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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날로그 육아 Mar 09. 2023

가장 가까운 사람이 가장 상처를 준다 II

19 내 남편의 어머니

  한편, 모모아빠와 잠깐 나갔다 들어오신 시어머니는, 그 먼 길을 오시고도 당일 내려가시겠다고 했다. 친정엄마와 내가 만류했다.


  “어머니, 오늘 올라오셨는데 어떻게 바로 내려가세요. 저희 집에서 주무시고 천천히 가세요. 내일 모모아빠랑 모모 면회도 가보시고요.”

  “그래요, 사돈, 아들 집에 왔는데 주무시고 가세요.”


  그 말에 시어머니는 잠깐 다시 생각하시는 듯했다.   

  "... 그럴까요?"

  "아니요, 엄마. 그냥 빨리 내려가세요."


  시어머니가 내려가겠다는 말을 번복하려 하자 모모아빠가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어머니의 등을 떠밀었다. 그러자 시어머니도 이내 표정이 굳어지시더니 가방을 챙겨드셨다. 엄마와 나는 당황스러웠다. 모모아빠가 왜 저러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순간, 기억의 한 구석에서 '이런 비슷한 순간이 있었는데...'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언제였는지 떠올려보려고 애썼으나 좀처럼 생각이 나질 않았다.


  결국 시어머니는 그 길로 내려가셨다. 나는 시어머니를 배웅하고 온 모모아빠를 타박했다.


  “걱정돼서 먼 길 오셨는데 어머니한테 왜 그래?”

  “엄마가… 하… 그럴 만한 일이 있었어. 나중에 얘기하자.”







  시어머니의 종교.


  결혼 후에 알게 된 사실이었다. 어린 남편의 기억 속에는 엄마와 아빠의 다툼, 엄마의 부재, 억지로 엄마 손에 끌려 다닌 나날들처럼 그것과 관련하여 좋은 기억이란 하나도 없었다. 그의 가족은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는 가정'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그것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피하고 살아가는 것을 택했다. 밝아 보이는 가족들의 마음속에 하나같이 커다란 생채기가 하나씩 나있음을,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가족을 설득하기는 포기하신 시어머니가 이상하게도 나에게는 당당하셨다. 결혼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시어머니는 신혼집에 혼자 있던 나를 불쑥 찾아와, 요절하신 우리 아빠를 언급하며 내가 당신과 같은 믿음을 가질 것을 요구하셨다. 결혼 전에 몇 번 뵈었었지만 내 앞에서 이렇게 많은 말씀을 하시는 것도, 이렇게 의지가 담긴 어투로 말씀하시는 것도 처음이라 너무 당황스러워 제대로 거절도 못하고 있을 때, 마침 일하고 있던 남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뭐 하고 있냐는 질문에 '어머니 오셨어. 아니, 혼자...'라고 대답하자 남편이 당황한 목소리로 당장 시어머니를 바꿔달라고 했다. 시어머니에게 건네준 수화기 너머로 남편의 울음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하지 마세요. 하지 마세요, 제발. 그냥 내려가세요."


  나는 결혼 전에 그런 내막을 나에게 알리지 않은 것에 대해 남편을 힐난했고, 남편으로 하여금 사태를 정리하게 했다. 시아버지까지 나서서 '가족에게 종교를 강요하지 않기'로 약속을 받은 뒤 그 일은 조용히 덮였다. 나는 그 종교에 입교할 당시 시어머니가 아주 많이 외로웠고, 유일하게 기댈 곳이 그곳이었으리라 생각하며 시어머니의 종교활동을 이해하기로 했다. 그렇게 '종교 사건'은 잠잠해졌다. 분명히 언제든 불쑥 다시 솟아 나올 문제였지만 그의 가족, 그리고 나는 그것을 그저 잠깐 눈에 보이지 않게 가려둔 것이었다.







그리고 모모가 망가진 지금, 그 문제는 다시 불거졌다. 시어머니가 모모아빠에게, 너희 둘이 지은 죄가 많아 모모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으니 신께 비는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우리 집에 가서 상을 차리자고 하셨다고 했다. 모모아빠가 자신의 엄마를 등 떠밀어 보낸 게 바로 그런 이유였다.


  모모아빠에게 떠밀려 가신 후에도 시어머니는 포기하지 않으셨다. 기도 상 차리는 거야, 가족의 안녕을 빌기 위해 정화수를 떠놓고 비는 어미의 마음이라 생각하고 이해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 시어머니는 모모의 이름을 지었다며 연락하셨다. 출생신고를 이미 마쳤다는 말에 당황하시며, 꼭 이 이름으로 해야 하니 신고한 것을 '취소'하라고 하셨다. 취소가 될 리도 없고 바꿀 마음도 없었지만, 모모에게 좋은 이름이라고 하니 그래도 보기나 하자며 받아 본 이름은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한자로 지어진 이름이었다.


  결혼 후 처음으로 맞은 내 생일에 축하 연락조차 없으셔서, 남편이 시어머니께 며느리 생일을 잊으신 거냐 연락드렸더니 '아버지를 떠나보낸 죄인이라 생일 같은 건 챙기면 안 된다'는 대답이 돌아왔을 때에도 그 종교가 참 싫었었다. 그리고 그런 말씀을 하시는 시어머니가 원망스러웠다. 그 말은 매년 내 생일 무렵마다 생각나서 내 가슴을 후벼 파곤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자라면서 아빠 없이 자란 설움을 참 가지각색으로 겪었던 터라, 이 역시 결혼 후 또 새롭게 겪는 설움 중에 하나라고 받아들이며 살려고 했다. 아마 나를 건드리는 것은 몇 번이고 더 참았을 것이다.


  그런데 어떤 인간이 무슨 마음으로 지었을지도 모르는 엉터리 같은 이름을, 내 소중한 아기에게 주려고 하는 것에는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올라왔다. 나는 시아버지께 문자를 보내어 시어머니가 하신 말들을 전하고 그동안의 서운함을 표했다. 그리고 시아버지께 보낸 그 문자를 캡처해서 시어머니께도 보냈다. 그리고 한 문장을 더 덧붙였다.


  "모모는 꼭 살아날 거고요, 모모가 퇴원해서도 부모님을 뵐 일은 없을 겁니다."



  모모아빠와 나, 우리는 가만히 내버려 둬도 충분히 힘든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가장 가까운, 우리를 낳아준 엄마라는 사람들이 우리의 마음을 가장 찢어놓고 있었다. 우리가 바란 것은 그냥, “아무 걱정 마라, 다 잘 될 거다” 하며 자식을 잃을까 봐 두려워서 울고 있는 우리를 안아주는 것, 그게 다였다. 우리가 눈물을 삼키며 “괜찮아요”라고 하는 대답이 진짜 괜찮아서가 아니란 걸, 왜 가장 가까운 이들은 몰랐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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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 북 "망가진 인형"에 계속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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