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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날로그 육아 Feb 19. 2023

엄마에게 희망을,

10 힘을 내어줘서 고마워


  다음 날 아침 신생아 집중 치료실 번호와 끝자리 하나만 다른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ㅇㅇㅇ 아기 보호자시죠?”

  “네… 그런데요?”

  “교수님께 뇌질연화증 관련하여 면담 신청하셨다고 들었어요.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때 교수님이 설명하실 때 같이 들어갔던 레지던트고요. 제가 그때 옆에서 교수님 말씀을 노트에 다 메모하고 있었는데요, 그때 교수님이 “뇌질연화증은 아니다”라고 말씀하셨었어요. 제가 분명히 들었어요. 혹시 그것 외에 더 면담하실 것 있으세요?”


  그날 교수님 입에서 쏟아져 나오던 전문용어들 사이에 분명 저 단어의 언급은 있었으나 이미 머리가 하얘질대로 하얘진 나에게 ‘다행히 그것은 아니다’라는 말은 입력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감사 인사를 하고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후유증으로 생길 수 있는 병명이 조금 달라진 것일 뿐 후유증을 걱정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점심 면회를 가니 간호사선생님이 모모에게 젖병으로 모유를 먹이고 있었다. 출산 전, '모유수유 방해 일인자'라고 내가 그렇게도 피하고 싶어 했던 바로 그 초록 젖병이다. 출산하자마자 직접 수유를 하는 게 당연한 꿈이었던 내게 그 광경이 불편한 마음이 하나도 들게 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직접 먹이든, 유축을 한 모유를 젖병에 담아서 먹이든, 일단 모모가 모유를 먹고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기로 했다.


  간호사선생님이 모모가 11시에 40ml를 먹다가 잠들어서 40ml를 더 먹이는 중이라고 했다. 오늘부터 80ml씩이나 먹기로 했단다. 모유를 잘 먹어서 오늘 달고 있던 영양제도 뗄 예정이라고 했다. 언제 먹을 수 있을까 했던 상황에서 모모가 먹을 모유가 부족하지 않게 '엄마가 분발해야' 하는 상황으로, 상황이 역전된 것이다.


  “아직 황달기가 남아있어서 남은 황달 치료도 잘 되고 지금처럼 잘 먹어준다면 이번 주 안에 퇴원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퇴원!!!

  간호사선생님의 입에서 나온 그 단어는 이상하게도 기쁨이라기보다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모모가 점점 나아가고 있다는 것은 분명 알고 있었다. 그런데 ‘퇴원’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일이었다. 언젠가 모모가 다 나으면 내 품에 꼭 안고 셋이서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꿈을 가지긴 했으나, 모모가 태어나서부터 여태껏 그것은 말 그대로 그저 ‘꿈같은’ 얘기였다. 모모는 호흡기를 달고도 숨을 잘 못 쉬었고, 후유증이 남을 수 있는 여러 가능성 때문에 매일 새로운 검사를 받았던 터였다. 내 꿈이 실현되는 때가 언제 일지 가늠조차 해 본 적이 없는 나에게, 그 꿈이 곧 현실이 될 수 있다고 말해주는 것이었다.






  저녁 면회.

  오늘 모모는 참으로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여준다. 저녁의 모모는 우리가 흔히 스트레칭을 마치고 가장 편안한 자세로 휴식을 취할 때 하는 '아기 자세'-다리를 접고 엎드린 자세-를 하고 있다. 머리, 등, 기저귀. 완벽한 3등신이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 보는 신생아의 뒷모습이다. 황달 수치가 염려되어 예방차원에서 광선치료를 시작했는데도 불구하고 수치가 계속 높아지고 있어서, 몸 골고루 광선을 쬐는 중이라고 했다.

 

  옆으로 살짝 돌리고 있는 얼굴을 보니 벌리고 있는 입도 너무 귀엽고, 웅크리고 있는 발도 귀엽고, 꽉 쥔 주먹도 너무 귀엽고, 엉덩이는 진짜 너무 귀여워서 미치겠다!


  그런데 내 시선이 모모의 머리로 향하던 순간 내 입꼬리에 떠올랐던 미소가 슬그머니 사라졌다. 자연분만으로 태어난 아기들은 나오느라 고생한 탓에 머리 모양이 예쁘지 않다는 말은 들었었다. 머리가 뾰족한 모양으로 태어나거나 아니면 분만 도중에 엄마가 힘주기를 잠시 멈춘 탓에 머리가 살짝 눌려 땅콩 모양으로 태어나기도 한다고. 반면에 제왕절개 한 아기들은 머리 모양이 동그랗게 예쁘다고 했다. 그런데 산도에 끼여있다 수술로 겨우 빠져나온 우리 모모의 머리는 뾰족한 모양도, 땅콩 모양도 아닌 양 쪽에 혹이 달린 듯한 형태였다.

 

  신생아 두혈종. 혹처럼 보이는 것 안에 피가 차 있는 상태.  다행히 두혈종은 대부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고였던 피도 자연적으로 흡수되고, 머리 모양도 “정신없이 키우다 보면" 어느새 동그란 모양으로 돌아와 있다고 했다.


‘그래, 정신없이 키우다 보면, 우리 모모 머리도 원래대로 돌아올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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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망가진 인형”에 계속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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