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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날로그 육아 Feb 15. 2023

평행이론, 각도를 바꾸다

08 나의 아기 고양이 하쿠, 나의 아기 모모

  생후 7일 차, 그리고 신생아 중환자실 입원 7일 차.


  어제저녁에 시작된 비가 오늘까지 계속되고 있다. 어제는 후드득 떨어지는 수준이었다면 오늘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쏟아붓는다.


  모모의 점심 면회 가는 시간. 이때가 하루 중 모모아빠와 내가 유일하게 만나는 시간이다. 면회를 가는 20여분 남짓한 시간 동안 우리의 대화 주제는 오로지 모모뿐이다.


  “어제 교수님이 말씀하신 거, 기억나는 거 하나라도 있어?”

  “아니. 그냥 뇌에 손상이 있다는 거 외에는…”

  “나는 뇌실 어쩌고 저쩌고 하는 단어. 그 단어가 유일하게 귀에 들어와서 엄청 애써서 외웠거든. 어제 그거 검색해 봤는데 그 병 후유증이…”


  내가 내뱉은 단어에 모모아빠가 잠시 멈칫하더니, 잡고 있던 운전대를 다시 고쳐 잡았다. 나중에야 말했지만 그 순간 너무 놀라서 운전대를 놓을 뻔했다고 했다. 나는 빗줄기가 쏟아지는 유리창에 시선을 고정한 채 내가 어제 검색하여 읽었던 후유증에 대하서 천천히 읊었다. 모모아빠 역시 정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내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지금부터 마음의 준비를 해놔야 할 것 같아. 나는 이미 마음의 준비를 끝냈어.”


  나의 일방적인 통보였다. 어쩔 수 없었다. 우리가 대화를 나눌 시간은 지금 이때 밖에 없다. 그게 운전 중이든, 빗 속이든, 말할 건 말해야 하고, 알 건 알아야 했다. 나는 우리가 빗길 운전보다 더한 상황에 있었어도 말했을 것이다. 같이 알아야 했다. 우린 모모의 엄마이고 아빠니까, 앞으로의 길들을 같이 헤쳐나가야 했다. 모모를 위해서.






  신생아 중환자실 문이 열렸다. 멀리서 모모를 보자마자 나는 그대로 주저앉을 뻔했다. 분명히 어제 입으로 먹은 것도 잘 소화한다고 입에 연결된 튜브는 제거했었는데, 모모의 입에 또다시 뭔가가 달려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밤 사이에 먹은 것들을 토해낸 걸까? 역시, 아직 입으로 먹을 만큼은 회복되진 않은 걸까? 아니면, 다시 상태가 나빠진 걸까?


  문 앞에 서서 발걸음이 멈춰버린 그 아주 짧은 순간에, 눈앞에 하쿠*가 스쳐 지나갔다.






  하쿠는 우리와 함께 산지 1년여 만에 하늘나라로 보낸 작디작은 아기 고양이다. 한 살 생일을 막 넘긴 어느 날, 갑자기 끊이질 않는 구토를 시작하더니 점점 건강이 나빠졌다. 병원을 수 없이 데려가서 검사를 했으나 원인 불명이었다. 새벽녘 하쿠가 구토하는 소리에 깨어나서 토사물을 치우고, 하쿠를 안고 원인이 뭘까 검색하며 밤을 지새우는 날들이 늘어갔다. 그리고 가능성이 있는 원인을 하나씩 제거해 가며 하쿠가 조금이라도 사료를 먹고 소화시킬 수 있도록 우리 부부는 하쿠를 위해 온갖 노력을 했다. 하쿠가 며칠씩 구토를 하지 않는 날이면 안도했고, 잠시 멈추었던 구토를 다시 시작하면 우리도 다시 절망에 빠졌다.


  마지막으로 옮겨 간 병원에서 어이없게도 구토의 원인이 장을 막고 있는 이물이었음을 밝혀내고 이물 제거 수술을 받았다-사실 애초에 구토의 원인이 이물이었는지, 아니면 계속된 구토로 배가 고파서 아무거나 주워 먹은 것인지 전후 관계는 불분명하다.


  수술 후, 이제는 더 이상 구토를 하지 않을 거라 했지만, 하쿠가 수술 결과를 보기 위해 먹인 습식사료를 다시 그대로 토해내었단 얘기를 들었을 때의 절망이, 지금 모모를 보며 다시 떠올랐다.



  사실 하쿠를 떠올린 건 오늘이 처음은 아니었다. 2.7kg이었던 하쿠, 2.7kg로 태어난 모모. 결국엔 거듭된 수술을 이기지 못하고 그 병원 입원실에서 폐수종으로 하늘나라로 떠난 하쿠, 그리고 폐에 기흉이 생겨 대학병원으로 전원 된 모모. 이 기묘한 우연의 일치를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하지만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당시 나는 하쿠의 첫 번째 생일날 미리 같이 사 두었던 숫자 '2' 초를 보며 왠지 이 초는 쓰지 못하게 될 거란 불안한 예감이 들었었고, 수술 후에도 하쿠의 구토가 멎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병원에서 하쿠가 또다시 구토를 했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이미 나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쿠는 우리와 함께 돌아올 수 없는 것이다. 아무리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랐지만, 하쿠를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우리의 모습이 전혀 그려지지가 않았다.


  하지만 모모는 살아날 거란 확신이 들었다. 어마무시한 후유증이 있을 거란 사실을 안 뒤에도 나는 괜찮았다. 모모와 함께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 모모를 잃지 않는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떨리는 걸음으로 모모에게 다가간 나는 의아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분명 호스는 아니었다. 커다랗고 둥근 실리콘이 입을 막고 있었고 그 실리콘 위로 그것보다 배는 더 큰 밴드가 붙여져 있었다. 나는 간호사선생님께 모모의 입에 있는 것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물었다.


  “아, 그거 쪽쪽이(공갈젖꼭지)에요. 밥 먹었는데도 자꾸 빨고 싶어서 울길래 물려놨어요.”


  허탈하고 귀여워서 웃음이 났다. 아니나 다를까 모모는 쪽쪽 쪽쪽 소리까지 내며 쪽쪽이를 빨고 있었고 그 쪽쪽 쪽쪽 소리 가운데 칭얼거림이 묻어났다. 그렇다, 평행하게 이어지던 두 개의 삶 중 하나는 그 각도를 바꾼 것이다.



  모모의 칭얼거림을 들으며 모모아빠와 나는 “엄청 배고파하는 것 같은데 더 먹여야 하는 거 아닌가? 알아서 주시겠지? 하, 어떡해야 하지?” 하며 간호사 선생님의 눈치를 보며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초보 엄마 아빠의 미래가 보였다.


  그나저나 쪽쪽이 빠지지 말라고 붙여둔 저 반창고, 뗄 떼는 안 아플지. 모모 손톱도 좀 긴데 버둥거리다가 얼굴을 긁지나 않을지. 못 먹던 아기가 잘 먹는다고 하니까 이제 슬 다른 걱정이 생기기 시작한다. 엄마 아빠의 걱정이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옮겨가는 건가 보다.






*하쿠와 함께 보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지만, 그 작은 고양이와 함께 한 추억은 또 다른 책으로 쓸 만큼 많습니다. 우리 부부에게 하쿠는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과, 그 작고 여림에 대한 애틋함으로 평생을 가져갈 마음속의 돌입니다.


2015. 4. 8. ~ 2016. 6. 25. 나의 아기고양이 하쿠를 추억하며.




https://brunch.co.kr/brunchbook/brokendoll

브런치북 “망가진 인형”에 계속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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