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의 탐방!
7. 하얀 집, 중첩의 방
-무의식의 탐방!-
등장인물: 루미나, 샘, 에드, 카일라
한밤중의 산길이 제법 익숙해진 루미나와 샘과는 달리, 카일라 에드 부부에게는 어두운 숲길이 여전히 낯설기만 했다.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 발이 걸려 넘어진 카일라는 결국 참았던 짜증을 터뜨리듯 꽥 소리를 지르며,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아! 난 못 가! 너무 간지러워! 덥고 땀나고 얼른 씻고 싶다고! “
카일라는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한 얼굴로 소리를 지르며 칭얼거렸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던 에드는 깊게 숨을 들이쉰 뒤,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다.
“자기야, 걷다 보면 우물 하나쯤은 나오겠지. 그때 씻자. 지금처럼 기운 다 빼면, 다들 지쳐서 우리만 두고 갈지도 몰라. 우리 둘 다, 이런 데선 길 잃기 쉬우니까… 조금만 더 힘내봐요.”
"에드… 나 도저히 못 걷겠어. 다리도 너무 아프고, 계속 걸려 넘어지는 바람에 여기저기 상처 투성이야. 나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카일라, 당신의 심정을 모르는 건 아니야. 그렇지만, 여기 두 분은 아까부터 당신 속도에 맞추려 애쓰고 계시잖아요. 우리 조금만 힘내서 걸어봐요. 내가 손 잡아 줄게. 어서, 일어나…"
에드는 풀숲에 주저앉아 있던 카일라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고, 카일라는 루미나와 샘의 눈치를 살핀 뒤 그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더 이상 바닷가에서 만났던 생기 넘치던 모습이 아니었다.
싸우고, 울고, 투덜대고, 서로를 위로하는 부부의 인간적인 모습을 마주한 샘이 루미나를 향해 말했다.
“희로애락… 저 부부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아, 저런 것이 희로애락이구나! 하고 단박에 알 거예요. 안 그래요? 루미나?”
샘은 루미나를 슬쩍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루미나는 그런 샘의 말에 웃음을 참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껄껄 웃기 시작했다.
“왜 웃죠?”
카일라가 루미나의 웃음에 이유를 알 수 없다는 듯 똘똘한 눈으로 그녀들을 바라보았다.
루미나와 샘이 카일라를 바라보았을 때, 그녀는 넘어져 긁힌 흔적들로 가득했다. 머리는 산발이 된 채, 마치 꽃으로 장식한 듯 낙엽들이 이리저리 꽂혀 있었다.
카일라의 모습과 샘의 말이 겹치자, 루미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입과 코를 손으로 막은 채, 숲 속으로 달려갔다. 그녀는 한동안 나무 뒤에 숨어 정신없이 웃기 시작했다.
샘과 부부는 웃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몇 번이나 크게 숨을 내쉰 루미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땅만 보며 슬며시 걸어 나왔다.
“왜 그래요? 루미나?”
샘은 무표정했고, 카일라는 웃음 버섯이라도 먹은 것처럼 보이는 루미나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에드는 상황을 눈치챈 듯, 카일라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천천히 훑기 시작했다.
“피식—”
그의 웃음이 담고 있는 의미는 루미나와는 전혀 달랐다. 에드의 눈엔 흙투성이에 산발이 된 카일라조차도 그저 귀엽기만 했다.
샘과 카일라는 웃음의 뜻을 도무지 알 수 없다는 듯 서로를 마주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웃음이 어느 정도 진정된 루미나는 카일라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잠시 주춤했지만, 루미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머리에 꽂힌 나뭇잎들을 조심스럽게 정리해 주었다.
카일라는 마치 보살핌을 받는 예쁜 화분 같았고, 경계하던 그녀도 어느새 차분해진 어린아이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다.
“내 머리에 뭐가 그렇게 많았어요? 그래서 웃었어요? 호호호. 부끄러워라. 더 없어요?”
그녀는 그들이 웃음을 터뜨린 이유를 이제야 깨달은 듯 수줍게 웃어 보였다.
에드도 루미나와 함께 카일라의 옷에 묻은 흙먼지를 살며시 털어 주었다.
샘은 숲 속으로 들어가 둥근 풀잎 몇 개를 꺾어 왔다. 그녀는 깨끗한 바위 위에 풀잎을 올려놓고 즙이 나올 때까지 정성스레 빻았다. 그리고 카일라에게 다가가 상처마다 즙을 발라 주었다.
그녀들의 모습을 바라본 루미나는 따뜻한 엄마의 미소를 지었다.
"질경이예요. 지혈 효과도 있고, 해독하는데도 쓰인다고 하더라고요. 어릴 적 엄마에게 배웠어요. "
"어머, 샘의 엄마는 자연 박사셨나 봐요. 약초학 같은 것처럼요. "
“시골에서 태어나셨다고 들었어요. 가끔은 천재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고, 이렇게 많은 풀들 중 딱 알아보는 게 정말 신기하죠?”
“호호호. 샘도 알고 있으면서. “
“저는 아는 풀이 몇 개 안 돼요. 그래도 혹시 강가나 계곡에 가게 되면 꼭 씻어내세요. 상처는 깨끗해야 감염이 안 되니까요.”
"고마워요. 모두! 저 이제! 힘이 나요! 갈 수 있겠어요! "
카일라는 모두의 진심에 힘을 얻은 듯 다시 활기를 찾아, 두 팔을 힘차게 흔들며 걷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 앞에 나무로 지어진 하얀 외국식 집이 모습을 드러냈다. 호기심에 이끌린 그들은 조심스레 창문 앞으로 다가가 안을 들여다보았다.
“뭐가 좀 보여요? 에드?”
"아뇨… 안이 너무 어두워서 안 보이네요…"
"샘은 뭐가 좀 보여요? "
"글쎄요, 난 밤눈이 좀 어두워서요. "
그때 카일라가 문고리를 잡고 덜컥 열어젖혔다.
“그냥 이렇게 들어가면 되지 뭐?”
카일라는 생기를 되찾은 듯한 표정으로, 어두운 곳도 두렵지 않다는 듯 집으로 들어섰다.
그 뒤를 에드와 샘이 차례로 뒤따랐고, 마지막으로 들어선 샘이 문을 닫는 순간, '탁' 하는 소리와 함께 거실에 환한 불빛이 켜졌다.
“어머! 깜짝이야!”
카일라는 불이 순식간에 켜지자, 자신이 조명을 켰다는 사실에 깜짝 놀란 듯했다.
그녀는 에드의 어깨를 두 번 톡톡 치며, 거실 끝쪽에 있던 부엌을 가리켰다. 에드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인 뒤 부엌에 있던 커다란 냉장고로 향했다.
샘은 피곤한 듯 거실 소파 위에 그대로 누웠고, 루미나는 위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살펴본 뒤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
“저는 위층에 가볼게요.”
“그래요! 에드랑 나는 먹을 게 있나 좀 살펴보고, 재료가 있으면 맛있는 요리라도 대접할게요. 여기까지 올 수 있게 도와줘서 고마워요. 정말.”
“요리요? 갑자기 배가 고픈 기분이 드네요. 그럼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에드는 한때 꽤 잘 나가던 셰프였어요. 그 지역에선 꽤 유명했죠. 물론 루미나나 샘은 잘 모를 수도 있지만...”
"이 봐, 카일라. 난 지금도 잘 나간다고! "
부엌에서 모든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에드가 큰 소리로 말했다.
"지금은 은퇴했지만, 여전히 저만의 요리사랍니다."
카일라는 부끄러운 듯 그녀들을 향해 미소 지어 보였다.
그렇게 대화를 마친 루미나는 2층으로 향했다. 도착한 2층에는 수많은 방들이 있었고, 그녀는 두 눈을 비비며 두세 겹으로 겹쳐 있는 기묘한 방 구조를 바라보았다.
“어? 이런, 너무 피곤했나 보네. 방이 두 개 세 개로 보이고 말이야. 정신이 하나도 없네…”
그녀는 2층 방들의 구조를 멍하니 바라보다, 눈이 피로해진 듯 계단을 내려왔다.
루미나는 거실 소파에 누워 있던 샘 곁으로 다가가 물었다.
“샘, 나랑 저녁 먹고 2층에 좀 같이 가요.”
“왜요… 괴물 있어요?”
“아이~ 괴물은 나한테 꿈쩍 못해요. 알면서…”
그들은 집 안의 따스함이 피부 속으로 천천히 스며드는 것을 느끼며, 농담 섞인 대화를 이어갔다.
“알죠~ 루미나는 퇴마…아, 아니다. 영.. 성?… 영적 능력? 영매씨잖아요.”
“영매씨는 아니죠. 전 루미나고, 타고난 영매죠. 꿈꾸는 영매.”
샘은 루미나가 앉은 쪽으로 고개를 돌려, 짓궂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왜요.. 제 얼굴에 뭐 묻었어요?”
“아뇨, 그냥 루미나의 체력도 그다지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부엌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카일라는 주걱에 수프를 조금 담아, 그녀들 쪽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네?! 그럴 리가요? 두 분의 체력이 좋지 않으면, 저희는 어떻게 살아가요?”
카일라는 소파에 앉아있던 루미나의 입으로 주걱을 내밀었다.
"맛봐요. 다른 음식들도 곧 완성될 거예요. "
루미나는 주걱에 담긴, 솔솔 피어오르는 수프를 맛보며 눈을 번쩍 뜨고 말했다.
“음~ 와! 정말 맛있어요! 갑자기 피로감이 싹 사라지는 기분이 들어요! 대단한 맛이에요! 에드!”
루미나는 부엌을 향해 큰 소리로 말했다.
샘은 너무 지쳐, 맛조차 볼 힘이 없어 보였고, 카일라는 그대로 부엌으로 향했다.
"내 체력이 좋지 않다고요? 에이! 샘, 난 이곳을 오면서 쉬지도 못하고 왔어요. 쪽 잠은 사람을 더 피곤하게 한다고요. 그리고 샘도 나랑 비슷한 체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요? 더 안 좋거나. 하하하"
“내 생각에는 루미나가 힘들면 나도 힘들고, 내가 힘들면 루미나가 힘든 것처럼, 서로의 기운이 같은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해봐요…”
“맞아요. 아무래도 샘이 기분이 좋아 보이면 저도 좋고, 안 좋아 보이면 저도 괜히 마음이 무겁더라고요.”
그녀들의 대화 사이로 불쑥 에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 분 우정이 대단한 걸요?”
요리가 완성된 듯, 에드와 카일라 부부는 손을 맞잡고 부엌에서 걸어 나왔다. 그러곤 장난스럽게 서로의 손을 양옆으로 활짝 벌리며, 마치 샘과 루미나를 정식으로 초대하듯 익살스럽게 말했다.
“잘 오셨어요. 어서 들어오세요! 오시는 길은 위험하지 않으셨나요? 저의 집이 아주아주~ 깊은 숲 속에 틀어박혀 걸어오는 길 밖에는 없답니다! 다만, 저희 집에는 다행히도 음식 재료가 넘쳐나지요! 보세요! 멧돼지 고기도 있습니다!”
에드의 농담 섞인 장난에 그녀들은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이 채 가시기도 전에, 그들은 부엌으로 향했고, 식탁 위 가득 차려진 음식들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에드는 저녁 식사 내내 자신이 준비한 ‘하이클래스급’ 농담을 선보일 채비를 단단히 마친 듯했다.
“저 고기! 이런 곳에 고기라니, 마트도 없는데 말이죠. 사실 저건... 어제 카일라와 내가 직접 사냥을 하다 잡은 고기랍니다. 그리고 바질과 각종 채소들은 여기 샘이 숲 속에서 이제 막 꺾어다 주었고요. 그리고 이 물은…"
"자기야! 그만해, 아휴~ 웃어주면 아주 하루 종일 하려 들어. 에드, 오늘 충분히 즐거웠으니까 이제 당신이 만든 이 고급스러운 요리도 즐겨보자고요. "
"아, 알았어. 그럼 나도 좋지! "
루미나와 샘은 마치 부모님과 한 테이블에서 맛있는 저녁을 함께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부부는 여전히 티격태격했지만, 샘은 더 이상 그 상황이 불편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 어느 때보다 즐거웠고 맛있게 식사를 했으며, 부부의 여행 스토리에 흐뭇하게 웃었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던 루미나도 그들과 함께 미소 지었다.
저녁 식사를 마친 그들은 캐모마일 차를 손에 든 채,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랐다.
모두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마치 착시처럼 비현실적이었다. 그녀들은 믿기지 않는 듯 눈을 비비며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런 모습을 본 루미나는, 조금 전 자신이 본 것이 헛것이 아님을 확신했다.
“정말 이상한 구조죠?”
“어쩌죠, 들어가도 되는 건지 모르겠네. 괜히 들어갔다가 못 나오는 거 아니에요?”
“샘도 어디 갇혀있었다고 했죠?”
“아.. 아니.. 그런 말은 아니었어요. 뭐 갇혔다기 보단 스스로 가지 않았다고 보는 게…”
샘은 말 끝을 흐리듯 말했다.
카일라와 에드는 겹쳐진 방들 중 오른쪽 끝, 가장 편안해 보이는 곳으로 향했다.
샘과 루미나는 중앙에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샘, 나는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 볼게요. 방안에 또 방이 있어요.”
"음, 들어갔다가 길 잃지 않게 조심해요. 난 좀 쉬고 있을 게요."
"그래요, 그럼. "
루미나는 중첩된 방마다 다른 테마로 배치된 가구를 보며,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기이한 방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녀는 여러 방을 오가며 탐험하다가, 가장 마음에 드는 방을 발견했다. 그곳에는 나무 책장이 놓여 있었고, 그 속엔 알록달록한 책들이 가득 꽂혀 있었다.
책장이 놓인 공간을 지나자, 침대만 깔끔하게 놓인 하얀 방과 그 옆으로 자리한 고풍스러운 욕실이 나타났다.
오랜만에 현대식 욕실을 만난 그녀는 수도를 틀고, 이어서 변기의 물도 내려보았다.
"꼭 집 보러 온 사람 같네. 와~ 이거 밤새 구경해도 다 못하겠는데? "
그녀는 중첩된 방들을 하나씩 밀어보며 끝없이 이어지는 공간을 가만히 응시했다. 곧 피로감이 몰려왔고, 방들 사이에 있던 하얀 방에서 씻는 것도 잊은 채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침대는 푹신했고, 이불은 막 세탁한 새 이불처럼 보송하고 부드러웠다.
“루미나~ 루미나~ 어디에 있어요~"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잠에서 깬 루미나는, 문 쪽으로 이어진 방들 사이로 시선을 두었다.
"저 여기에 있어요! 왜요! "
"루미나, 그 안에 있어… 어? 어머, 에드! 이리 좀 와봐! 샘~ 샘은 뭐해요. 어서 일어나요! 여기 방들 좀 봐요! 루미나가 이 안으로 들어갔나 봐! 어머~ 너무 신기해!"
“어?! 하하하. 나 참…이런 방은 태어나서 처음 보네. 샘도 얼른 와서 밀어봐요.”
그들은 루미나가 있는 방까지 다가오며 감탄을 터뜨렸다. 그러다 루미나가 머물던 침실 옆쪽으로 중첩된 욕실을 발견한 카일라가 반가움에 소리쳤다.
“에드! 욕실이야!!! 빨리 와봐요! 샘도~ 우리 조금 있다가 이 욕실에서 샤워하면 되겠다! 너무너무 좋아! 이 타일 좀 봐, 에드. 수도꼭지도 완전 낭만적이지 않아? 고풍스럽고 너무 좋다. 바닥 타일! 어머머, 파랑 꽃이 그려져 있어! 너무 예쁘다!”
루미나는 그들이 침실로 들어오는 동안, 하얀 이불속에 계속 파묻혀 있었다. 그들이 그녀를 지나쳐 다른 방으로 향하려는 순간, 이불속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어디 가려고요? "
“어머머! 깜짝이야! 루미나 여기 있었어요? 호호호. 눈이 왜 이렇게 부어있어요. 꼭 갓 태어난 아기 같아. "
카일라는 루미나가 누워 있는 침대 옆으로 다가가 끝자락에 살포시 앉았다.
그런 그녀들에게 샘과 에드는 방 안쪽으로 더 들어가 보자는 손짓을 보냈다. 카일라는 피곤해 보이는 루미나와 잠시 눈을 마주쳤다.
"우리 어제 먹다 남은 고기들하고, 과일도 아직 다 먹지 못했잖아. 좀 더 여유 있게 커피나 한잔씩 들고 탐험해요. 어때요? "
"그럼, 그럴까요? "
샘은 그녀들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쉬움이 남은 에드는 앞 문을 열고 다음 방을 들여다본 뒤에야 천천히 돌아섰다.
카일라는 루미나의 방 근처 욕실로 가장 먼저 들어갔다. 그녀가 목욕을 마친 후, 루미나와 샘이 차례로 욕실로 향했다.
목욕을 마친 그녀들이 1층 거실로 나왔을 때, 부엌에는 어제와 다름없이 멋지게 플레이팅 된 스테이크와 벌집 모양으로 가지런히 잘린 망고 조각들, 그리고 맛있게 구워진 초코 머핀과 호두 파이가 가득 놓여 있었다.
"에드는 어디 갔어요?"
"네, 방에서 잠시 쉬다가 씻고 출발하자고 하네요. 커피는 내가 내려 줄게요."
"그럼 에드는요?"
“에드는 급하게 먼저 먹었어요. 아까부터 탐험 준비한다면서 부엌 여기저기 뒤지고 천 조각도 모으고, 머핀이며 말린 고기, 바나나까지 다 챙기더라고요. 워낙 꼼꼼한 사람이거든요. 우리 둘 다 여행을 좋아하는데, 에드는 모험을 좋아하고 나는 안정적인 걸 좀 더 좋아해요. 같은 여행이라도 취향은 완전 반대죠.”
“그렇게 보이긴 했어요. 그런데 에드의 음식은 정말 특별한 것 같아요.”
“그렇죠?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재료마다의 풍미가 살아있어요.”
“이렇게 맛있는 음식들을 먹게 될 줄은 몰랐네요. 꿈의 숲에서 말이에요.”
“혹시… 여쭤봐도 될까요? 두 분이 걸오신 길은 저희 부부가 걸어온 길과 어떻게 다른지…”
카일라의 물음에 루미나가 대답을 하려 하자, 샘이 식탁 밑으로 그녀의 손을 꼭 잡아끌었다.
“아! 저희도 그냥 모험! … 모험처럼 오기는 했어요. 카일라. 여러 가지 일도 조금 있었고...”
“어머! 정말 재미있었겠다. 우리 부부는 이번 여정이 가장 모험적이었어요. 나는 짜증도 나고 울고 싶기도 했지만, 에드는 어제 잠들기 전까지 내일은 무슨 일이 있을까 하는 어린아이 같은 표정으로 방긋방긋 웃고 있었다니까요?”
“모험… 그렇죠? 모험은 언제나 신나는 법이죠… 두 사람한테는 말이에요.”
샘은 기어들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대답한 뒤, 포도알 하나를 입안에 넣고 오물거렸다.
그녀들은 식사를 마친 뒤 긴 대화를 나누었고, 차 한 잔씩을 손에 든 채 2층으로 향했다.
에드는 그들의 대화가 끝나기만을 기다리다 지친 듯, 곤히 잠들어 있었다.
“에드, 일어나 봐. 이제 출발해요~ 모험의 방으로! "
잠결에 깬 에드는 창가로 쏟아지는 햇살에 미간을 찌푸리며 비몽사몽 몸을 일으켰다.
“방? 무슨 방...”
“아침까지만 해도 그렇게 신나 하더니?”
“아, 꿈이었구나. 아니, 꿈을 꿨는데 말이야… 우리 집 마당에 커다란 사자 한 마리가 들어와 있는 거야. 너무 깜짝 놀라서 도망치려는데, 속 터지게 몸이 느려지기 시작하더라고. 어찌나 무섭던지…”
“에드는 이럴 때 보면 꼭 아이 같다니까? 귀여워. 이긍~”
카일라는 에드의 양볼을 살짝 꼬집고는 양옆으로 살짝 흔들었다.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샘은 피식 웃었다.
‘누가 누구 보러 아이라고 하는지…‘
“이제 출발!!”
에드는 침대에서 가볍게 털고 일어나며, 자신이 직접 준비한 보자기 도시락을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는 앞장서서 방들을 헤쳐 나가기 시작했다.
방 안으로 이어진 또 다른 방들에는 단 하나의 같은 인테리어가 없었고, 모든 방들이 특별하게 꾸며져 있었다.
그러다 카일라는 어느 방 앞에 멈춰 서서 말했다.
“에드! 여기 내 옷방 같지 않아?”
카일라의 말에도 에드는 들뜬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방탈출 게임이라도 하듯, 모든 방들의 기묘한 공간을 탐험하고 있었다. 정신없이 다음 방에 들어서려던 그는 문득 발걸음을 멈추고, 방의 구조를 천천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어.. 그래, 이 선반도 그렇고, 당신과 내 옷방이지.”
“이거 내 가방?! 무슨 명품이 이렇게나 걸려있나 했어. 정말 이상한 일이네… 여기 왜 우리 방처럼 꾸며져 있는 거야?”
“그러게 조금 섬뜩하기 하고, 갑자기 밖으로 나가고 싶어지는데?”
소년처럼 당당히 걷던 에드는 갑자기 겁을 집어먹은 아이처럼 주저하며, 그곳을 벗어나고 싶어 하는 듯했다.
“왜들 그래요.”
“이방 우리 옷 방이에요. 여기, 이 시계 하며 어! 저 가방도!”
"뭐... 명품 그런 건가 보죠?"
"아니 그게 아니라, 이 명품들이 외부세계 방에 있는 우리 거라고요. 그리고 지금 이 상황이 당황스럽고 조금 무섭기도 해요. "
"글쎄요. 저희도 이런 일은 처음이기는 하지만, 그전에 이 보다…"
"이보다 뭐요? "
샘은 루미나와 카일라 앞으로 나서며, 갑작스럽게 호들갑을 떨기시작했다.
"와! 진짜 무섭다. 우리 돌아가요! 더 가면 내 방도 나오겠네. 방도 안 치우고 나왔는데, 보시면 깜짝 놀라실 거예요. "
의 이야기를 들은 에드는 오히려 진정된 듯 벽 쪽으로 가 기대어 섰다.
“하하하. 샘이 그렇게 말하니 무서운 생각이 싹 사라지는데요?”
“아… 그게… 그러니까… 제가! 아까 전부터 화장실이 급했어요. 대장증후군 있거든요!”
“이런 이런, 샘. 숙녀 분이 아무 데서나 실례를 할 순 없죠. 돌아나가죠. 계속 가봤자. 끝없는 방들 뿐일 것 같으니.”
“맞아. 에드. 방 안으로 계속 들어가다 혹시 길을 잃고 나오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했거든.”
카일라는 출발 전부터 마음 한편에 자리한 불안을 꾹 눌러 참은 듯했다.
“자! 자! 그럼, 다들 참지 말고 돌아가자고요! 샘은 화장실에 가고, 카일라와 에드도 각자 있던 곳으로 가요.”
“그럼 루미나는 여기 혼자 있으려는 거예요?”
“네, 저는 계속 가보려고 해요.”
샘은 루미나를 바라보며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루미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부부와 샘 모두를 돌려보내는 듯한 시늉을 했다.
"얼른! 다들 나가요. 어서요. 그리고 제가 3일 정도까지 돌아오지 않으면, 찾으러 오셔도 되고 그냥 가셔도 돼요. 혹시 모르죠. 이곳에서 저의 꿈을 찾을 수 있을지도요. “
"간절함이었군요. 멋져요, 루미나. 그럼 우리 먼저 나가볼게요. 도저히 길을 못 찾겠다 싶으면 얼른 나와요? 덕분에 3일 정도 푹 쉬고 나갈 수 있겠네요. "
카일라는 루미나를 따뜻한 미소로 바라본 뒤 방을 나섰다. 모두가 그녀의 뒤를 따라나섰고, 샘은 손가락으로 밖과 안을 가리키며, 루미나에게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방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