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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날로그 육아 Feb 25. 2023

나의 반쪽에게

13 기쁨의 순간을 주지 못해 미안해

  수술대에 누워있는 너.

  피.

  피.

  피.

  당혹함이 가득한 의사의 얼굴.

  분주한 간호사들의 움직임.

  움직임이 없는 아기.


  이 일곱 줄이 모모아빠가 당시 상황을 묘사한 전부였다. 출산 후 언젠가 내가 그날의 상황을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짧게 대답하고는 더 이상 떠올리기 싫다며 대답하기를 거부했다. 그리고 그날의 기억을 봉인해 버렸다.


  그 이후, 모모가 태어난 지 여섯 해가 넘도록 우리는 그날 일을 서로의 대화에 올리지 않고 있다. (모모아빠에게는 그간 비밀로 하다가 나의 첫 브런치 책 '망가진 인형'이 브런치 메인에 오른 후에야 공개했지만, 그는 출산 당일의 이야기부터는 읽지 못하고 접어두었다. 그때와 다시 마주하기에는 아직 용기가 더 필요하다고 했다.)






  모모아빠는 천생이 착하디 착한 사람이다.

  우리는 이 일이 있기 5년 전, 캐나다에서 만났다. 같은 수업을 듣던 우리는 우연한 기회로 친해졌고, 여행이라는 같은 관심사로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모모아빠는 내가 만난 어떤 사람보다 다정했다. 나를 만나는 날은 항상 꽃을 선물해 주었고, 한국 음식을 그리워하는 나를 위해 요리도 자주 해주었다. 감정기복이 심해 내 기분이 양 극단을 치달아도 단 한 번도 짜증을 내거나 화내는 일도 없이 항상 묵묵히 곁에 있어주었다.



  여행으로 빅토리아에 갔던 때였다. 동물이라면 사죽을 못쓰는 나는 물개를 만나 먹이를 줄 생각에 잔뜩 들떠있었다. 20달러를 내고 물고기 다섯 마리를 사서 물개가 나온다는 물가 다리 위에 앉았다. 물속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물개 없나 봐..."


  다리에 엎드려 연신 물속을 들여다보고 있는 나에게 누군가가 물고기를 들고 기다려보라는 말을 해주었다. 나는 그가 들고 있던 접시에서 물고기 한 마리를 꺼내어 물가 쪽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아무것도 없던 물속에서 갑자기 거짓말처럼 물개 한 마리가 쏙 얼굴을 내밀었다. 흥분한 나는 손에 쥔 물고기를 얼른 물개 입 가까이로 가져갔고 물개는 몸을 위로 솟구치더니 내가 내민 물고기를 받아먹었다! 나는 심장이 콩닥거렸다. 내 눈에는 오로지 물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나는 연신 그에게 손을 내밀었고, 그는 내 손에 물고기를 한 마리씩 건네주었다.


  “또 줘.”

  눈은 물개를 향한 채 몇 번째인지 모를 손만 뒤로 내밀며 그에게 말했다.

  

  “이제 없어. 다섯 마리가 끝이야.”

  “뭐?”


  나는 그제서야 고개를 돌려 그가 들고 있는 빈 접시를 보고는, 이 꿈같은 순간이 이렇게나  빨리 끝났다는 아쉬움에 어쩔 줄을 몰랐다. 우리에게 먹이가 없는 것을 확인한 물개 역시 다시 스르르 물속으로 사라졌다. 너무 아쉬웠다.


  우리는 비린내가 나는 손을 씻으러 화장실로 갔다. 비누로 손을 을 때에서야 비로소 그가 물개에게 물고기를  마리도 주지 못했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화장실에서 나온 나는 그에게 내가 너무 흥분하여 내가   버린 줄도 몰랐다며 사과했다. 그리고 괜찮다는 그의 손을 잡고 다시 먹이를 사러 갔다. 그새 가게 문이 닫혀 있었다. 우리가 먹이를   가게 주인이 아직 물개가 있냐고 물었던  기억났다. 해가 져서 물개가 돌아가기 , 우리가 마지막 손님이었던 것이다.



  그 후 나는 그와 빅토리아 여행 이야기를 할 때면 그때의 '물개 일'을 꼭 다시 사과하곤 했다. 물개에게 먹이 주기란 나에겐 엄청나게 중대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미안해하는 나에게, 그는 항상 '난 안 해도 상관없었어'라고 대답해 주었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덧 먼 일이 되어 우리가 그때의 이야기를 하는 빈도는 현저히 낮아졌고, 그 추억 또한 점점 기억에서 잊혀갔다.





  나의 출산일. 그날, 우리가 기대하던 기쁨은 산산조각이 났다. 나는 모모, 그리고 모모아빠에게 겪지 않아도 좋을 일을 겪게 했다. 그날 내가 수술해 달라고 하지 않았더라면 모든 게 달라졌을까.


  모모의 사진을 되돌려보다 다시 마음이 아파진 나는, 일하고 있을 모모아빠에게 긴 카톡을 보내었다. 모모아빠에게 아기 탯줄 자르며 아빠가 됨을 실감하는 감격스러운 순간을 선물해주고 싶었는데, 그 흔한 경험조차 하지 못하게 해서 미안하다는 내용이었다.


  곧 모모아빠에게서 답장이 왔다.


  “아니. 난 원래 물개 밥 주는 것도 안 하고 싶었고, 탯줄도 안 자르고 싶었어.”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이렇게 해주는 그를, 얼른 만나 안아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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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망가진 인형”에 계속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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