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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날로그 육아 Feb 17. 2023

택시는 갖가지 인생을 싣고 달린다

09 '엄마'는 엄마의 마음을 안다

  그동안 살면서 정말 급할 때 외에는 이용할 일이 거의 없었던 택시를, 혼자서 오가던 저녁 면회길마다 왕복 두 번씩 꼬박꼬박 타게 되었다. 20여분이 넘게 걸리는 거리, 거기다 병원에서 병원으로 가는 심상치 않은 여정 덕분인지 기사님들은 거의 대부분 나에게 대화를 걸어왔다.


  기사님들은 대화의 주제뿐만 아니라 운전습관, 심지어 선택하는 경로까지 모두 각양각색이었다. 끔찍한 길치, 방향치인 나에게는 안 그래도 낯선 길이 더욱 낯설어서, 택시를 탈 때마다 '지금 이 분이 나를 바른 길로 데려가고 있는 건가' 싶어 태연히 창밖을 내다보는 척했지만 내 눈에는 동공지진이 일어나 있곤 했다.

 

  여러 명의 기사님들 중 나에게 병원에서 병원으로 가는 이유를 묻고 나서부터는 편안한 침묵을 지켜주신 첫 번째 기사님과 더불어 결코 잊을 수 없는 한 기사님이 있었다. 어느 저녁 면회에서 돌아오는 길에 탔던 택시였는데 얼핏 보면 차가 스스로 움직이고 있다고 보일 정도로 굉장히 체구가 작은, 여자분이운전 중이셨다. 그분은 대학병원 입구에서 탄 내가 목적지를 말하자마자 모든 상황을 알겠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놓았다.

  

  그 이야기는 남편이 사업이 망하는 바람에 아내인 자신이 택시를 해보자고 권유해서 둘이 같이 택시 기사를 시작하게 된 계기부터, 본인의 적지 않은 나이(무려 70대 초반이셨다)와 그에 비해 다소 많이 짧은(!) 운전경력, 그리고 난임으로 고생하다 뒤늦게 딸을 하나 얻었는데 낳다가 잃을 뻔했다는 이야기로 이어졌다. 따님이 30대이니 30년도 훨씬 전에 나와 비슷한 일을 겪으신 건데, 그때는 신생아 집중 치료실 같은 건 당연히 없었고 인큐베이터 있는 병원조차 찾기 힘들었다고 했다.


  나는 이 이야기의 결말이 비극일까 봐 듣는 내내 기사님의 표정을 흘낏흘낏 엿보았다. 기사님의 딸은 다행히 그 근처의 또 다른 대학병원의 고작 4개 뿐인 인큐베이터 중 하나에 들어가게 되어 기적적으로 살아났다고 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모모에게 남을지도 모른다는 후유증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지금까지도 해피엔딩일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따님은 지금 어때요? 건강하세요?”

  “그럼요. 그때 병원에서 되게 겁줬었는데 아무렇지도 않아요.”


  나는 그 대답을 들으며 병원에서 우리 모모에게도 ‘가장 최악의 가정’을 이야기해 준 것이기를 마음속으로 빌었다.


  잠시도 끊임없는 이야기를 늘어놓으면서도, 택시는 길 한번 잘못 들지 않고 순식간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기사님은 내 택시비를 받지 않으셨다. 처음부터 받지 않을 생각이었다며 내가 내미는 카드를 한사코 거절했다.


  택시 문을 닫고, 택시가 다시 속도를 높여 큰길로 빠져나가는 것  바라보았다. '감사하다'는 한 가지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여 몰려왔다.  






  에어컨이 켜진 한여름의 시원한 방. 탁자 위에는 한 시간 전에 두고 갔을 저녁 식사가 뚜껑이 덮인 채 놓여 있었다. 차가운 밥, 차가운 미역국, 그리고 전혀 식욕을 자극하지 않는 심심한 간의 반찬들. 나는 반찬 뚜껑은 열지도 않은 채 밥만 미역국에 말았다. 그리고 ‘참 맛없다’는 생각을 하며 꾸역꾸역 몇 숟갈을 떴다. 따뜻하기라도 했으면 맛있었을까, 다른 산모들처럼 저녁에 퇴근하고 온 남편과 같이 앉아 조리원 천국에서의 마지막 자유를 누리며 하하 호호 웃으며 먹었더라면 맛이 있었을까.


  먹기 전과 무게 변화가 그다지 생기기 않은 식사 쟁반을 밖에 내어놓고 휴대폰을 들었다. 그리고 검색창에 ‘뇌실백질연화증’을 입력했다. MRI결과를 듣는 동안 내 머릿속에 박힌, 바로 그 단어였다.


  그때는 경황이 없어 후유증이 생긴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날, 밤을 새운 검색 끝에 우리의 앞날이 대략 그려졌지만, 그래도 더 자세히 알고 싶었다. 출산 이후 모모아빠 다음으로 전화를 많이 걸게 된 곳-신생아 집중치료실-로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저 ㅇㅇㅇ 아기 보호자인데요. 그때 들은 MRI 결과 관련해서 교수님과 면담하고 싶어서요.”

  “어떤 내용으로 면담 원하신다고 전해드릴까요?”

  “그때 교수님께서 뇌실백질연화증이라고 하셨는데, 그 병의 예후라든지 치료 방법과 관련해서 다시 설명을 듣고 싶어요.”

  “네 그렇게 전해드릴게요. 일정 정해지면 다시 연락드릴게요.”


  나는 전화를 끊고 내일 모모에게 가져갈 모유를 유축했다. 그리고 밤 12시 반, 새벽 3시 반, 아침 6시 반. 세 시간 간격으로 알람을 맞추었다. 젖이 돌기 시작한 이후부터 면회 이외의 시간에는 밥을 먹고, 씻고, 유축을 하면 하루가 지나간다. 자다가 한밤중에 일어나 유축을 하는 게 정말 고역이지만, 지금 내가 모모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이게 유일하단 생각에 알람소리가 들리면 지체 없이 일어났다.


  너무 늦어 거리에 차도 다니지 않는 시각. 졸린 눈을 간신히 뜨고 혼자 유축을 하며, 잠도 못 자고 밥도 제대로 못 먹는 이런 천국은 다시는 오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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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망가진 인형”에 계속 이어지는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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