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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날로그 육아 Mar 07. 2023

가장 가까운 사람이 가장 상처를 준다 I

18 가깝고도 먼 친정엄마

  출산 직후, 그리고 하루가 지나도록 나는 모모의 상태에 대해 나의 출산 담당의와 모모아빠에게서 조금씩, 그리고 모호하게 들었던 터라 저산소증으로 처치를 하다 기흉이 생겼고, 출산 과정에서 머리에도 손상이 있었다는 사실은 그저 내 머릿속에 단편적인 조각으로만 들어있는 상태였다.

  

  그 조각이 맞춰진 것은 그로부터 이틀 뒤였다. 그동안 하고 싶은 수 만 가지 말들을 꾹꾹 눌러 참고 있던 엄마가, 내가 대화할만한 상태가 되자마자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나는 무슨 말을 하고 무슨 말을 하지 않아야 할지 가늠도 하지 못한 상태로 내가 진통으로 병원에 왔던 순간부터 모모가 대학병원에 가서 처치를 받은 때까지의 뒤죽박죽 섞여있는 기억의 조각들을 하나씩 꺼내었다. 심각한 표정으로 내 얘기를 듣던 엄마가 갑자기 괴로운 표정으로 얼굴을 감싸더니 말했다.


  “그럼 수술하려는 사이에 애가 내려와서 산도에 낀 걸, 다시 억지로 위로 끄집어 올려서 빼내었다는 말이네?"   

  그리고 뒤이어 기나긴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서 흩어져있던 조각들이 완벽히 맞추어졌다. 그리고 그 조각들 위로 그날, 수술실에서의 상황이 정확하게 그려졌다. 억지로 꺼내어지는 모모의 모습, 그리고 숨이 멎은 채 급히 이송되는 모모의 모습... 그리고 내가 직접 본 망가진 인형 같았던 모모의 모습까지...


  나는 가슴에 불덩이가 올라오는 걸 느꼈다.


  "수술은 누가 해달라고 했노?"

  "내가."

  “... 그걸 못 참겠더나?”


  촤악. 기름이 쏟아졌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 편일 거라 생각하던 이가 붉어진 눈으로 나를 향해 힐난과 원망을 쏟아내던 순간, 내 가슴속에서 갈 곳을 찾지 못하고 이글거리던 불덩이가 터져버렸다. 나는 오열을 했다.


  “모모가 그렇게 돼서 지금 제일 아픈 건 나라고! 그런데 왜 날 비난해!!!! 생각하지도 못하고 있었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걸 왜 들춰 내!!!”


  나는 엉엉 울면서 엄마에게 원망을 쏟아냈다. 나중에라도 알게 될 사실이었지만, 엄마가 나로 하여금 그 사실을 알게 하는 그 과정이 너무 과격했다. 굳이 '네가 참지 못해서'라는 말을 직접 하지 않아도 충분히 그 무게에 짓눌려 있는 나였다. 너무 괴로웠다. 엄마는, 엄마라는 사람이, 왜 내 마음을 이토록 아프게 할까. 나는 가슴을 치며 울고 또 울었다. 엄마가 뭐라 변명의 말을 했지만 나는 소리를 지르며 그 말을 듣지 않았다.


  그 순간 병실 문이 열렸다. 병실로 들어선 시어머니의 놀란 눈과 마주쳤다. 나는 황급히 돌아 앉아 눈물을 닦았다.


  “왜 울고 있노… 몸은 괜찮나?”


  출산 전부터 시부모님은 아기를 낳고 퇴원해서 오면 집으로 보러 오시겠다고 했었다. 병원으로 보러 와서 불편을 끼치고 싶지 않다는 것이 그 이유였는데, 우리 부부는 시부모님이 그동안 출산 준비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것과는 별개로 그 말에 적잖이 서운해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리고 출산을 하고 모모가 신생아중환자실에 갔다는 소식에도 모모아빠가 괜찮을 거라 한 말을 정말로 믿으신 건지, 아니면 오셔봤자 상황이 달라질 게 없다는 판단이셨는지 시부모님은 오지 않으셨다. 그리고 출산 이틀 뒤인 오늘, 시어머니 혼자 올라오신 것이다.


  상황을 궁금해하시는 시어머니에게 나는 방금 친정엄마가 완벽히 조각을 맞추어 준 그날의 이야기를 해드렸다. 내가 수술을 해달라고 했다는 얘기도 숨기지 않았다. 이미 가슴이 터질 대로 터져버려서, 더 이상 어떤 비난을 받는다고 해도 아프게 느껴지지 않을 것 같았다.


  “에그…”


  시어머니는 언짢으신 표정이었다. 내가 수술을 해달라고 했다는 대목에서 언짢으신 건지 모모의 상태가 걱정되어 나온 표정인건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시어머니는 그 뒤에 어떤 말도 더 붙이지 않으셨다.



  그리고 곧, 친정엄마가 부른 외가 식구들이 줄줄이 도착했다. 나는 먼 길을 와주신 이모가족과 외삼촌가족에게 와주셔서 감사하고, 아기를 못 보여드리는 상황에 죄송함을 전하며, 마음속으로는 이런 불편한 상황을 만든 엄마를 원망하고 또 원망했다. 힘든 내 손을 잡아주고 위로를 해주는 친척들에게 온전히 감사하지 못하는 이 상황은 결코 내가 기대하던 상황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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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 북 "망가진 인형"에 계속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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