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 꿈을 잃은 자들의 날개!
17화 치유의 숲 2
-유혹, 꿈을 잃은 자들의 날개-
등장인물: 루미나, 검은 연기의 사람들, 기괴한 여성
꿈속에서 길을 걷던 루미나는 짙은 안개 너머, 세상의 무게에 짓눌린 듯한 구부정한 등을 발견했다.
그 등은 기이하게 휘어져 있었고, 마치 죄책감을 짊어진 한 인간의 뒷모습 같았다.
여자는 루미나를 빤히 바라보며, 자신에게 오라는듯한 손짓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을 유인하는 듯한 시선을 외면하고 싶었다. 하지만 막다른 길 끝, 어둠이 짙게 깔린 그곳에는 기괴한 여성과 더 이상 도망칠 곳 없는 루미나뿐이었다.
기이하게 웃고 있는 여자의 미소는 루미나를 불편하게 했다.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올수록, 여자의 인상은 일그러졌다, 펴지기를 반복했다.
마치 가면을 순식간에 바꿔 쓰는 듯한 얼굴로.
그녀의 존재는 마치 악몽 속에 숨어든 괴물 같았다.
그녀는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었지만, 한눈에 보아도 본능이 경고를 보내는 존재였다. 그 소름 돋는 분위기, 그것은 거짓으로 빚어낸 결정체와도 같았다.
"내 손을 잡으렴. 이리 와. 나랑 함께 가자. 이 미궁의 길은 둘이 함께 걷는 편이 훨씬... 안전할 거야."
“그 안에 길이 있어요?”
“이 안에 길이 있어! 이곳으로 가면 쉽게 꿈을 찾을 수 있어! 고생하지 않고 말이야!”
"어떻게 꿈을 찾을 수 있다는 거예요? 딱 봐도 미로잖아요. 맞죠? "
"아니?! 무슨 소릴! 여기 멍청이가 또 하나 있네? "
"... 그게 무슨..."
"캬캬캬 큭큭큭... 중얼중얼... 캭캭..."
여성은 기이함을 넘어선 섬뜩한 웃음을 터뜨렸고, 몸은 마치 고통에 휩싸인 듯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 섬뜩한 웃음소리에 소름이 돋은 루미나는 본능적으로 한 발자국 물러서며 그녀와의 거리를 벌렸다.
“저것 봐! 캬캬캬... 도망치는 거야? 갈 데는 있고? 꿈은 언제 찾으려고? 너 같은 녀석이 꿈을 찾을 수 있기는 하고? 캬캬캬... 큭큭큭... 딸꾹! 딸꾹!”
“…”
“이리 와아~ 나랑 같이 가자고, 루미나. 그러면, 내가 네 꿈을... 그래! 먼저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줄게!
날 믿어, 그래, 날 믿어야지. 널 믿지 마. 그 정도로 찾아다녔으면, 이미 이루어지지 않을 운명이야! 바보 같긴... 큭큭큭...”
그녀의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은 슬픔을 가득 머금은 듯했다. 한마디 한마디를 내뱉을 때마다, 그녀의 온몸은 쭈글쭈글 말라붙은 나무껍질처럼 뒤틀렸고, 어깨는 죽은 가죽의 허물처럼 축 늘어졌다.
여자의 얼굴은 점점 더 고통스럽게 일그러져 갔다.
“꿈은 누가 대신 찾아줄 수 없어요! 그러니 그 길은 혼자 걸어가세요!”
“나 혼자?! 나 혼자!!! 안돼!!! 나 혼자서는 무서워... 혼자 힘으론 힘들어!”
여자의 일그러진 얼굴 위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웃음과 울음을 반복하던 그녀는 갑자기 루미나의 팔을 붙잡고 애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감정은 오래가지 못하고, 이내 격렬한 분노로 변해버렸다. 그녀의 악의 어린 발작적인 행동을 더는 참지 못하고, 루미나는 그녀를 밀쳐낸 뒤 도망치듯 꿈에서 깨어났다.
“헉... 헉... 헉...”
눈을 뜨자 꿈의 잔상이 흩어지는가 싶더니, 눈앞에 신비로운 호수의 물결이 아스라이 반짝였다. 루미나는 자신이 여전히 그 호수 앞에 쓰러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푸른 호수에서는 분수처럼 맑은 물줄기들이 퍼져 나오고 있었고, 공기 중에 흩날린 물방울들은 그녀의 얼굴과 온몸에 부드럽게 닿으며, 마치 치유의 물처럼 스며들었다.
몸을 추스른 루미나 곁으로 하얀 나비 한 마리가 내려앉았다. 나비는 말없이 날갯짓하며, 숲 너머로 그녀를 이끄는 듯했다.
거대 식물과 곤충, 치유의 호수가 있던 숲을 지나자, 멀리 시골길이 이어져 있었고, 그 길 끝에 오래된 건물이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건물은 오래되어 낡아 있었지만, 사람들의 흔적과 머물렀던 기운은 여전히 그곳에 남아 있었다.
희미한 잿내가 풍기는 건물 안, 루미나는 두 명의 검은 연기의 사람들을 마주했다. 그들은 루미나의 존재를 아랑곳하지 않은 채, 여행자들의 꿈들을 진열대에 쌓아 올리고 있었다. 루미나는 그 불길한 진열품들이 모두 여행자들의 꿈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아직 꿈을 찾지 못했으면 하나 가져가. 단, 돌아가는 길에 꿈을 찾게 된다면... 반드시 그 꿈과 랜덤 하게 맞바꿔야 해. 세상에 공짜는 없거든. 큭큭큭.”
그들은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는 그들 옆에 서 있던 작은 체구의 여인을 꼼짝 못 하게 막아섰다. 여인의 눈빛은 도망칠 길을 잃은 짐승처럼 흔들렸고, 남자들은 자신의 탐욕으로 얼룩진 환상들을 내밀며, 마치 값을 치르듯 그녀의 꿈을 요구했다. 그 장면은 거래라기보단, 인간 사냥에 가까웠다.
루미나는 그들의 섬뜩한 말에 몸을 돌려 나가려던 순간, 건물이 서서히 기이한 형태로 뒤틀리기 시작했다. 복도는 겹겹이 접혔다 펼쳐지기를 반복하며 끝없이 늘어났고, 출구는 가까워졌다 멀어지며 루미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건물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스스로 형태를 바꿔가며 그녀를 가두었고, 왜곡된 공간은 퍼즐처럼 얽혀 루미나의 탈출을 허락하지 않았다.
검은 연기의 남성들은 폭력을 쓰지 않고도, 움직이는 건물 속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는 모습을 즐기듯 바라보며 말했다.
“어이구! 손님이 오셨네! 잘 오셨습니다! 그나저나 꿈은 찾으셨나요?”
“... 아뇨.”
“그렇다면! 여기 한가득 있는 꿈들 대령이오! 캬캬캬. 아무거나 골라가! 나중에 은혜는 곱절로 갚고! 큭큭큭. 아! 아니야~ 너의 꿈! 그거면 돼. 우리처럼 선한 사람들은 이자도 안 받잖아? 안 그래?”
옆에서 멍청하게 웃고 있던 남자 한 명이 거들며 말했다.
“나만 꿈이 없어~~ 질~질~ 짜던 찌질이들! 꿈을 잃고 방황하는 두려움에 휩싸인 멍청이들! 큭큭큭. 우린 자비로워! 열린 마음으로 너희를 품잖아~ 이렇게~”
그는 작은 체구의 여성을 인질처럼 붙잡고, 거칠게 허리를 감싸 자신의 쪽으로 끌어당겼다.
루미나는 치밀어 오르는 구역질을 간신히 억누르며, 몸을 웅크렸다.
“으... 으윽... 우웩...”
남자들은 그녀의 구역질에 낄낄대며 웃음을 터뜨렸다. 루미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의식을 건물 밖으로 집중시켰고, 차츰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건물 틈 사이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
건물 밖으로 빠져나온 루미나는 한동안 숨을 고르며 뒤를 돌아보았다. 탈출의 안도감도 잠시, 그 안에서 본 기이한 일들이 여전히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어떻게 저런 자들에게까지 힘이 주어진 걸까... 힘은 언제나 그릇된 자들의 손에도 쥐어진다. 설계자는 무지했을까, 아니면 애초에 혼란을 의도한 걸까...'