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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날로그 육아 Mar 03. 2023

아빠의 빨간 맛 육아 체험기

16 육아가 체험이라면 좋겠지만

  모모를 데리고 와서 처음 맞는 아침. 어제는 갑작스러운 육아로 인해 정신없이 하루가 가버렸고, 이제 오늘부터가 정말 모모와 함께하는 조리원 생활의 첫날이다.


  새벽에 퇴근한 모모아빠는 모모를 보러 아침잠도 마다하고 조리원으로 달려왔다. 조리원에는 신생아실을 청소하고 소독하는 시간에 엄마들이 각자의 아기들을 방으로 데려가게 하는 모자동실 시간이 있었다. 나는 어제 이미 여섯 시간의 길고 긴 모자동실 시간을 체험했던 터라 그 시간이 돌아오자 살짝 긴장했지만 모모아빠는 그저 들떠있었다. 뭐랄까, 모모아빠는 모자동실 시간을 '아기에게 우유도 주고 기저귀도 갈아줘 보고, 마음껏 안아도 보고 만져도 볼 수 있는 체험’이라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고나 할까. 생각해 보니 결혼하기 전, 모모아빠에게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는지 보려고 고양이 카페에 같이 갔던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고양이들을 만지기도 하고 놀아주기도 했던 그런 걸 상상하는 것 같았다. 나는 모모를 안은 나를 종종거리며 따라오고 있는 모모아빠가 곧 맛보게 될 ‘빨간 맛’을 떠올리며 슬며시 웃었다.


  “모모 안고 있어도 되지?”

  방에 들어와 작은 아기 침대에 막 뉘어놓은 모모를 모모아빠가 굳이 안겠다고 한다.


  “그럼. 안아보고 싶으면 안아봐”

  “잠깐만…”

  모모아빠는 자신의 두 팔을 왼쪽으로 했다가, 이내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다시 오른쪽으로 했다가 하면서 알 수 없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뭐 해?”

  “어떻게 안아야 할지 고민 중이야.”

  “… 그냥 안으면 돼.”


  나는 모모를 침대에서 안아 올려 모모아빠에게 건네주었고, 얼떨결에 모모를 안아 든 모모아빠의 모습은 그때 그 고양이 카페에서 내가 건네주는 아기 고양이를 받아서 들고 어찌해야 할지 몰라 부들부들 떨던 모습과 아주 그냥 똑같았다.  


  “자, 우유도 먹여봐.”

  “잠깐만, 모모 다시 안아봐. 이거 좀 하고.”

  모모아빠는 수유쿠션을 허리에 둘렀다.


  “그거 안 해도 돼. 그거 모유수유 할 때 하는 거야.”

  “아니, 왠지 해야 할 것 같아.”

  비장하게 수유쿠션을 두른 모모아빠가 다시 모모를 받아 안아 수유쿠션에 눕힌 뒤 젖병을 물렸다.


  “잠깐만, 이거 어떻게 하는 거지? 자세가 안 나오는데… 잠깐만…”

  뭔가 좀 많이 이상하다 싶었더니 모모아빠는 두 팔이 꼬인 기괴한 자세로 젖병을 물리고 있었다.


  “아니… 잠깐만… 이게 아닌 거 같은데…”

  두 팔의 위치를 바꾸면 아주 편안한 자세가 된다는 걸 알면서도, 차마 모모 입에 물렸던 젖병을 떼지 못한 채 꼬인 팔을 부들부들 떨며 우유를 먹이고 있는 모습에 나도, 모모아빠도 웃음이 터졌다. 결국 모모아빠는 모모에게 젖병 한 번 물리고는 침대에 널브러졌다.


  “아니, 아직 누우면 안 되는데.”


  나는 모모아빠를 일으켜 앉혔다. 기저귀랑 속싸개 ‘체험’이 남아있었다. 모모아빠가 몇 번째일지 모를 '잠깐만'을 외친 뒤 휴대폰을 꺼냈다. 그리고는 어제 보던 게 있는데 다시 한번 봐야겠다며 영상을 하나 틀었다. 뭔가 싶어서 화면을 들여다보니 '아기 속싸개 하는 법'이 나오고 있었다. 이런 걸 찾아봤다니… 웃기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이런 준비까지 한 모모아빠의 세심함에 놀라기도 했다. 영상 보기를 마친 모모아빠는 마치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의 표정으로 모모의 속싸개를 풀었다. 그리고 기저귀와 마주하자 이내 다시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거 어떻게 벗기는 거지…? 그냥 바지처럼 벗기면 되나?”


  웃음을 참으며 지켜보려다가 정말 기저귀를 바지처럼 벗기려는 모모아빠를 얼른 제지하고 기저귀에 붙은 찍찍이의 존재를 알려주었다. 기저귀는 예습을 안 했구나. 어찌어찌 기저귀를 간 모모아빠는 어제의 나처럼 기저귀 테이프 양쪽을 수십 번씩 뗐다 붙였다 하는 과정 끝에 기저귀 채우기 단계를 마치고, 마침내 속싸개 단계에 이르렀다.


  “어? 어? 이거 하려면 모모를 뒤집어야겠는데? 그래도 돼…?”

  “뭔 소리야…”


  나는 다시 한번 웃음이 터졌다. 아기고양이도 제대로 못 안아서 허둥지둥하던 그가, 그 모습 그대로 아빠가 된 것이다. 조리원 2주, 산후도우미 2주, 그리고 그 뒤부터는 모모아빠가 육아휴직을 써서 나와 모모를 돌봐 줄 예정이었는데, 이런 상태라면 육아휴직이 아무 의미 없을 것 같다. 모모야, 우리 어떡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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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 북 "망가진 인형"에 계속 이어지는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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