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연재 중 꿈의 숲 18화

18화 위장 열차

마지막 시험!

by 우산을 쓴 소녀
글, 그림: 우산을 쓴 소녀

18화 위장 열차

-마지막 시험-

등장인물: 루미나, 이연, 은정


움직임을 멈춘 건물 안을 벗어난 루미나는 자신을 둘러싼 꿈과 현실 사이에서 다시 길을 찾기 시작했다. 검은 연기의 사람들로부터 허겁지겁 빠져나온 그녀는,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빛에 갈증을 느끼며 얼음이 담긴 시원한 물 한잔을 떠올렸다.


한참을 숲 속을 헤매던 루미나는 마침내 숲 사이로 난 작은 길 하나를 발견했다. 그녀는 좁다란 길을 향해 발을 내디뎠지만, 내리쬐는 태양빛은 숲의 선선함이나 오싹한 빗속과는 달리 오히려 따갑고 불편하게 느껴졌다.


루미나는 점점 지쳐갔다.


그때, 멀리 거대한 목련나무 아래서 쉬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 다가가자, 그들의 모습이 점점 또렷해졌다. 루미나는 자신을 보고 반갑게 손을 흔드는 그들 곁으로 향했다.


거대한 목련나무가 촘촘히 내리쬐는 태양을 꼼꼼히 막아주고 있었고, 루미나는 그늘 아래 발을 들여놓았다. 그녀는 뜨거운 태양빛을 피해 안도하는 듯, 잠시 숨을 고른 뒤 몸을 기대며 말했다.


“낯이 익기는 하는데, 혹시 출발할 때...”


“아! 맞아요! 혼자 오신 분 맞죠?”


“저희는 친구 사이예요! 아, 그리고...”


“그때 이름도 모르고 사라져서, 저는 이연이고 이쪽은 제 친구 은정이에요!”


“나도 내 소개쯤은 할 줄 알거든?!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 아니, 두 번째 뵙네요! 저는 이연의 친구 은정에요. 반가워요. 그때, 한 참 가다 보니 인원이 맞지 않는다는 걸 알았거든요. 부부인지 연인인지도 각자 제 갈 길 갔고, 그 귀여운 꼬마 아이랑 여자분도 뒤처지더니 결국 안 보였어요. 그쪽도 그런 일이 있었나요?”


“아... 아뇨, 저는…”

루미나는 어디서부터 이 비현실적인 상황을 설명해야 할지 막막했다.


“음~ 설명하기 불편하시면 하지 않으셔도 돼요! 은정이는 호기심이 많아서 다그치듯 물을 때가 많거든요. 궁금해서 그런 거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아, 그리고 성함이 어떻게 되셨죠?”


“말한 적은 없지만, 루미나예요. 루미나.”


“아! 그랬죠? 말한 적이 없으니... 그나저나 여기까지 혼자 오신 거예요?”


“혼자도 왔고, 사람들과 함께 오기도 했었죠.”


“저희도 오는 길에 사람들을 보긴 했어요. 다들 걷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죠. 저희도 그랬고요. 은정이는 얼른 나가고 싶대요. 모기도 많고 벌레도 많다고요. 근데 저는 오히려 재미있는 것 같아요! 모험이잖아요. 루미나 생각은 어때요?”


이연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듯 빤히 바라보았다.


“그래요. 모험이자, 여정이죠.”

루미나는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이 길은 쉽지 않을 거예요. 그동안 봐왔던 것보다 더 이상한 일들이 생길지도 몰라요. 때론 무섭고, 혼란스럽고, 길을 잃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 안에서 뭔가를 찾게 될 수도 있죠. 예를 들어 꿈의 구슬이라던지... 잊고 있던 것. 우리 모두가 꿈의 숲에 처음 발을 딛었을 때 찾고 있었던 것 말이에요.”


“그래도 전 빨리 밖으로 나갔으면 좋겠어요. 이거 봐요! 벌레가 또 물었잖아요. 으으~”

은정의 투덜거림에 이연은 피식 웃었다.


"어, 저기요! 저 열차! 우리가 타고 온 숲 속 열차예요! 이 안까지 들어오는 거였네요?"

은정은 구세주라도 만난 듯 눈을 반짝이며 열차를 바라보았다.


이연과 은정, 그녀들이 열차 쪽으로 다가가던 찰나, 루미나가 숨 가쁘게 달려와 그들의 앞을 막아섰다.


“잠시만요!”


“네? 왜 그러세요?”


“이 열차, 타지 않는 게 좋을 듯해요. 꿈의 숲의 열차가 아닌 것 같아요.”


“그게 무슨 소리예요? 그 열차가 아니라면, 뭔데요?”


열차는 곧 떠날 듯 요란한 기적 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했고, 루미나의 말을 다 듣기도 전에 그녀들은 급히 열차에 올라탔다.


그런 그들을 그냥 둘 수 없었던 루미나는 망설일 틈 없이 달려가, 출발하는 열차의 손잡이를 붙잡고 몸을 실었다.


“아까 한 말 무슨 말이었어요? 여기 타면 안 된다는 말이요.”


“하... 이미 탔잖아요. 왜들 이렇게 성급해요! 어떤 열차인 줄 알고 막 잡아타냐고요!”


“왜 그렇게 화가 났어요?! 저희는 그냥 열차를 놓칠까 봐... 뭐 실수한 거 있어요?”


“이 열차를 탄게 실수일 수도 있죠. 곧 알게 되거나, 그전에 제가 당신들을 데리고 뛰어내릴 수도 있고요.”


“네?”


이연과 은정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루미나를 빤히 바라보는 동안, 루미나는 말없이 열차 내부를 살폈다. 겉보기에 열차 내부는 잘 정돈된 모습이었다. 정갈하게 마감된 나무 의자들과 붉은색 포인트들이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하지만 열차의 분위기는 어딘가 기묘했다.


사람들로 가득한 객실 안은 이질감이 감돌았고, 차창을 통해 드리운 빛줄기 속 먼지들이 세월의 흔적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 순간, 루미나는 설명할 수 없는 불길한 예감이 스쳐 지나갔다.


‘당장이라도 열차 안을 벗어나지 못하면,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열차 안은 세월의 터널을 통과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군가의 시간들이 겹겹이 쌓인듯한... 공기에는 쿱쿱한 먼지, 희미한 기억의 향이 뒤섞여 있었다.


루미나가 바라본 사람들의 눈은 텅 비어 있었다. 그들은 마치 영혼을 잃은 것처럼,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누구도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고, 기묘할 만큼 정적이 감돌았다.


불길한 분위기를 감지한 이연과 은정 역시 점점 불안해졌고, 그곳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이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여기 있는 사람들, 대체 왜들 이래요...?”

은정은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그러게요... 영혼을 잃은 사람처럼 말이죠. 저런 눈빛... 본 적 없어요?”


“글쎄요. 살아있는 사람들 같지 않고, 꼭 밀랍 인형들 같아요.”

이연은 주변을 경계하듯 더욱 조용히 속삭였다.


"눈하나 깜빡하지 않아요. 기괴하네요... 정말."


이연의 속삭임에도 루미나는 달리는 열차에서 뛰어내릴 궁리를 멈추지 않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열차는 숲이 무성한 길을 향해 달리고 있었고, 그녀의 계산대로라면 크게 다치지 않고 내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어요. 내가 어떻게든 문을 열 테니까 무조건 뛰어내려요. 알았죠?”


"어휴~! 나는 무서워요! 루미나, 다른 방법은 없어요?"


“이 열차 보면 알겠지만, 우리가 타고 왔던 열차와는 속도가 확연히 달라요. 그렇게 빠르지 않다고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열차 안에서는 모든 게 천천히 흐르는 것처럼 보여요. 창밖을 봐요.”


루미나의 말에 그제야 창밖을 본 은정과 이연은 숲의 풍경이 마치 슬로 모션처럼 천천히 흘러가는 것을 깨달았다.


루미나는 나무로 된 열차의 문을 옆으로 힘껏 밀었다. 하지만 그녀의 힘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문은 열릴 듯 말 듯 미동도 하지 않았고, 그 모습을 본 이연과 은정도 달려와 손잡이를 힘껏 밀었다.


‘덜컥 덜컥— ‘


덜컥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자, 셋은 동시에 하나, 둘, 셋! 을 외치며, 세쿼이아가 무성한 수풀 사이로 몸을 던졌다. 열차는 뛰어내리는 동시에 마치 속도를 내듯 멀어져 갔고, 멈춰 있던 시간이 다시 흐르는 듯

그들은 수풀 사이로 빠르게 구르기 시작했다.


거대한 세쿼이아 나무에 부딪히며, 멈춰 선 그들은 흙먼지를 털어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은정은 예상보다 아프고 세게 떨어진 것에 대해 투덜거렸고, 이연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루미나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까 그건 뭐예요? 사람들 왜 그렇게 넋이 나가 있었죠?”


“혹시 오는 길에 검은 연기 본 적 없어요?”


“검은 연기라니요? 캠프파이어할 때 나는 그 연기요?”


“아니요, 검은 연기를 품고 다니는 사람들요.”


"사람이요? 검은 연기? 저희는 못 봤어요. 그 사람들이 왜요? "


검은 연기의 사람들을 향한 이연과 은정의 호기심이 커져갈수록, 루미나는 자신이 보았던 그들의 정체에 대해 더욱 진지하게 털어놓았다. 루미나의 이야기가 끝날 무렵, 이연과 은정의 얼굴은 근심으로 가득했다. 그들의 걱정 어린 시선을 읽은 루미나는 애써 미소 지으며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꿈을 찾기 전에 그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절대 회유에 넘어가지 말아요. 그리고 꿈을 찾은 후에도 그들에게 꿈을 찾았다는 말은 하지 말고, 조용히 숲을 나가면 돼요. 나도 아직 그들이 어디까지 퍼져 있는지는 잘 몰라요. 그저, 추측할 뿐이에요.”


“만약 검은 연기의 사람들에게 붙잡히기라도 하면 어떻게 되는 건데요?”


은정은 겁에 질린 나머지 어깨를 움츠린 채 고개를 숙였다. 이연은 그런 그녀에게 다가가 부드럽게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말했다.


“붙잡히더라도 꿈의 구슬은 찾지 못했다고 말해. 그리고 만약 그들이 네게 꿈의 구슬을 가져가라고 한다면 절대로, 그들의 꿈에는 손대지 마. 알았어? 은정?”


“응... 그런데, 만약 들키기라도 하면? 내가 꿈을 찾았다는 걸... 그들이 알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거야?”


"거기까지는... 루미나, 그들이 꿈의 구슬을 빼앗기도 한다고 했죠?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방식들로 말이죠.

꿈을 찾기 전까지는 안심할 수 있겠지만, 찾고 나서는 더더욱 그들을 조심해야 할 거예요. 그렇죠?"


이연은 은정을 안심시키려는 듯 루미나에게 부드럽게 눈짓을 보냈다. 루미나는 그 의도를 알아차리고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네... 네, 조심하면 돼요. 너무 겁먹을 필요 없어요. 봐요, 나도 이렇게 멀쩡하잖아요.”


“알았어요, 루미나. 고마워요.”

이연은 여전히 불안에 떨고 있는 은정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조용히 달래주었다.


그들은 세콰이어 숲을 뒤로한 채, 여정을 이어갔다. 기분 탓일까, 숲의 공기는 평소보다 무겁고 서늘했다. 바람 한 점 없는 정적 속에서 나뭇잎 사이로 희미한 신음 소리가 실려오는 듯했다.


은정은 겁에 질린 채 이연의 옷자락을 놓지 않았다. 루미나가 앞서 걷자, 그녀는 이연의 뒤에 몸을 숨기듯 따라붙었다.


숲은 어느새 어둑한 그림자가 내려앉았고, 그들은 멀리 어른거리는 불빛을 좇아 바쁘게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keyword
월, 수, 금,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