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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꿈의 숲 06화

6화 옛 마을

흔들리지 않는 자여!

by 우산을 쓴 소녀
글, 그림: 우산을 쓴 소녀

6. 옛 마을

-흔들리지 않는 자여!-

등장인물: 루미나, 샘, 카일라, 에드


그들이 도착한 섬은 마치 한국의 조선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옛 마을이었다. 이런 갑작스러운 풍경 변화에 가장 신이 난 사람은 단연 카일라였다.


“꺄악!”

너무나 들뜬 나머지, 그녀는 에드의 손을 놓아버리고 소리를 질렀다. 그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방방 뛰는 모습이 꼭 아이처럼 느껴졌다.


“꺄악~ 너무 좋아! 이런 고풍스러운 곳! 너~~~ 무 좋아! 여보, 에드! 이리 좀 와봐요. 저기 초가집 보여요? 꼭 한국의 민속촌에 온 것 같지 않아요? 하룻밤은 여기서 보내요!”


“카일라, 진정 좀 해요. 이곳이 어떤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다들 잠들어 있을 시간이잖아. 좀 조용히 해요, 쉿!”


“에드, 나 지금 너무 행복해요! 꼭 이색 체험하러 여행 온 기분이야. 그런데 어떻게 진정할 수가 있어요? 이런 곳은 처음이잖아.”


“카일라, 알았어. 알았으니까… 조금만 조용히 갑시다.”


부부의 투닥거리는 모습을 지켜보던 샘은 불편한 기색을 내보이며 루미나를 바라보았다.


“루미나, 부러워요? 저런 모습.”


“네? 아… 아뇨. 그런 건 생각해 본 적 없어요. 부럽다거나, 이상하다거나… 왜요? 샘은 부러워요?”


“음, 방금까지 손 잡고 떨어지지 않으려 하다가도, 서로 의견이 조금이라도 맞지 않으면 금방 토라지거나 불편한 상황이 생기잖아요. 그러니까, 이랬다 저랬다 하는 거죠.”


“샘도 참 재미있어요. 난 그런 생각은 전혀 못 했는데, 그런 생각을 하고 계셨군요?”


“이건 내 열등감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지만, 저 사람들… 꽃길을 통해 이곳에 왔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저렇게 해맑은 표정으로 장난도 치는 거죠. 마치 꿈의 숲의 두려움보다는 우리를 더 경계하는 것처럼…”


“샘, 혹시 기분이 많이 안 좋아요? 아까 그 부부가 샘을 귀신 취급해서 마음이 상한 거죠?”


“아니에요, 전혀요. 나도 한때는 내가 귀신인가 싶을 때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이해해요. 그렇지만, 계속해서 저들과 함께 여정을 한다면, 이 불편한 마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아요.”


“샘, 우리 잠깐 눈 좀 붙이고 쉬어요. 그리고 이 마을 어딘가에 먹을 것도 있지 않을까요? 배가 아주 고프진 않지만, 왠지 뭐라도 함께 나누어 먹으면 서로 더 가까워지고, 그동안 있었던 일들도 자연스레 이야기하게 될 것 같아요.”


”난 그러고 싶지 않아요. 루미나는 그렇게 해요. 나는 여기서 좀 더 쉬다가 날이 밝은 대로 떠날 거예요. “


”그럼 저도 샘과 함께 떠나야죠. 함께 왔잖아요. 우린 이미 동료가 되었는걸요. 안 그래요? “


”그렇죠.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루미나. 그리고 전에 말했죠? 꿈을 찾게 되면, 즉시 외부세계로 나가도 된다고, 나도 이제야 말하네요. 루미나도 꿈을 찾게 되면, 더 이상 샘이란 사람을 잊고 앞으로 나아가야 해요! “


”샘과 함께 꼭 꿈을 찾을 거예요! 왜냐하면, 난… 이곳에 올 때까지만 해도 별다른 생각이 없었어요. 꿈에 대한 생각조차 없었죠. 그저 이끌리는 곳으로 걷다 보니 꿈의 숲에 와있었어요. 그런데 함께 여정을 하면서 마음에 다양한 변화가 일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어요. 아직은 그것이 무엇인지 명확히는 모르겠지만요. “


”루미나, 그 감정 절대 잊지 마요. 그리고 나도 루미나와 함께 꿈을 찾아 이곳을 나가길 바라요. “


루미나와 샘은 그동안의 여정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고, 그만큼 서로에 대한 우정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녀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의 꿈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있었다.


에드 부부는 여전히 티격태격했고, 말괄량이 같은 카일라는 어느새 초가집 앞마당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그러고는 마치 소풍 나온 아이처럼 이것저것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에드가 그녀를 말리려던 차에 그녀는 발을 헛디뎌 휘청거렸고, 장독대의 뚜껑을 붙잡은 채로 뒤로 발라당 넘어져 버렸다.


공중으로 떠오른 장독대의 뚜껑은 마치 슬로모션처럼 날아가더니, 마당에 놓여있던 평상 모서리에 부딪혀 그대로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에드는 평소처럼 꾹 참아보려 애썼지만, 그동안 쌓여온 불만이 결국 터져버렸다. 그는 카일라에게 다가가, 한층 높아진 목소리로 말을 쏟아냈다.


“카일라! 내가 분명히 말했잖아요! 응? 조심하라고 몇 번을! 당신은 사람의 말이 한쪽 귀로 들어가 한쪽 귀로 빠져나오지? 참…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

에드는 전에 없던 불안감에 휩싸인 얼굴로, 조각난 장독대의 뚜껑을 하나씩 줍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던 카일라는 조용히 바지를 털고 일어서며, 에드에게 다가갔다.


“이혼해!”


“뭐?”


“이혼하자고!! 한쪽 귀로 빠져나온다고?”


“카일라! 이건 명확히!! 당신이 꿈의 숲에 있던 물건을 망가뜨린 일이라고! 아니, 누가 봐도 잘못은 당신이 해놓고서 이혼? 나 참…”

에드는 답답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깨진 항아리 조각들을 하나하나 주워 평상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았다.


부부의 다툼을 지켜보던 샘은 그들의 모습이 더 이상 보기 싫다는 듯, 초가집 근처를 벗어나 홀로 걷기 시작했다.


루미나는 멀어지는 샘과 다투고 있던 부부 사이에서 어쩔 줄을 몰라하다 샘의 뒷모습이 사라지기 전, 그녀의 뒤를 빠르게 따르기 시작했다.


“샘! 같이 가요!! 헉헉… 샘 왜 이렇게 걸음이 빨라요. 휴~ ”

루미나는 샘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샘은 루미나의 모습을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루미나, 처음에 봤던 그 강단 있는 모습은 어디 가고, 남 부부 싸움하는데 껴서 어쩔 줄 모르고 있는 거예요?”

루미나는 샘의 말에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혼내려는 게 아니라, 저 부부 좀 봐요. 그냥 저렇게 싸우는 게 일상이에요. 딱 보면 알잖아요? 저 사람들은 꿈을 찾으러 온 게 아니라 여기저기 여행 다니면서 한 명은 사고 치고, 한 명은 수습하려고 온 것 같아요. 아마 계속 같이 있으면, 루미나나 나나 저 사람들 때문에 꿈 찾기는커녕 싸움만 말리다 끝날 거예요.”


“거기까지 생각을 못했네요. 그래도 다투고 있으니까…”


“그래서요? 말리려고요? 말려서 뭐 하려고요? 그거 알아요, 루미나? 사람이 싸울 때 말리면, 말리는 사람도 다치기 마련이에요. 싸우든 말든 서로 박 터지게 싸워서 나가떨어질 때까지 내버려 두는 게 모두한테 이롭죠.”


“샘, 부부를 만나고 기분이 많이 안 좋아 보여요. 그럼 이쯤에서 에드 부부와 작별인사라도 하고 떠날까요? “


”글쎄요. 난 작별 인사 같은 건 안 해요. 난 그냥 가던 길이나 가겠습니다. “


”엇! 샘 잠시만요. 같이 가요!! “

샘은 담담한 표정으로 앞을 향해 걸었고, 루미나는 샘의 뒤를 따르면서도 혹시 부부를 놓칠까 연신 뒤를 돌아보았다.


그렇게 마을의 옛길을 걷던 두 사람은 한 초가집 지붕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발견했다. 샘은 루미나와 함께 집 근처로 다가갔고, 시골집에서 풍겨오는 밥 짓는 냄새에 이끌려 자연스럽게 초가집 앞마당으로 들어섰다.


”저기, 누구 계신가요? “


”루미나, 혹시 모르니 조심해요. 뒤로 좀 물러나고요. “


”에이, 이렇게 맛있는 밥 냄새가 나는데 무섭다뇨. 즐겁죠. 하하“


”참, 사람이 깊으면서도 단순한 것 같다랄까… 뭐 그래서 난 루미나가 마음에 들기는 하지만요. “


”제가 좀 볼수록 매력적인 사람이랍니다. 어쨌거나 우리 뭐라도 좀 있음 얻어가죠? “


”그래요. 그럼, 이번에 내가 불러 볼게요. “


“저기요! 안에 누가 계신가요? 이 근처에 사람이 있는 흔적은 이곳뿐이라서요!”

샘은 온 마을에 울려 퍼지도록 크게 외쳤다. 그러자 방 안에서는 촛불처럼 흔들리는 불빛이 서서히 퍼져 나갔고,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쪽진 머리에 단정한 흙청색 한복을 입은 한 할머니가, 버선을 신은 발을 문밖으로 쭉 내밀었다.


“뭐야? 이 늦은 밤에 또 누가 여기 들어온 거야?”


낮고 굵직한 목소리에 움찔했던 루미나와 샘은 조심스럽게 문 쪽으로 향했다.


“저희는 꿈의 숲을 찾아온 사람들입니다.”


“아니, 그러니까… 그걸 지금, 누가 모를까 봐서?”


“어르신. 밤중에 찾아와 죄송합니다. 저희가 좀 쉬어가거나 먹을 게 있으면 얻을 수 있을까 해서요. “

샘은 정중하게 말하며, 자신의 얼굴을 비추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그제야 할머니는 뒷짐을 진 채 마루로 걸어 나와, 루미나와 샘의 얼굴을 번갈아 살폈다.


“너만, 이리 들어와.”

할머니는 루미나를 콕 집어 바라보며, 그녀만 방 안으로 불러들였다.


샘은 잠시 마루에 걸터앉아 두 사람의 대화가 끝나길 기다리며, 어둠 속에서도 환히 빛나는 달빛과 시간을 보냈다.


할머니와 마주 앉은 루미나는 어딘지 모르게 불편한 기분이 들었고, 평소답지 않게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저… 저만 왜… 들어오라고 하신 걸까요?”


할머니는 말없이 루미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던 그녀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넌 뭣하러 여기 왔어? 여긴 이유 있고, 목적 있는 사람들만 오는 데야. 그런데 넌 꿈도 없고, 찾을 사람도 없잖아. 그런 네가 왜 이곳에 들어온 거지?”

루미나는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말들을 그대로 내뱉었다.


“꿈이 없다고 이곳에 들어올 수 없었다면, 제가 여기 온 이유는 전혀 설명되지 않을 텐데요? 꼭 꿈을 꾸어야만 들어올 수 있는 곳은 아닌가 보죠. 그건… 못 느끼셨나요?”


“오호라, 그래. 그렇지. 그래도 나는 너처럼 운명에 의해 흘러 들어온 건 아니야. 나는 내 꽃 같은 손주들 데리러 왔거든.”


“그것 보세요. 어릴 적 꿈을 찾으러 오신 것도 아니면서, 이곳에 이렇게 버젓이 들어와 계시잖아요. 저도 그렇고요. 할머니도 결국은 이끌려 오신 거잖아요?”


할머니 얼굴엔 웃음기라곤 찾아볼 수 없었고, 쌀쌀맞기 그지없었다. 그런 할머니의 태도에 루미나는 내내 불편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얼른 방을 나가고 싶었지만, 할머니는 아직 할 말이 남은 듯 루미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너 필요한 게 있구나? 그렇지? 그걸 내가 너에게 주마. 그런데 이건 너와 나의 비밀이야.”

할머니는 작은 주머니를 꺼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그녀가 주머니를 열어보려 하자, 할머니는 매서운 눈빛과 낮고 강한 어조로 이야기했다.


“이건 너와 나만의 비밀이다. 그리고 이 주머니는 꿈의 숲을 나간 뒤에도 절대 열어보면 안 된다. 그저 오래 간직하기만 해라.”


“네? 이 안에 뭐가 들었길래… 간직하라는 거죠? 혹시 부적이라도 넣으셨나요?”


“오호호, 너 참 재미있구나.”

할머니는 처음으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곧 굳어진 표정으로 낮게 속삭였다.


“난 분명히 말했어. 이 주머니 속에 든 건 절대 꺼내보지 말고, 꼭 간직만 하라고. 그리고 언젠가 외부세계에서 우리가 다시 만날 날, 내가 직접 열어 너에게 주마.”


“할머니… 전 지금… 굉장히… 기분이 나빠요. 안 되겠어요, 저는 받지 않을래요.”

루미나는 할머니 앞에 놓여있던 작은 상 위로 주머니를 쾅하고 내려놓았다.


“이 귀한 걸 정말 안 받겠다고? 나중에 너에게 큰 힘이 될 텐데?”


“할머니, 혹시 영매세요?”


“흠…”


“그래서 저만 부르신 거죠? 맞죠? 이 물건은 잘 활용하면 득이 되지만, 잘못 사용하면 위험할 수도 있는 거죠? 그런 걸 왜 소중한 손주, 손녀에게 주지 않고 저에게 주신 거예요?”


“그야… 뭐… 너는 그 물건… 안 열어볼 것… 같아서.”


“거짓말! 할머니, 이 물건은 신성한 거예요. 꿈의 숲의 영물 같은 거죠, 그렇죠? 그리고 할머니 아이들 둘은 이미 세상에 없는 거죠? 그렇죠?”


“아… 아냐! 절대 아니야! 이곳 꿈의 숲에 놀러 와 길을 잃은 것뿐이야!”


“영물을 가지고 나가면,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오기라도 한대요? 누가 그런 정신 나간 소릴 했대요!”


“아니라고! 네가 뭘 알아! 내 꽃 같은 손주들! 여기 있어! 아직도!”


“설마 그 아이들 손주가 아니라 할머니 아들, 딸 아니에요? 요즘 아이들이라고 하기엔 머리스타일도 옷도 너무 옛날 사람 같았어요.”


“너!! 내 새끼들 봤어? 어디서 봤어? 응?”

할머니는 흥분한 나머지, 앞에 놓인 촛불이 넘어지는 것도 모른 채 벌떡 일어섰다.


방 안은 순식간에 캄캄해졌고, 루미나는 영물이 담긴 주머니를 조용히 바닥에 내려놓고 방을 나섰다. 할머니의 간절한 외침에도, 루미나는 그 어느 때보다 결연한 표정으로 뒤돌아 보지 않고 걸었다.


이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던 샘은 화가 난 할머니를 쓱 한번 바라보고는 곧장 루미나를 뒤따랐다.


그동안 본 적 없던 루미나의 단호하고 무뚝뚝한 표정에 샘도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그러던 루미나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기도터에 있던 신성한 물건, 그 할머니가 이상한 물건을 하나 줬어요. 그거 알죠? 꿈의 숲 열차에서 어떠한 소지품도 가지고 들어 올 수 없다는 조항이요. “


”알죠. 루미나. 그래서 지금 내 주머니에는 그 흔한 펜 한 자루도 없다고요. “


“그럼 가지고 나가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 거죠?”


“아마도 그럴 거예요. 아까 그 에드라는 사람도 그래서 그렇게 화를 낸 거잖아요? 영물에 손댔을까 봐. 근데 생각해 봐요. 그렇게 쉽게 깨지는 물건이 영물일리 없잖아요.”


“저 할머니, 꿈의 숲에서 영물을 찾은 것 같아요.”


“당신 품에 있는 것처럼요, 루미나?”


“네? 아… 우산, 깜빡 잊고 있었네요. 이곳을 나가게 되면 두고 가야죠. 가지고 나가려던 건 아니에요.”


“아하하, 알죠~ 내가 루미나를 모를까 봐요. 그나저나, 우리 우산 중 하나는 배 타기 전에 항해사님이 챙기셨던 것 같은데… 혹시 그거, 가지고 나가신 건 아니겠죠?”


“아뇨, 그 우산은 제가 따로 챙겨서, 탈렌 청년의 배에 실어 보냈어요.”


“죽은 사람이 우산을 어떻게 쓴다고, 그걸 거기다 넣어 보내요?”


“자, 샘, 한번 생각해 봐요. 여긴 꿈의 숲이에요. 그리고 이곳에선 아무도 죽지 않잖아요? 그런데 누군가 죽었어요. 이건 말이 안 돼요. 젊음의 죽음은 일종의 상징처럼 우리에게 어떤 가르침을 준 거예요. 그것도 탈렌이 항해사의 꿈을 찾자마자 말이에요. 그리고 영물을 손에 쥐고 있던 사람들… 죽은 게 아니라, 잠들어 있었어요. 어쩌면 이건, 이곳만의 알 수 없는 법칙인지도 모르죠. 그 배도, 젊은 탈렌도 꿈의 숲의 일부였으니, 그리로 가겠죠. 이 우산은 제 자신과 설계자와의 약속이에요. 존재하던 곳에 존재하도록… “


“와~ 루미나, 탐정해도 되겠어요. 짝짝짝—”

샘은 손뼉을 치며 감탄한 듯 루미나를 바라보았다. 그런 샘을 바라보던 루미나의 얼굴에도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아무튼, 그 할머니… 신성한 기도터에 있던 영물을 저를 이용해서 외부세계로 옮기려 했던 것 같아요.”


“어머나… 갑자기 섬뜩하네요. 저 할망구, 밥으로 홀려서 자기 대신 짐을 짊어지게 할 속셈이었나 보네요. 밖으로 나가서 얼마에 팔아먹으려고… 참나.”


“팔아넘기려던 건 아니었어요. 제가 꿈에서 본 건… 이미 세상을 떠난 아이들의 모습이었거든요. 아마 그 영물이 사람을 살리는 거라든가, 아니면 현실에 환영을 만들어내는 거라든가… 정확한 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설마… 죽은 사람이 살아난다는 건 너무 말이 안 되잖아요. 그냥 뭐라도 팔아서 손주들 챙기려는 거겠죠. 근데… 설마, 아이들이 정말 죽은 거예요?”


“손주가 아니라, 자식을 잃으셨던 것 같아요. 그런데 아이들이 꿈의 숲에 있다는 거짓말까지 하면서 영물을 가지고 나가려 했다는 건… 확실히 그 할머니, 강한 영적 기운을 가진 분인 건 맞는 것 같아요.”


“루미나는 그런 걸 다 어떻게 알아요?”


“이런 말 하면… 무서워하거나, 이상한 사람처럼 보일까 봐 그동안 말하지 못했는데요. 저는 영적인 능력이 있어요. 그래서 꿈을 통해 예지하기도 해요.”


“영적 능력?! 그 수행자라 던지, 영매라던지 맞죠?”


“네…그런데 저는 그렇게 대단한 영적 능력이 있는 건 아니에요. 그냥, 꿈을 통해 어렴풋이 엿보는 정도죠. 저 할머니처럼 사람을 단번에 알아본다거나, 뭔가를 꿰뚫어 보고 수상한 행동을 한다거나, 그런 건 전혀 못하고 안 해요. 다만, 저 집 뒤에 기도터가 있다는 걸 꿈에서 봤었고, 그 할머니가 건넨 물건이 그곳에서 가지고 나온 것이라는 정도만 알고 있을 뿐이에요.”


“루미나, 무섭거나 이상하기보다, 오히려 신기하고 재미있는데요? 영매라니, 꿈을 읽는 예언자네요? 와! 멋지다!”


“에이, 그렇게 부르지 말아요. 저는 그냥 살짝 엿보는 정도라니까요. 오히려 저는 샘의 소머즈급 청각이 더 놀라웠는걸요.”


“하하하, 소머즈… 나 어릴 때 별명이 뭐였더라? 천리귀인가, 그런 거였던 것 같아요.”


“천리귀가 뭐예요?”


“천리귀는, 천 리 밖에 있는 소리도 들을 수 있다는 뜻이에요. 어느 날 친구들이 멀리서 제 얘기를 하고 있었나 봐요. 그런데 갑자기 귀가 살랑살랑 움직이더니, 어찌나 소리가 또렷하게 들리던지! 진짜 웃겼어요. 큭큭… 그래서 제가 딱 말했죠. ‘야, 너네 나랑 어딜 가려고?’ 알고 보니까, 학교 끝나고 영화 보러 가자는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이고 있었던 거였죠.”


“와~ 정말 천리귀시네요. 저는 그래도 ‘소머즈’가 입에 착 붙어요.”


“맘대로 불러요. 뭐 어때요, 말만 다르지 뜻은 똑같은 걸요.”


영매 할머니의 집을 나서던 루미나와 샘은 길목에서 에드 부부와 마주쳤다.


그들은 어색하게 고개를 살짝 까딱이고는 조용한 옛 마을을 지나 또다시 숲 속을 향해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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