 지나가 있었다. 오늘 저녁부터는 나 혼자 면회를 가야 했다. 멍하니 앉아있을 여유조차 없었다. 서둘러 유축을 하고 그동안 탈 일이라곤 전혀 없었던 택시를 호출하는 방법도 알아내야 했다.






  오후 여섯 시. 처음으로 혼자 가는 길이니 조금 일찍 나서야 할 것 같다. 창 밖을 보니 늦여름의 하늘 치고도 꽤나 어두컴컴하다. 먹구름이 잔뜩 끼었다.


  택시 어플은 꽤나 유용했다. 예전처럼 전화통화를 하지 않아도 됐고 탈 장소와 내릴 곳까지 미리 지정할 수 있었다.


  택시를 타기로 한 장소로 나갔다. 하늘 색깔이 심상치 않더니 아니나 다를까 빗방울이 똑 똑 떨어지기 시작한다. 우산 없이 나온 나는 한 손으로 이마를 가린 채 병원 앞을 오가는 택시들에 주목했다.


  곧 내가 탈 택시가 도착했다. 나는 연두색 가방을 손에 든 채 힘겹게 뒷좌석에 올랐다. 룸미러로 나를 관찰하는 기사님의 눈길이 느껴졌다. 부어있는 배와 그 배를 둘러싼, 입고 있는 옷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색의 복대. 게다가 출발지도 병원, 목적지도 병원. 내 처지를 돌이켜 생각해 보니 의아하게 생각할 만하다 싶었다. 중년인 듯한 기사아저씨는 결국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내게 무슨 일로 병원에서 병원으로 가느냐고 물었다.


  “출산한 지 얼마 안 됐는데... 아기가 대학병원에 있어서요. 면회 가는 중이에요.”


  멋쩍은 웃음을 띤 내 대답에 기사님은 짧은 탄식을 내뱉고는 더 이상 아무 말도 묻지 않았다. 다만 톨게이트를 지날 때가 다가오자 톨게이트에서 내 카드를 바로 낼 것인지, 아니면 톨비를 미터기요금에 더해서 낼 것인지만을 물었다. 그리고는 또 아무 말 없었다.


  그렇게 택시는 한동안 달렸다. 기사님과 주고받은 대화는 그게 다였지만 왠지 아빠가 운전하는 차를 탄 듯 마음이 편안했다. 학교에서 사소한 일로 친구와 다투고, 비까지 맞아서 잔뜩 기분이 상한 채로 아빠 차에 탔는데, 내 표정만 봐도 무슨 일인지, 어떤 기분인지 벌써 다 읽고 내 기분이 풀릴 때까지 조용히 기다려주는 아빠. 저 중년의 기사님도 그의 아들 딸들에게 그런 아빠겠지.





  나는   무렵에 아빠를 잃었다. 아빠는 1년간으로 예정된 해외 장기 출장 중이었고, 귀국을   남짓 남긴 시점에 일어난 사고로 아빠는  그대로  줌의 재가 되어 귀국했다. 아빠와 가장 친하고 애틋하던 나이에, 아빠와의 재회를 손꼽아 기다리던  겪게  갑작스러운 이별이었다. 지금  택시를 타고 가며 그리는 나의 상상과는 달리, 사춘기의 나는 아빠를 만나보지도 못했다.


  그때도 한여름이었다. 그리고 내 열 살 인생에서 가장 불행했던 여름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다른 누구도 아닌 '아빠 있는' 아이들을 가장 부러워하며 자랐다. 어쩌면 그날도 여러 궂은 상황 속에, 내면의 어린 나는 아빠가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차로 나를 데리러 와 주기를 은연중에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보다 더 짠한 우리 남편 말고, 자꾸 괜찮은 척하게 되는 우리 엄마 말고, 아빠가 보고 싶었다. 아빠한테는 울고 싶은 대로 울고, 힘들다고 투정 부리고 싶은 대로 투정 부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왜 이리 자꾸 힘드냐고 아빠 품에 안겨 실컷 울고 싶었다.


  아빠를 잃은 지 24년이 지난 지금의 여름, 나는 모모를 잃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우리 아빠가, 우리 모모를 지켜주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






  택시는 대학병원 앞에 도착했다. 배를 부여잡고 내리는 데에만도 시간이 한참 걸렸지만 기사님은 느긋하게 기다려주었다. 오늘은 휠체어를 타지 않고 걸어서 올라가기로 한다.



   모모를 만났다.

  교수님의 아기가 먹는 만큼 먹여보라는 지시에 제한 없이 주었더니 모모가 40ml나 먹었다고 했다. 입으로 먹으면서 왠지 다리도 더 통통해지고 움직임도 많아진 것 같다. 무엇보다 입에 꽂힌 호스가 없으니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모습들을 보는 데서 또 다른 행복을 느꼈다.




  모모야,  회복해 주어서,  이겨내 주어서 정말 고마워! 네가 너무나도 여유롭게 하품하는 모습에 감동했고 네가 입으로 만들어내는 작은 소리들에 모든 걱정이 사라지는구나.

  
   얼른 내 품에 안아보고 싶다.
   사랑한다 모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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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망가진 인형”에 계속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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