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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날로그 육아 Mar 01. 2023

달콤 씁쓸, 초콜릿 맛 육아

15 모모를 조리원으로 데려오던 날

  모모를 태운 우리 차는, 처음으로 나를 태우고 모모에게 면회 갈 때만큼 느린 속도로 달렸다. 바구니 카시트가 있었지만 이 작디작은 아기를 병원에서 꽁꽁 감아준 겉싸개와 속싸개를 벗기고 맨몸으로 거기에 눕힐 자신이 없었다. 모모는 잠깐 칭얼대긴 했지만 다시 잠든 상태였다.


  평소보다 시간이 배는 걸려 조리원에 도착했다. 입구에서 소독을 마치고 들어가자 신생아실 선생님들이 나와서 모모를 반겨주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아기를 데리고 방으로 가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외부에서 데려온 아기이기 때문에 신생아실에 바로 들일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충분히 납득할만한 이유였으나 나에게는 그 당연한 지시가 청천벽력처럼 느껴졌다. 갑자기 이 작은 아기와 나, 둘이 있게 된 것이다. 우유를 어떻게 먹이는지, 기저귀도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는데... 나의 계획에는 ‘모모를 데려온다’까지만 있었을 뿐 그 뒤는 백지상태였다.


  다행히 선생님 한 분이 내 방에 따라 들어오셔서 모모의 겉싸개와 속싸개를 벗기고 기저귀 가는 법과 속싸개를 하는 법을 알려주셨다. 그리고 여유분의 기저귀 세 개를 주시며 아기가 배고파서 울면 신생아실로 전화를 달라고 했다.


  선생님이 나가신 뒤 나는 그제야 모모를 제대로 내 품에 안아보았다. 열흘 간의 입원기간 동안 몸무게가 아주 조금 늘긴 했으나 여전히 작디작았다. 예쁜 내 아가, 드디어 널 내 품에 안아보는구나.


  아침 일찍 병원에 다녀온 터라 모모아빠 출근까지는 시간이 조금 있었다. 우리는 모모를 내 방에 있는 아기 침대에 눕혀 놓고 점심을 먹었다. 정말 오랜만에 먹는 따뜻한 밥이긴 했으나 내 옆에 있는 이 작은 생명체를 어떻게 돌보아야 하는지 걱정이 되어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먹었다.


  식사를 마친 모모아빠는 출근하러 가버렸다. 드디어 이 방에 나와 모모, 둘만 남겨졌다. 아기는 왜 이리 자주 깨고, 자주 응아를 하고, 자주 쉬야를 하고, 그 조금 먹는 데도 뭐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리는지... 당황스러움의 연속이었다. 모모가 자면 자는 대로 난 뭘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고, 칭얼대면 그 원인을 찾느라 진땀을 쏙 뺐다. 기저귀를 열었다가 ‘아, 기저귀는 아니네’ 하고 떼어낸 테이프를 다시 붙이려면, 양쪽 균형은 어찌 그리 안 맞는지, 왼쪽을 맞게 붙인 것 같으면 오른쪽이 안 맞고, 오른쪽이 됐다 싶으면 왼쪽이 삐뚤고... 그리고 그놈의 속싸개!!! 정말, 나름 단단히 여민다고 여몄는데도 모모가 조금만 꿈틀대면 스르르 풀려버리는... 선생님은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단단하게 여미신 거지? 병원에서 보던 모모는 항상 얌전히 자고 있었는데 지금은 왜 그렇지 않은 거지...?


  그렇게 열여섯 시간 같은 여섯 시간이 흘렀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신생아실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미처 치우지 못해 여기저기 널려 있는 기저귀-앞서 주신 기저귀 세 개는 벌써 다 쓰고 추가로 잔뜩 받은 것들도 이미 몇 개 남지 않은 상태였다-들과 모모의 속싸개처럼 풀려있는 내 눈을 보신 선생님은 "힘드시죠?” 하시더니 "아기 데리고 갈게요." 하고는 모모를 안고 가셨다. 모모를 안고 가는 선생님의 뒷모습에서 후광이 비추었다. 천사가 강림하셨다. 휴우... 나는 침대에 그대로 널브러졌다. 육아가... 이런 거구나...



  잠시 후 다시 똑똑. 저녁 식사가 들어왔다. 식사 가져다주시는 분이 “오늘은 안 가셨네요?” 하고 묻는다. 아기가 퇴원했다는 대답에 축하 인사가 돌아왔다. 나는 육아의 현실을 잠깐 맛본 터라 그 축하에 아까 모모를 안고 조리원으로 들어올 때처럼 해맑게 웃지는 못하고, 애써 눈만 반달 모양으로 만들어 보였다. 마음은 분명 기뻤는데 차를 타고 면회길을 오가던 고단함과는 다른 종류의 피로가 몰려왔다. 모모의 퇴원은 결코 '모모는 건강하게 퇴원을 하였고,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끝~!' 하는 이야기의 결말이 아니라, '모모는 건강하게 퇴원을 하였고, 이제부터 본격적인 육아가 시작된답니다.' 하는, 이야기의 또 다른 시작이었던 것이다.


   




  저녁을 먹고 괜히 신생아실 앞을 서성거렸다. 모모가 잘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해가 져 가는 이 시각에 모모를 만나러 외출하지 않고 방에 가만히 있으니 뭔가 이상해서였다. 유리창 너머를 들여다보며 다 비슷비슷하게 생긴 아기들 중에서 모모를 열심히 찾고 있는데, 나와 눈이 마주친 선생님 한 분이 문을 열고 나왔다.


  “아기 조금 전에 우유 먹고 자고 있어요. 보고 싶어서 오셨어요?”

  “아, 네…”


  나는 멋쩍게 웃었다. 선생님은 이내 다시 신생아실로 들어가시더니 손가락으로 모모 침대의 위치를 알려주셨다. 나는 유리창 밖에 한참을 서서 모모를 바라보았다. 곤히 잠든 모모. 다른 아기들처럼 하얀 누에고치가 되기까지 좀 오래 걸리긴 했지만,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건강한 아기들 사이에 있는 걸 보니 마음이 뭉클했다. 그리고 이제 언제든 모모를 내 품에 안아볼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좋았다. 아까 안아본 모모에게서는 달콤한 솜사탕 냄새가 났다.


  육아란 그런 거겠지, 쉴 새 없이 엄마의 손길을 요구하는 너로 인해 혼이 쏙 빠졌다가도 잠든 너를 안고 있으면 그 모든 힘듦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



  모모를 데려온 밤, 나는 또 다른 설렘으로 잠이 오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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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 북 "망가진 인형"에 계속 이어지는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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