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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날로그 육아 Feb 11. 2023

절망은 흔적을 남긴다

06 MRI 검사 결과를 듣다

  토요일, 생후 6일 차.

  오늘은 어제 찍은 MRI 결과가 나오는 날이다. 여태껏 뇌척수액 검사 등 수많은 검사를 했었지만 그 검사 결과들은 모두 '이상 없음'으로, 교수님이나 레지던트의 회진 때 모모의 당일 상태 설명과 함께 '가볍게 곁들여지는' 수준으로 전달되었다.


  그런데 오늘은 교수님이 면회가 끝나고 잠깐 면담을 하자고 하신다. 그냥 얘기해 주시면 될 텐데 혹시 다른 얘기를 하시려고 그러나? 혹시 생각보다 빨리 퇴원하게 되었다는 기쁜 소식일까? 늘 빠르게 지나가던 30분의 면회시간이 오늘은 유독 길게 느껴졌다. 모모의 얼굴을 보며 애써 웃고는 있었지만 뭔가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작은 가시가 되어 여기저기서 불쑥불쑥 올라왔다. 아닐 거야. 그럴 리 없어. 나는 아무렇지 않게 그 가시들을 꾹꾹 눌러버렸다.  






  면회시간이 끝나 다른 부모들이 각자의 아기에게 작별인사를 고하고 치료실을 떠날 때, 모모 아빠와 나는 신생아 중환자실에 딸린 작은 방으로 안내받았다. 이미 우리가 앉을자리의 맞은편엔 교수님이, 그리고 그 옆을 한 칸 띄운 자리에는 교수님 회진 이외의 시간에 교수님 대신 모모의 상태를 설명해 주던 레지던트 선생님이 앉아있었다. 나는 최대한 밝은 표정으로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늘 눈은 침착하지만 입꼬리는 미소를 담고 있었던 교수님이 평소와는 다른 표정이었다. 그의 표정을 보는 순간 올라가 있던 나의 입꼬리도 내려왔다. 절망이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교수님은 힘겹게 입을 떼었다.


  “그동안 의심되는 질환들을 하나씩 제거하느라 여러 가지 검사를 했었고, 아기 상태가 어느 정도 호전되어 마지막으로 MRI 촬영을 했는데요, 어제 결과가 나왔는데… 문제가 조금 있습니다…”

  

  "어머님, 아버님, 그동안 걱정 많으셨죠?" 하는 화기애애한 말로 시작되어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라는 인사로 끝날 줄 알았던 대화는, 전혀 다른 무게를 가진 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우리 모모 잘 회복해가고 있는데 도대체 왜, 무슨 문제가 있다고 하는 건지...



  교수님은 MRI 사진 몇 장을 모니터에 띄웠다. 설명하지 않아도 보였다. 확대된 크기라지만 동전보다 조금 더 큰 시커먼 구멍. 그리고 더 확대된 화면에선 그 옆으로 작은 구멍 두 개가 더 보였다.

 

  “정상적인 부분은 이렇게 하얗게 나와야 되는데요, 여기, 그리고 여기 두 곳 까맣게 보이는 부분은 손상이 생겼다고 보시면 됩니다. 문제는 어느 부분에 손상이 생겼나 하는 건데요…”


  이윽고 교수님의 설명이 이어졌다. 태어나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복잡한 용어들이 나열되었고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손상된 부위로 인해 어떤 후유증이 남을 거란 얘기 밖에 없었다.


  "... 후유증이라면 장애가 생긴다는 말씀이신가요...?"

  "지금 당장은 그렇다, 아니다고 말씀드리긴 어렵습니다. 아기가 자라면서 뇌도 같이 커지는데 손상부위의 크기에 변화가 생길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어서... 성장하면서 6-7년 정도 추적관찰을 할 예정입니다. 중간에 손상된 부위의 변화 유무를 보기 위해 MRI 검사도 추가적으로 진행될 거고요."



절망, 희망, 또다시 절망... 나는 그다음 순서가 다시 희망이기를 기대하며 교수님께 물었다.


 "치료할 방법은 없나요? 수술이라든지..."

 "현재로서는 아기가 자라는 동안 발달을 지켜보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자라면서 다친 부위가 완전히 나을 가능성은요?"

 "... 뇌가 커지면서 그 부분이 상대적으로 작아져 보일 수는 있지만...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면담이 끝났다. 모모아빠와 나는 힘이 들어가지 않는 다리에 억지로 힘을 주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면담실에서 나와 출입문으로 가기 위해 모모가 있는 방을 지나면서, 아무렇지 않은 듯 다시 입꼬리를 올리고 모모에게 한번 더 인사를 하고는 신생아 집중치료실에서 나왔다.




  차에 탄 모모아빠와 나는 아무 말이 없었다. 숨을 못 쉬던 모모가 숨을 쉬고, 먹지 못하던 모모가 먹게 되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행복한 생활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출산에서 사고가 있을 수 있음을 예상치 못했듯이 이러한 전개 또한 전혀 예상에 없던 일이었다. 눈물도 나지 않았다. 울면 뭐 하겠는가. 슬픔에 잠겨있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었다. 장애가 남을 수도 있는 이 아이와 그나마 행복하게 잘 살아갈 방법을 얼른 찾아야 했다.






  복잡한 마음으로 조리원으로 돌아왔다. 나를 내려주고 남편은 바로 출근길에 올랐다. 조리원 입구로 들어서자 거실에서 아기를 안고 서성이고 있는 엄마들이 보였다. 나는 시선을 최대한 그들에게서 돌린 채 얼른 내 방을 향해 걸었다.



  방으로 돌아오니 다 식은 밥이 기다리고 있었다. 차가운 국을 몇 숟가락 떴다. 입맛이 없었다. 숟가락을 내려놓으려다 순간 신생아 중환자실에 혼자 누워있는 모모가 생각났다. 살려고, 열심히 젖병을 물고 엄마의 모유를 삼키는 모모의 모습이 눈앞에 떠올랐다. 나는 놓았던 숟가락을 다시 들고 찬 밥을 국에 말았다. 그리고 열심히 먹었다. 지금 내가 모모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모유를 가져다주는 것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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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망가진 인형”에 계속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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