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을 타고 날아올라!
[*소설 꿈속의 이야기입니다. 절대 따라 하지 마세요!]
13화 영재들과의 만남
우산을 타고 날아올라!
등장인물: 루미나, 검은 연기의 사람들, 영재들
도윤과 헤어진 후, 루미나는 검은 연기 사람들을 피해 숲과 가장 가까운 마을로 향했다.
그녀는 그들의 눈에 띄지 않으려 조심스럽게 움직이며, 마을의 뒷산을 향해 천천히 오르기 시작했다.
“가장 높은 곳으로 가서 마을의 지형을 살펴봐야겠어.”
낯선 70년대의 거리는 길을 찾던 루미나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오랜 시간 헤매던 그녀는 검은 연기 사람들을 피해 숲 속으로 향했다. 날은 점차 어둑해졌고, 풀벌레 우는 소리와 함께 소쩍새의 메아리가 그녀의 주변을 가득 채웠다.
“도윤이는 잘 빠져나갔겠지? 운동선수들과 함께 갔으니, 안전할 거야.”
도윤과 해연 할머니를 떠올리자 루미나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할머니께서 들으셨으면 좋아하실 텐데... 도윤이가 꿈을 찾았어!라고 말이야.”
그녀는 섬에 두고 온 할머니를 못내 추억하며, 산을 올랐다.
한밤중의 산은 암흑으로 가득했지만, 나뭇가지 사이로는 청량한 빛을 내는 반딧불이가 가득했다. 그날의 광경은 그녀가 꿈의 숲을 찾은 이래 가장 신비롭고 고요한 풍경이었다. 새벽녘에 피어오르는 물안개는 어둡지만 그윽한 삶의 향기처럼 퍼져나갔다.
“숲의 향기는 언제나 고요하구나. 이런 적막마저도 참 평화로워 좋네.”
정상에 가까워지자, 커다랗고 둥근달이 마치 그녀만을 위해 존재하듯 환한 빛을 가득 쏟아냈다. 푸르고 서늘한 달빛이었지만, 그녀에게는 길을 환히 밝혀주는 든든한 길잡이가 되어주었다.
해가 떠오를 무렵, 밤새 산을 오르던 그녀의 눈앞에 마을의 지형이 한눈에 들어왔다. 오래전 사라진 마을, 지금쯤 어딘가에 번화한 도시가 되어있을 그곳이 마침내 그녀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러한 경험은 꿈의 숲이 아니면, 절대 할 수 없을 거야."
밤새 검은 연기의 사람들을 피해 숨어 다니던 그녀는, 긴장이 풀린 듯 넓고 편안한 바위 위에 털썩 몸을 뉘었다.
잠시동안, 그녀의 코로 편백의 피톤치드 향이 청량하게 번져 들어왔다.
“하... 그래, 소나무.”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다 깜빡 잠이 들었던 그녀는, 잠결에 귓가를 스치는 바스락 소리에 화들짝 놀라 두 눈을 번쩍 떴다. 그 순간,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양손에 작은 도토리를 쥔 귀여운 다람쥐 한 마리였다.
"나 주려고...?"
루미나는 잠꼬대처럼 중얼거리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냥 잊어. 빨리 가지고 네 집으로 돌아가, 도토리야... 아니, 다람쥐야."
뺨에 흘러내린 침을 소매로 닦아내면서, 그녀는 억지로 감기는 눈을 힘겹게 들어 올렸다.
“왜 안 가는 거야?”
그러자 다람쥐는 쥐고 있던 소중한 도토리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입에서 또 다른 도토리를 꺼내 루미나 앞에 가만히 놓아둔 채, 누군가에게 들킬세라, 쏜살같이 숲 속으로 사라졌다.
"이게 뭐람... 이걸 왜 주고 간 거지? 설마 내가 불쌍해 보였나?" 루미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래도 참 귀엽네. 다람쥐가 주고 간 도토리라니."
그녀는 도토리 두 개를 주머니에 챙겨 넣고 다시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한낮의 땡볕에 목이 타들어 가는 듯했지만, 산속의 수많은 나무들이 그녀의 그늘이 되어 주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의 얼굴에서는 땀이 쏟아져 내렸고, 산속의 날벌레들이 끈질기게 얼굴 주위를 맴돌며 달라붙었다.
“아잇! 퉤~ 퉤~! 한 여름의 산행이라... 처음은 아니지만, 쉽지 않아 정말.”
-사르륵. 푸슉!
“엇?!”
인기척에 돌아본 순간, 검은 연기의 사람들이 그녀를 바짝 뒤쫓고 있었다.
루미나는 그들을 따돌리기 위해 전속력으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녀가 더 빠르게 뛰어갈수록, 뒤쫓던 사람들은 오히려 점점 더 멀어지는 듯했다.
“믿음!”
땀에 젖은 윗옷을 두 손으로 힘껏 비틀자, 물이 투두둑 바닥으로 떨어졌다.
“도저히 못 가겠어. 어디든 숨어있어야지.”
그때였다.
“여기! 여기 있다!”
검은 연기에 휩싸인 사람들 사이에서 누군가 그녀를 발견하고는 날카롭게 소리를 질렀다.
“대체 몇 명이 있는 거야...?”
그들은 마치 사냥감을 기다렸다는 듯, 느린 발걸음으로 그녀를 향해 다가왔다. 하지만 그녀의 전력 질주에 그들은 이내 다시 멀어져 갔다.
"이러다 지쳐서 잡힐지도 몰라..."
루미나는 불안한 시선으로 발밑을 내려다보았다.
어제, 바로 이곳에 나타났던 초록빛 보호막이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보호의 에너지는 온데간데없었고, 이제 남은 건 오직 하나뿐이었다.
그들에게 잡혀, 꿈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의지. 그 마음 하나로 그녀는 산을 넘고 또 넘었다. 그리다 문득, 찰나의 깨달음이 스쳐 지나갔다.
“목적이란 게 생겼구나. 언제부터지?”
그녀는 꿈의 숲, 처음 이곳에 발을 디뎠을 때와는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다. 루미나는 어린 시절의 꿈을 지키기 위해 온몸이 땀에 젖도록 산을 넘는 자신이, 낯설면서도 놀라웠다.
그러나 안심하기에 아직 일렀던 것일까? 그녀는 주변에 잠복해 있던 검은 연기의 사람들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녀가 막다른 길로 들어서는 순간, 그들은 사냥감을 몰듯 입구를 막아섰다.
검은 연기의 사람들 중, 창백한 피부에 비열한 웃음을 짓고 있던 한 남자가 그녀를 약을 올리듯 말했다.
“어딜 가시려고? 그 밑으로는 아무것도 없는 바위들 뿐인데?”
"대체 여기서 뭣들하고 있는 거야? 당신들은 꿈도 없어? 당신들도 꿈을 찾으러 가면 그만이잖아! 대체 왜 꿈의 숲에서 이런 못 된 짓들을 하는 거야!"
"글쎄..? 우린 그저 갖고 싶은 것을 가지려는 것뿐이야. 이왕이면! 많은 꿈을 가지고 가야지 안 그래?"
"남의 꿈을 품고, 꿈의 숲 속을 나갈 수 있기나 하고?"
"쯧쯧... 어린양이~ 아직도 모르는 게 많은가 보군, 안 그래?"
그는 옆에 선, 어딘가 어리숙해 보이는 남자에게 고개를 돌렸다. 입가에 음흉한 미소를 매단 채, 동조를 구하는 듯 슬쩍 곁눈질했다.
“다가오지 마! 너희들...”
그들은 그녀를 천천히 벼랑 끝으로 몰았다.
“안돼!!! 사라져!!”
루미나는 섬에서 괴물을 쫓아냈던 것처럼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들은 섬의 존재가 아닌, 외부 세계에서 온 '실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그들에게 잡히느니 차라리 뛰어내리기로 결심했다.
이곳은 죽을 수 없는 꿈의 숲이니까!
루미나는 망설임 없이 몸을 돌려 벼랑 끝으로 내달렸다. 마침내 정오의 햇살 아래,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벼랑 위에서 뛰어내렸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감정들과 기억들이 한 편의 영화처럼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그때였다. 그녀가 잠시 공중에 멈추는가 싶더니, 가슴에 품고 있던 영물 우산이 스스로 펼쳐지며 그녀를 바람 위로 들어 올렸다.
루미나는 뛰어내리기 직전, 마음속으로 '날아오르리라는 믿음!'을 되뇌었다. 품속에 엉켜있던 매듭을 하나씩 풀어내자, 그녀는 영물인 우산과 함께 더욱더 높이 솟아올랐다.
그녀의 가슴속에서부터 노란빛의 우산이 커다랗게 펼쳐졌다. 이윽고 바람을 타고 둥실둥실, 꿈결처럼 떠다니기 시작했다.
루미나는 꿈결 같은 이 상황을 만끽했다. 바람을 타고 출렁이는 바다 위로, 끝없이 날아갔다.
“그래, 분명해. 이곳의 법칙 중 하나는 확신과 믿음이다!”
루미나가 우산을 펼쳐 공중으로 떠오르는 모습을, 검은 연기의 사람들은 그저 힘없이 지켜볼 뿐이었다.
오래도록 꿈의 하늘을 날아오르던 그녀는 갑작스러운 고함 소리에 화들짝 놀라 중심을 잃었다. 그녀는 순식간에 바람에 휩쓸린 채, 푸른 천막 위로 내던져졌다.
“어이쿠!”
다행히 루미나는 천막 위로 내려앉았지만, 중심을 잡으려 애쓰는 그녀의 몸부림에 천막은 그만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풀썩 내려앉았다.
갑작스러운 그녀의 등장에, 천막 아래에 있던 사람들은 혼비백산하며 뛰쳐나왔다.
“뭐예요? 당신은? 어디서 날아온 거예요?”
“네? 저요? 아니, 그게... 저는...”
루미나가 말을 잇기도 전에, 그녀를 향해 소리쳤던 사람들이 먼저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저 사람 하늘에서부터 날아왔어! 저 우산으로!”
한 중년의 남자가 루미나의 손에 들린 우산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들의 관심은 하늘을 나는 기이한 일보다 천막을 바로 세우는 데 있었다. 그들은 남자의 말을 흘려듣는 듯, 일제히 손을 뻗어 천막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중년의 남자는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다가오며 물었다.
“내가 아까 봤어요. 그 우산으로 날아오는 거.”
“왜 이 우산 때문 일 거라 생각하세요?”
“그 우산을 펼치고 날고 있었으니까요.”
“딱히 우산 때문만은 아니에요.”
“그 우산 얼마예요? 나에게 팔아요. 내가 외부세계로 나가면 넉넉히 보상할게요!”
“네? 이걸 어떻게 팔아요. 제 것도 아닌데...”
“그쪽 것이 아니면, 훔치기라도 했어요?”
“아뇨. 꿈의 숲에 있던 거라고요. 이곳에 있던 물건들은 가지고 나갈 수 없다고 들었어요. 특히나 영물 같은 것들은 더더욱.”
“그래서 판다는 거요~ 안 판다는 거요?”
언성을 높이며 시비를 거는 남성에게서 시선을 거둔 루미나는, 천막을 세우는 사람들 틈으로 자연스럽게 섞여 들어갔다.
천막은 이내 처음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제야 그녀는 그늘 아래에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루미나라고 해요.”
“안녕하세요. 저희는 이제 막 꿈을 찾은 사람들이에요.”
그곳에는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모여, 종이에 적힌 문제들을 열심히 풀고 있었다.
“뭘 풀고 있는 거예요? 이 종이들은 또 어디서 구했어요?”
“여기에 놓여있었어요. 천막 아래 이렇게, 펜과 이 시험지 한 장씩.”
“여기 모인 사람들은 어릴 적 수학자, 과학자를 꿈꿨죠. 어릴 적에는 모두 영재 소리 들으며 자란 사람들이거든요.”
“그럼, 이미 꿈을 찾으신 거네요? 그런데 왜 이곳에서 문제를 풀고 계신 거죠?”
“관문은 아니지만, 놓여있던 종이에는 여기 모인 사람들의 이름이 하나씩 새겨져 있더군요. 그리고 각 시험지에는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물리 공식들이 적혀 있었어요.”
“그럼 그냥 가지고 나가시면 되잖아요.”
“아뇨. 지금 여길 봐요. 이 사람들 세계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이라고요. 이런 기회가 어디 흔한가요? 거기다가 꿈의 숲에서는 노인, 젊은 사람, 할 것 없이 자유롭고, 언어가 달라도 소통이 되는 유일한 세계잖아요? 몰랐어요?”
루미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그들이 각기 다른 뿌리를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을...
“왜 이걸 지금에야 알았지?...”
그녀는 지금껏 여정을 함께했던 동료들을 하나씩 떠올렸다.
항해사 탈렌은 이국적인 얼굴에 훤칠한 키, 시선을 사로잡는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졌다. 그가 유명한 가수였지만, 그를 전혀 알아보지 못했던 이유도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카일라, 에드 부부도 이국적인 하얀 집이 익숙하단 듯 행동했었지... 샘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루미나는 꿈을 찾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담담하게 바라보았다.
그들의 시간은 느리게 흘러가는 듯했다. 루미나는 여정 중에 만났던 사람들과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그들에게서, 점차 거리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내가 있을 곳이 아니야...”
문제 풀이에 집중하는 사람들을 뒤로한 채, 그녀는 다시 혼자만의 길을 나섰다.
비가 그친 마을은 화창하고 싱그러운 꽃내음으로 가득했다. 오랜만에 걷는 꽃길에 그녀는 잠시 정착하고 싶은 흔들림을 느꼈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이곳에는 그녀가 진정으로 원하는 목적도, 어린 시절의 꿈도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