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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날로그 육아 Feb 07. 2023

내 아기는 살아날 것이다

04 The Silver Lining - 하늘이 보여준 희망


  모모를 만났다.


  어제까지 이마에 붙어 있던 기계 선 하나는 떼어지고, 대신 체온유지를 위해 아주 조그마한 보라색 비니를 머리에 쓰고 있다. 그리고 모모의 배 위로 따뜻한 빛이 비치고 있다. 마치 여유롭게 태닝하고 있는 부잣집 도련님의 모습 같다.


  의사 선생님이 어제 튜브로 ‘투여’했던 모유는 다행히 소화를 잘 시켰고, 모모에게 빨려는 의지가 보여서 오늘 오전에는 10ml는 튜브로 투여하고, 10ml는 입으로 먹여보았다고 했다. 지금은 입 안으로 연결된 튜브 때문에 아직 빠는 게 조금 서툴지만, 곧 튜브도 떼고 입으로만 먹게 할 예정이라고 했다. 호흡도 훨씬 안정되고, 배변도 하고, 소화도 시키다 보니 부어있던 배도 많이 가라앉았다고도 했다. 다만, 피검사에서 황달 수치가 조금 있어서 예방 차원에서 광선 치료를 시작했다고 했다. 모모가 여유롭게 쬐고 있던 그 빛이 광선 치료인 모양이었다. 체중도 출생 때보다 0.1g 정도 늘었다.

 

  모모가 고비를 넘기고 안정세에 들어섰기 때문에 오늘 오후에는 그동안 미뤄왔던 MRI를 찍을 예정이라 한다. 산도에 끼면서 머리 양쪽에 커다란 혈종이 생겼는데 단순히 피가 고인 것인지 아니면 뇌에 손상이 생긴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아기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검사를 한다는 동의서에 서명을 했다.


  병원에서의 보호자의 서명이란, 선택의 여지는 주지만 어차피 정답은 하나뿐인 객관식 문제와 다를 바가 없다. 보호자인 우리는 늘 그 '답'을 적어야 했고, 답을 적는 매 순간 모모의 생사에 대한 책임은 엄마 아빠인 우리에게로 넘어왔다.





  우리 부부가 조리원으로 돌아온 시각은 2시경이었다.

  방으로 들어서자 제일 먼저 보인 건 탁자 위에 놓인 점심 식사였다. 밥 한 공기와 미역국 한 사발, 그리고 샐러드와 고기가 들어간 반찬과 나물 반찬. 그릇을 만져보니 에어컨 바람 때문에 이미 다 식어 있었다. 모모 아빠가 다 식은 식사를 쟁반 째 들고 가서 전자레인지에 따뜻하게 데워 와 주었다.

 

  “전자레인지가 어디에 있었어?”

  “저기 반대편 복도 끝에.”

  “그럼 진짜 멀잖아?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데 이 무거운 걸 들고 거기까지 어떻게 다녀오지?”

  내일부터 혼자 하게 될 식사가 걱정이었다.

  “아님 국만이라도 들고 가서 데워 와.”

  “국도 어떻게 들고 , 가다가  쏟겠다에이 그냥 먹지 .”


  면회를 다녀와서 지친 몸을 이끌고 또 식사를 데우러 가는 건 생각만 해도 번거로운 일이었다. 물론 이 식사가 모모가 먹을 것이었다면 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음식을 데워왔을 것이다.



  오전에    짐을 마저 정리하고 나니  저녁 면회  시간이 되었다. 이번엔 우리가 나갈 준비를 하고 있으니 저녁 식사가 들어온다. 김이 따끈따끈하게 솟아오르는  지은 . 나는 저녁시간을 훌쩍 넘겨  밥이 차갑게 굳어진 뒤에야 밥뚜껑을   을 것이다. 어쩔  없었다. 퇴근 시간이라 길이 막히기 때문에  서둘러야 했다.






  차를 타고 조리원을 지나 신도시의 쾌적한 길을 달렸다.

  낮에 봤던 파란 하늘은, 그새 더욱 많아진 구름들이 다 가려버려서 지금은 하늘에서 구름 외의 존재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 어느 것도 그 두께를 뚫고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수 없을 만큼 빼곡한 구름이었다. 그런데 그런 하늘을 가만히 보고 있자 미처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그 구름들의 가장자리로 새어 나오는 은빛 선이 보이기 시작했다.


  ‘실버 라이닝(Silver lining)!’


  언젠가 영어 책에서 봤던 단어가 불현듯 머릿속에 떠올랐다.


  "Every cloud has a silver lining."

  직역하면 ‘모든 구름에는 은빛 선이 있다’지만 보통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속담으로 쓰인다. 그 단어를 봤을 때, 구름 뒤에서 보인다는 Silver lining이라는 존재를 어렴풋이 머릿속으로 그려 보긴 했었지만 내 눈으로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 (아마 살면서 무수히 많은 silver lining이 내 머리 위로 지나갔었을 테지만, 예전의 나는 그 존재에 대해 아마 큰 의미를 두지 않았을 것이다)


  “여보, 저것 좀 봐. 구름이 많아서 해가 가렸는데, 가려진 해가 저렇게 빛을 뿜어내고 있어. 저게 silver lining인가 봐.”


  나는 말을 하면서 얼른 휴대폰을 꺼내어 들고 그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다. 사진을 찍고 나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해는 구름 뒤에 숨어서 아무리 가려도 가려지지 않는 빛을 발하며, 자신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두운 것 같지만 이면은 이렇게 밝게 빛나고 있지 않느냐고. 내 곧, 이 어둠을 다 걷어 주겠노라고.


  그때 어떤 확신 같은 것이 강하게 들었다. 모모는 곧 깨끗하게 나을 것이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나의 품에 안겨 함께 집으로 갈 것이라고.







* 사진 - 2017년 8월 11일 모모의 저녁 면회를 가던 길에 찍은 Silver li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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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망가진 인형”에 계속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2권에서는 조리원에서의 생활과 모모의 극복기를 담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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